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전도사역의 핵심 비전 (사도행전 19:8-10)

Johnangel 2024. 3. 13. 17:00

전도사역의 핵심 비전 (사도행전 19:8-10)

                                           

사도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의 장도에 오르게 됩니다.

제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에서 불과 한 달 남짓 쉼의 시간을 가진 후,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바울은 다시 전도 여행길에 오른 것입니다.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의 가장 핵심적인 선교전략지가 고린도였다면, 제3차 전도여행의 핵심적인 선교전략지는 에베소였습니다.

그는 에베소에서 약 3년(행20:31)의 시간을 보내면서, 이 도시의 복음화에 전력투구를 다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 도시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복음인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전도여행 시간을, 이 도시에 투자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이 전력투구한 에베소 비전사역의 핵심과 전략, 그리고 그 결과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에베소 사역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강론이었습니다.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바울이 에베소에 가서도 변함없이 그의 마음을 붙들고 있었던, 주제는 “하나님나라”비전이었습니다.

사실 그의 “하나님나라 비전”은, 예수님의 비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처음 증거한 메시지가 무엇이었습니까?

막1:15절에 보면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며 “나라가 임하옵시며”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다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다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주제가 무엇이셨습니까?

행1:3절을 읽겠습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사 십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바울은 이런 예수님의 제자로서 “하나님나라의 비전”을 설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에게 그 시대의 유일한 희망은, 오직 “하나님나라”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는, 오직 주 예수를 믿고 영접함으로서만,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3년 동안, 이 도시 에베소에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치고자했던 것입니다.

이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지난 기독교역사 이천년 동안, 그리고 현재까지 예수님의 신실한 모든 제자들이 전하고자 했던 동일한 메시지였습니다.

 

종교 개혁자 존 칼빈의 후예를 자처하는 개혁교회들은, 금년 들어 세계 도처에서 존 칼빈 탄생 500주년 기념행사들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에서도 교역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500여명이, 금년 6월에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하여 기념행사를 할 계획입니다.

칼빈은 본래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스위스 제네바를 종교개혁의 거점 도시로 삼고 죽기까지, 그 도시에서 “하나님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칼빈이 가르친 평생 동안 핵심적 설교는, 바로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었습니다.

그는 정교분리 즉 “교회와 국가의 정치적 분리”를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그가 살고 있는 도시 제네바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거룩한 도시”가 되기를 열망했습니다.

그리고 칼빈의 설교와 가르침의 영향을 받은 많은 평신도 지도자들이, 제네바 도시의 정치계, 교육계, 문화계, 그리고 산업계에서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이 도시에서, 도박이 사라지고, 사치와 방탕이 줄어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끌어안는 살기 좋은 거룩한 도시로 변화되어 갈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제네바에 앞서 먼저 에베소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바울의 복음전도로 맨 먼저 일어난 일은,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에베소 도시에서 우상을 만들어 영업하는 자들과 마술사들이 큰 타격을 입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에베소 도시가 복음의 거룩한 충격을 입게 된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나라 운동이 지금 우리 익산에도 너무나 필요하기에, 이번에 우리교회에서 “하나님나라의 비전”인 행복나눔축제를 실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에베소 사역의 전략은 두란노서원의 제자훈련이었습니다.

 

9절을 읽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이 도시에도, 역시 바울을 비방하는 무리들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대적하는 대신, 자신의 가르침을 수용하는 사람들을 따로 모아 “두란노서원”이라는 곳에서 집중적인 훈련을 했습니다.

요즘의 말하면, 바로 “제자훈련”이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제자다운 제자들만 일어난다면 “반드시 복음은 승리하고 이 에베소 도시는 변화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두란노”란, 당시 그 지역에서 존경받는 철학자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건물의 주인이었는데, 더운 낮인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는 비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비어 있는 시간에, 이곳을 빌려 집회장소로 사용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두란노서원의 제자훈련이, 바로 바울의 “에베소 도시복음화의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나라 운동은 언제나 헌신된 소수의 제자들에 의해 펼쳐져 왔다.”는 사실입니다.

군중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충성된 소수인 것입니다.

우리교회 상황을 빌려 말하자면, 주일예배에 참여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은 다 소중합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나라 비전”을 가지고 살기 위해 “제자훈련을 받고, 평신도 사역자로써 주님의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나라 사역에 헌신하는 제자들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교회 모든 성경공부는 3년이면, 하나님나라의 제자로 섬기기에 합당하도록, 시스템이 디자인되어 있는 “제자훈련의 과정”입니다.

이 제자훈련을 받고 난 후 “실제로 영혼들을 돌아보는 목자로, 혹은 총괄과 팀장과 팀원으로 헌신하고 계신 분들이 우리교회에 있어서 두란노서원의 주님의 비전을 가진 제자들”이신 것입니다.

칼빈도 제네바에서 사역을 시작하자마자, 바울처럼 변화를 원하지 않는 교권주의자들의 반대에 직면합니다.

그래서 칼빈은 제네바에서 추방되어, 3년 동안 조국 프랑스에 돌아가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3년 후에, 다시 제네바의 부름을 받고, 돌아가서 더욱 강력하게 말씀으로 “제자 삼는 운동”에 헌신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제네바 도시의 성시화는 촉진되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도전하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주일성도 소위 Sunday-Christian으로 만족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제라도 남은 생애를 제대로 말씀으로 훈련받고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다운 제자로 살아가시겠습니까?”

 

3. 에베소 사역의 결과는 소아시아 복음화가 이루어졌습니다.

 

10절을 읽겠습니다.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그렇습니다.

그는 비록 에베소 시내의 작은 건물 두란노서원에서 사역했지만, 그 영향력의 결과는, 소아시아 전체지역에 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결과가 초래되었을까요?

그것은 바울에게 훈련받은 제자들을 통해 일어난 결과였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지방을 방문한 흔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로새교회가 세워진 것은, 바울의 제자인 에바브라가 에베소에 와서 바울의 제자훈련을 받고, 그가 고향 골로새로 돌아가 교회를 세운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등장하는, 소아시아 7교회도 대부분 그렇게 세워졌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시아 전체가, 복음의 영향을 받고 하나님 나라의 지평은 아시아에서 계속하여 넓혀지고 있었습니다.

한 인생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어떤 영향력을 남기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향력은, 비록 우리가 바울처럼 많은 곳에 전도여행을 하지 않는다할지라도, 내가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서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멀리 펴져가는 것입니다.

칼빈도 역시 그가 많은 곳을 다닌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시간을 제네바에서 보냈지만, 마침내 그의 영향력은 유럽 전체에 미치게 되었습니다.

스위스, 네델란드, 독일, 벨기에, 영국 스콧트란드 등. 모든 사회계층 영역에 칼빈주의는 깊고도 넓은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칼빈은 말년에 벅찬 사역으로 인하여, 종합병원처럼 많은 지병을 앓게 되었지만, 그는 끝까지 제자훈련과 가르침에 헌신했습니다.

 

1564년 2월 6일 그는 마지막 설교를 합니다.

그리고 두 달 후인 4월 25일 마지막 유언의 글을 이렇게 남깁니다.

“나 존 칼빈 제네바교회의 말씀의 종은 여러 가지 병에 의해 쇠약해진 중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가련한 피조물인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모든 죄와 약함으로부터 이끌어 주셨을 뿐 아니라, 그보다 더욱 나의 일을 통해 당신을 섬길 수 있는 은혜에 참여할 수 있게 하셨음을 감사드립니다. 나는 나의 전 구원의 바탕인 그의 은혜의 선택 외에는 그 어떤 소망도 피난처도 가지지 않은 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그 신앙 안에서 살고, 또 그 신앙 안에서 죽기를 소원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 예비해 주신 은혜를 붙들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공로를 받아드립니다. 그를 통해 내 모든 죄가 장사지내졌음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나는 모든 죄인들을 위해 흘린 우리의 위대한 구세주의 피가 나를 깨끗하게 해 주심으로 내가 그의 얼굴 앞에 나타날 때 그의 형상을 입을 수 있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이 유언서를 쓰고 나서, 꼭 한 달 후인 1564. 5. 27. 토요일 그는 마지막으로, 시39:9절의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까닭이니이다.”를 맑은 정신으로 암송한 후 평화스럽게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칼빈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교회개혁의 비전, 성시화의 비전,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묻고 있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은 주님의 제자로써 자신의 죽음과 함께 이 땅에 어떤 영향을 남기고 가시겠습니까? 그리고 오늘부터 당신은 어떤 준비를 하시겠습니까?”

우리에게 전도의 열매는, 천국에서 받게 되는 상급이요, 면류관입니다.

따라서 성시화를 위한 이번 “행복나눔축제”에서, 전도의 열매를 맺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