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행16:6-10)

Johnangel 2024. 7. 10. 08:33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행16:6-10)

                                                 

초대 안디옥교회는 금식하고 기도하여 유력한 지도자 “바울과 바나바”를 선택하여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내용은, 바울의 두 번째 선교여행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번 제2차 전도여행은, 자신의 고향 길리기아 다소를 거쳐서 제1차 전도여행 지역이었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지역의 성도들을 돌아보고, 소아시아 북쪽 지역인 무시아 지역으로 가서 비두니아와 본도로 해서 가바도기아로 거쳐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올 계획을 세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무시아 지역에서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지만, 성령이 이를 허락하지 않아 조용히 머리를 식히면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해안 도시인 드로아로 내려와서 얼마간 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바울은 건너편 마게도냐 지역에서, 한 청년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손짓하며 애타게 부르짖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마게도냐 지역은, 바울에게 전혀 뜻밖의 지역입니다.

전도는 필연적이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우선순위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목숨을 건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는 반드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이것이 성령의 역사다.”라고 단정하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성경은 “구체적인 사례”가 아닌 “원리”를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다음과 같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1)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고전2:10절을 보면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당시 고린도는 “철학의 도시 아덴”에 인접한 도시로서, 고린도에는 “지혜로운 철학자”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적인 지혜”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 담대함을 주십니다.

 

행1:8절을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권능 즉 성령”이 임하기 때문에 담대합니다.

따라서 “성령의 권능”을 받은 사도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담대하게 외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비전과 환상을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먼저 “비전과 환상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사명을 주어 환경과 싸우게 하십니다.

 

1)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행7:2절을 읽겠습니다.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가나안으로 보내기 전에 먼저 그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주시고 “환상 중에 하나님의 비전”을 보게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지시한 곳으로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행10:10-11절을 읽겠습니다.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에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택”을 받은, 베드로를 하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지역의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보낼 때, 먼저 “환상 중에 하나님의 비전”을 보여주었습니다.

 

3) 바울도 그랬습니다.

 

행16:9절을 읽겠습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주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바울이 아시아 땅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는 순간 “왜 주님께서 자신이 계획했던 아시아 선교를 막았는지”를 알게 되었고, 이튿날 항구로 가서 배를 타고 빌립보로 갔습니다.

 

3. 기도의 동역자를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스왈 J 스미스 목사는 “우리가 단순히 일할 때에는 사람이 일하지만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기도로서 “개척지”를 찾았고, 그는 기도하는 그곳에서 “기도하는 동역자”를 만났습니다.

동질규합(同質糾合)이란 말이 있습니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인데 “기도 꾼은 언제나 기도꾼들 끼리 모인다.”는 것입니다.

 

1) 바울은 기도하러 가서 루디아를 만났습니다.

 

행16:13-14절을 읽겠습니다.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옷감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바울이 “빌립보교회”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옷감장사를 하던 루디아”입니다.

루디아는 바울을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음의 동역자”였습니다.

 

2) 기도의 능력으로 귀신들린 여인을 고쳤습니다.

 

행16:16-18절을 읽겠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라,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기도의 능력”이 아니고는 “악한 귀신들”을 내어 쫓을 수 없습니다.

 

3) 기도의 힘으로 로마 간수를 변화시켰습니다.

 

행16:25절을 읽겠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그때 순식간에 옥 터가 흔들리더니, 옥문이 열리고, 묶였던 쇠사슬이 풀렸습니다.

따라서 도망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그들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간수가 졸다가 깜짝 놀라 눈을 떠서 감방 문이 열려 있는 것으로 보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할 때, 바울이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말합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가 “평범한 사람들”과 다름을 알았고, 간수는 그들에게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그때 바울이 그에게 “복음”을 전했고, 이들은 다 같이 손을 잡고 유럽 대륙의 운명을 바꾸는 “빌립보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야기 하나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낚시를 하러갔는데, 물이 빠져 나간 평편한 바위 위에 아이를 두고, 물길을 따라 이리 저리 옮기다가 아이와 너무 먼 곳까지 왔습니다.

오후가 되어 밀물로 밀려오자 아이가 있던 바위가 잠기기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아이는 아빠를 애타게 불렀으나, 낚시에 미친 아빠는 아이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해가 저물어 갈 무렵 아이가 있는 곳으로 왔지만, 아이를 두었던 곳은 이미 밀물이 삼킨 지 오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지금도 수많은 농어촌 지역의 어른들이 우리 성도들에게 구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망의 밀물이 밀려오는데도 불구하고, 세속의 낚시에 눈이 먼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요청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나라 농어촌의 어르신들은 2-3년이 지나면, 밀물이 삼키고 간 이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70-80세가 넘은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피폐된 농어촌의 주민들을 우리 교회는 외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영혼을 저버릴 수 없기에, 더위와 싸워야 하는 수고와 고생의 연속이지만, 우리 교회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전도여행을 떠나갑니다.

우리 교회의 젊은이들이 농어촌전도여행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이번에도 성령님의 도우심 안에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이번 농어촌전도여행이 될 줄로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