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찬양하라 (시편 150:1~6)
시편 150편은, 시편전체의 요약이며, 결론입니다.
내용인즉 누가 찬양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고, 무엇을 찬양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으며, 어떻게 찬양해야 할 것인지를 자상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든지 찬양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찬양은 신앙 간증이고, 곡이 붙은 기도이며, 여호와의 음성을 듣는 일이기 때문에, 찬양은 언제든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1절 말씀을 보면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땅에서는 성소에서 찬양하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은 궁창에서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소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가서 예배드리는 예배당, 그것이 성전일 수 있고, 성소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모시는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으로, 내 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예배드릴 때,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는 건강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데, 건강한 교회 안에는, 세 가지 소리가 있습니다.
기도소리,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소리, 찬양의 소리, 이 세 가지 소리가 항상 넘쳐날 때, 그 교회 성도는 건강해 질 수 있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곳이면, 감옥에 갇혔어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과 실라, 그들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찬양했습니다. 그러므로 찬양은 하나님의 능력이고, 권세이고,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찬송가 436장 3절 가사에 보면 “산천도 초목도 새것이 되었고 죄인도 원수도 친구로 변한다. 새생명을 얻은 자 영생을 누리니 주님을 모신 맘 새하늘이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모두 다 아름답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모든 것이 다 아름다운 것이고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 찬양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까요?
각종 악기를 다 동원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였습니다.
3-5절을 보면 “나팔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가운데 나팔은 관악기입니다.
비파와 수금은 현악기입니다.
제금은 타악기입니다.
소고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여호와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라고 명령합니다.
누가 찬양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6절에 보면 “호흡이 있는 자는 다 여호와를 찬양하라”고,하였습니다.
호흡이 있는 자, 즉 코로 숨을 쉬는 자마다,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다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란 말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살아있는 사람을 의미고, 두 번째는,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살아있는 자, 그가 바로 호흡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호흡이 있는 사람은 기도가 있고, 성령의 교통이 있는 것입니다.
시22:3절에 보면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찬양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 받은 증거는, 찬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 모든 주안에서, 기뻐하고 즐겁게 삽시다.
주님을 소리 높여 찬양합시다.
그의 이름을 높입시다.
이 시간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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