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가 시작되다 (사도행전 2:17-21)
사도행전 2장에는, 우리의 관심을 끄는, 또 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이 임하실 때,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하는 모습이 나타난 표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불과 바람 같이 임한 표적에 많은 관심을 갖고 “오늘도 이와 같은 표적이 임할 수 있다.”고, 기대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허황한 기대로 시간낭비하지 말고, 또 반복되지 않는 이 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자꾸 조르지 말고, 성경을 바로 이해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성경에 보면, 물론 삼위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에는, 항상 표적이 따랐습니다.
왕상19:11-12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호렙산에 가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의 존재가 그 자리에 임하셨고,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서뜨렸습니다.
또 바람 후에,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지진 후에 불이 지나갔고, 불 다음에는 세미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처음 임하실 때는, 하늘에 홀연히 큰 광체가 나고, 천군 천사들이 노래하고, 찬양하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고, 왕의 별이 나타났습니다.
여러분, 성부 하나님이 임하실 때도 표적이 따랐고, 성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임하실 때도 표적이 따랐다면, 성령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임하실 때, 전혀 표적 없이 조용히 임하실 수 있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실제로 성령이 임하시는 순간, 큰 바람소리가 들리고, 불의 혀 같은 것이, 사람들의 눈에 보였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폭포 중에 하나인, 이과수 폭포나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보면, 수백 미터 되는 낭떠러지에, 웅장한 폭포 물이 떨어질 때,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천지를 진동하는 큰 소리입니다.
또 무엇이 있습니까?
물보라와 아름답고 찬란한 무지개나 나타납니다.
엄청난 양의 물이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현상입니다.
자연도 이러한데, 하물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특별히 임재하실 때 “만물 가운데 아무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모든 만물은 떨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표적이 나타나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각각 역사하실 때, 특히 맨 처음 역사할 때, 이와 같은 표적들이 따랐습니다.
이것을 “처음 표적”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나타날 표적이 한 번 더 있습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고 있는데, 요엘의 예언은, 오순절을 통해 반만 이루어졌습니다.
나머지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19-20절을 읽겠습니다.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여러분,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언제입니까?
예수그리스도가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어떤 표적이 우리 주변에 일어날까요?
성경을 보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역사들이 일어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때가 되면, 하늘과 땅은 눈앞에서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제3의 창조라고 할 수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 우주의 지배자요, 의로운 왕이신 예수그리스도가 본격적으로 등극하시는, 아주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이 임하시는, 특별한 징조가, 하늘과 땅에서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강림 때, 나타났던 표적을 보며 “아, 나에게도 바람 같은 소리가 좀 들렸으면 좋겠다. 나에게도 성령 충만할 때 불의 혀와 같은 것이 좀 보였으면 좋겠다.”하는 것은 망상입니다.
성자의 표적이 반복되지 않는 것처럼, 성령이 교회에 처음 임하실 때, 나타났던 그 표적은, 반복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교회에, 성령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이 세상 마지막까지, 교회와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다시 불의 혀와 같이 보일 필요도 없고, 또 바람 같은 소리를 낼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성령은 이 자리에 계시고, 전 세계교회를 주님의 몸으로 묶어, 그 안에 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표적이 필요하겠습니까?
이것은 성경 말씀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고넬료 집안의 모든 사람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들을 때, 성령이 특별히 강하게 임하셨는데, 바람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까?
들리지 않았습니다.
또 불의 혀가 보였습니까?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에베소에서 바울이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셨고, 사마리아에서도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그때마다 불의 혀와 같은 역사와 바람 같은 소리가 들였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 2,000여 년 기독교 역사상 이와 같은 사례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성령이, 교회에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말구유의 기적이 다시 반복될 수 없는 것처럼, 오순절 성령의 역사와 표적은, 다시 반복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인용한 요엘 선지자의 예언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습니다.
이 점에서, 중요한 두 가지를 마음에 담아 두십시오.
첫째는, 성령 강림은, 말세에 속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말세”라는 말을 합니다.
둘째는, 성령이 임하신 사건과 예수 재림의 사건이 나란히 붙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강림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것을 경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예는, 예수님의 예언에서도 나타납니다.
예루살렘의 종말과 세계 종말이 잇따라 예언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말세를 살고 있습니다.
2,000년 전에 베드로가 성령 받을 때, 말세라고 했던 그때와 똑같은, 마지막 때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엄청난 시간이 흐른 것 같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똑같은 한때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정말 눈앞에 가까웠고,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는, 놀라운 표적이 나타날 그때가 머지않았습니다.
이런 때 “우리가 성령을 받고, 성령의 사람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말세를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주님이 재림하실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개인이 준비해야합니다.
교회가 준비해야합니다.
그리고 세계가 준비해야합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는” 마지막 때를 준비해야합니다.
말세는, 매우시급한 때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신앙을 저버리고, 세상에 빠져 받은, 은혜를 쏟아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항상 경종을 울리고 계십니다.
마치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가 날마다 잔소리를 하고, 날마다 조심하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성령은 날마다 우리를 향해 탄식한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해야합니다.
18절에 보면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라고, 했는데, 다시 말해서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부어주신다.”는 말은, 참 묘한 표현입니다.
“부어준다.”는, 말씀은 “쏟는다.”와 같은 뜻으로, 성경에 보면, 하나님 편에서 성령을 주실 때 주로 쓰였습니다.
잠1:23절을 보면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했고, 욜2:28절을 보면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고 했고, 사32:15절을 보면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주어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부어준다.”는, 말은 “진노를 쏟는다.”라는, 표현에서 “쏟는다.”와, 똑같은 의미로 사용하셨습니다.
겔7:8절을 보면 “이제 내가 속히 분을 네게 쏟고 내 진노를 네게 이루어서 네 행위대로 너를 심판하여 네 가증한 일을 네게 보응하되”라고 했고, 호5:10절을 보면 “유다 지도자들은 경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그들에게 물같이 부으리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부어준다.” 혹은 “쏟는다.”라는, 말은, 성경에서 “성령과 진노” 양쪽에 다 쓰이고 있습니다.
이 두 단어의 관계에서, 깨달아지는 것인데, 말세에 하나님께서는, 양극단의 결단을 내리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이것이 아니면, 저것입니다.
둘 다 최대치입니다.
따라서 “붓는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충만함을 말합니다.
적당이 따라주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도랑마다 물이 철철 넘치고, 강마다 물이 가득 차올라, 나중엔 둑이 넘치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말세에 하나님은, 은혜를 강같이 쏟아부어주시든지, 아니면 진노를 강같이 쏟아주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도,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도리밖에 없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넘치도록 은혜를 받게 되어 있고, 은혜 받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무섭게 받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부어 준다.”는 말은 “가득히 넘치도록 최대치로 우리에게 주신다.”는, 의미인 동시에 “끓어오르다. 솟아나다.”는 의미도 포함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는,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시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어떻습니까?
공중에서, 성령이 쏟아집니까?
아니면 내 안에서, 샘처럼 솟아납니까?
성령의 역사와 예수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는, 항상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하나 깨달아지면서, 마음 전체를 적시고, 채우고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요7:37-38절을 읽겠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한마디로 하나님 편에서는 부어주시는 것이고, 우리 편에서는 속에서 강수처럼 솟아나고, 샘처럼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의 은혜를, 자꾸 외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서 역사가 일어나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내면의 은혜는, 마귀가 역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증오나 불평, 고통이나 갈등 같은 것은, 마귀가 줄 수 있겠지만, 성령 안에서 강수와 같이 솟는 은혜를 깨달았을 때 얻는 기쁨, 그리고 그 기쁨 속에서 맛보게 되는, 능력과 내 속에 충만한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 이러한 것은 마귀가 절대 건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은 이미 교회에 임하셨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날마다, 체험하시는 성도들이 됩시다.
누구든지 간절히 사모하고, 마음 문을 활짝 열기만 하면, 성령께서 강수와 같이 풍성하게, 역사하기를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아직도 영적으로 빈곤하고, 성경도 보기 싫고, 기도하기도 싫고, 교회도 억지로 끌려 나가고, 설교를 들어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고, 엉뚱한 생각만 자꾸 떠오른다고 한다면, 영적으로 병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지체하지 말고 회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회개가 없는 곳에 성령의 역사는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회개, 진정한 눈물, 진정으로 사모하는 그곳에, 성령은 역사합니다.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성령님은 반드시 은혜를 주십니다.
마음에 막혀 있던 담을 허시고, 마치 강물이 홍수가 되어 쏟아져 들어오듯이, 주의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사모하면, 우리의 잃어버린 찬송, 잃어버린 기도, 잃어버린 전도를, 이미 교회 위에 충만히 임하신 성령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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