누구와 함께 걸어갈 것인가?(3) (창세기 13:14-18)
오늘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사람은 아브라함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에 아브라함은 어떤 성격의 사람 같습니까?
아브라함에 관한 여러 가지 성경적인 자료를 종합해 보면 “그는 성격이 사람 믿기를 잘하였을 같고, 마음이 넉넉하여 누가 어렵다고 하면 내 집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퍼주기를 좋아하고, 대인 관계에서는 더러 몰라서 속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알면서도 속아주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혹시 여러분은 “아브라함이 왜 이렇게 성격이 좋은가?”생각해 보셨습니까?
성격이라는 것은, 환경에 영향을 참 많이 받습니다.
저는 아브라함의 성격이 이렇게 넉넉하고 풍성한 것처럼 “하나님께 선택이 되었고, 예수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의 성격도 참 좋아야 할 것 같다.”라는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을 보면, 아브라함의 성격의 더 깊은 내면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조카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날 때, 먼저 죽은 자기 동생 하란의 아들 롯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청년으로 자란 그 조카에게도, 아마 얼마의 재산을 떼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성경에 보면 “두 사람이 재물이 많아서 그 종들이 서로 다투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이 서로 함께 있을 수가 없어서 나누어져 살아야 하는데 아브라함이 조카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 하겠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 하리라” 라고 말합니다.
좀 예의가 있는 조카라면 “큰아버지께서 먼저 결정하시면 제가 결정하겠습니다.”라고 할텐데, 이 롯은 자신이 먼저 눈을 들어 살펴보니, 요단을 비롯하여 소알까지 무리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처럼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곳을 결정하고, 나머지 땅을 차지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모습이 오늘 본문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줄 것이며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많아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걱정이 없습니다.
근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맡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이 “일어나 장막을 헤브론 마므레 수풀 근처로 옮겨서 살았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더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을 통해 얻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 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복이라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조카 롯은 자신의 판단에 너무 좋은 곳이라 생각하고, 요단들과 소알을 선택하였지만, 결국 그곳은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은, 무엇을 해도, 어떤 일을 만나도 그는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동행하심으로 늘 승리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브라함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호흡을 하고 함께 살아간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늘 이렇게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성격 좋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꼭 제단을 쌓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말은 “신앙적으로 하나님과 만남이 계속되고 하나님과 은밀한 믿음의 교제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십자가의 사랑을 묵상하고,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여러분! 정말 이런 사람들이 하늘의 복을 받지 누가 받겠습니까?
저는 이번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에서, 이처럼 마음에 새로운 각오와 결단을 가지고, 십자가의 사랑을 묵상하며 믿음의 제단을 쌓는 여러분을 보면서 정말 큰 감명과 은혜를 받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신앙적인 각오와 결단을 가졌는데, 어찌 우리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창39:2-3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예수님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예수님은 전 생애 동안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혼과 육체가 우리를 위해 전인적으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시험 당하심으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예수님의 죽으심은 고난의 최절정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의 죽음은 범죄의 결과로 주어졌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자신의 죄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악의 삯인 사망을 지불하도록 예수님에게 사법적인 형벌을 부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극단적인 형벌인 십자가형에 처해진 것은,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과 저주가 그만큼 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히4:15-16절을 읽겠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이 말씀의 약속을 붙잡고, 이 시간 전심을 다해 기도합시다.
2016년 알지 못하는 미지의 시간, 풍랑이 가득한 세상의 삶 속이지만, 세상에 굴복하지 않고 나를 향한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소원하며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그리고 축복이 기도응답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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