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로마서 1:26-27)
하나님께서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방치하실 때 드러나는 현상에 대해 지난 시간 상고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상을 섬기는 삶으로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형이하학적 인간을 그대로 방치해 두실 때 나타나는 두 번째 현상이 무엇인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26절 상반절에 보면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욕심”의 헬라어 “파도스”는 “욕정”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욕심이라는 단어 앞에 “부끄러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부끄러운 욕정에 그들을 내버려두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26절 하반절에 보면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순리대로”라는 말은 “하나님의 명령대로”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쓸 것”이라는 말은 무엇을 사용한다는 말이 아니라 남녀의 생활을 의미합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끼리 서로 사랑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동성애입니다.
여자들만 그랬습니까?
27절을 읽겠습니다.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하나님께서 본능적으로 사는 인간을 방치해 두시면 이처럼 동성애에 빠진 사람들이 창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동성애자들이 하루아침에 불 일 듯 일어나는 법은 없습니다.
한 사회가 성적으로 타락할 대로 타락해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형태가 동성애와 마약입니다.
오늘날 온 세계가 소돔과 고모라처럼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미국에서 동성애를 합법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예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 전 서울에서 수만 명의 동성애자들이 모여 축제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정치인들은 어떻게 하면 한 표를 더 받을까 골물하지, 자기 표가 깍이더라도 어떻게 하면 바로 새울까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국제형사경찰기구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세계에서 성폭력이 세 번째로 많이 일어나는 나라입니다.
“성”은 신성한 것입니다.
“신성”은 어떤 의미입니까?
“신적인 거룩‘입니다.
왜 성이 신적인 거룩을 가지고 있습니까?
생명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을 사람들이 쾌락만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면, 성은 자기와 상대를 동시에 오염시키는 독약이 되고 맙니다.
왜 사람들이 이처럼 짐승만도 못하게 자기와 상대를 스스로 오염시키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방치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자신들의 삶이 멋지게 보입니다.
쾌락과 욕망을 분출하며 거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순결한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한심하게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27절 하반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여기에서 “상당한”이라는 말은 “마땅한”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동물적인 삶을 산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 마땅한 보응을 주신 결과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은 이미 이 땅에서 심판받아 죽은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소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세상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들로 가득 차 타락해 가는데, 교회는 예외입니까?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깨끗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유뷰남이 자기 아내와 자식을 두고 다른 여자와 불륜을 저지른다는 것은, 그 순간 자기 아내와 자식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수치로 남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매를 맞고서 순결의 길을 갈 수도 있고, 자진해서 주님의 손을 잡고 순결의 길을 갈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5:2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는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똑같이 정결해 질 수 있도록 주님을 붙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음욕을 품지 않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마음속에 음욕을 품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이 나로 하여금 음욕을 품게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결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입니다.
애가 입은 옷 모양이나 내 손을 거쳐 만들어진 상품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성적인 타락을 가져오게 하면 안 됩니다.
순결이라는 것은, 대단히 오염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오염된 것을 깨끗하게 만드는 것은 순결밖에 없습니다.
내가 나 자신의 순결에 의지하면 반드시 오염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동물적인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의 순결 곧 그리스도의 성결에 의지하면, 이 세상에 오염된 어떤 것이라도 정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결은 오염된 것을 정화시키는 힘이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하 5장을 보면, 다윗이 40년 동안 다스렸던 곳 가운데 여부스가 나옵니다.
예루살렘의 본래 이름인 여부스는 오염된 땅이라는 뜻입니다.
그처럼 죄악으로 물들었던 여부스가 헤브론에서 7년간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성결함을 입은 다윗 한 사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예루살렘으로 바뀔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무엇인가 더 많은 것을 남겨 주기 위해 애씁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남겨 주려 합니다.
물론 귀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이토록 오염되고 있는 판에, 도만 물려줄 경우 자녀들은 그 돈으로 반드시 여부스의 이 땅에서 오염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주어야 합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성결해진 우리의 삶을 남겨 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이 세상이 온통 여부스가 된다 해도, 우리가 남겨 준 성결의 삶은 사랑하는 우리 자녀를 지켜 줄 것입니다.
나아가 오염된 이 땅을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예루살렘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목적을 위해 우리를 불러 주셨고, 우리의 지나온 세월 속에 허물이 있었음에도 우리를 세워주시고 오늘까지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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