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사랑의 섬김으로 (요한복음 13:1-11)

Johnangel 2022. 4. 11. 05:17

 사랑의 섬김으로 (요한복음 13:1-11)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시간이 되었을 때, 특별히 눈에 보이는 방법으로 말씀을 증거 해주신 것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메시지이기에 “예수님께서 몸으로 친히 보여 주셨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랑으로 서로 섬김을 통해 내가 하던 일을 너희가 계승하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1. 사랑은 자기의 위치를 버리고 낮아지는 겸손입니다.

 

3절을 읽겠습니다.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동격으로써, 하늘로부터 오셨다가, 다시 하나님의 보좌 우편으로 돌아가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존귀하신 예수님께서, 지금 수건을 들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항상 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는 모습이 있어야, 복음의 절대 능력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이런 행동을 하셨을 때, 제자들이 느낀 감정은, 아마 당혹감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의 더러운 발을 씻기는 것은, 종이나 노예들이 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런 일을 하셨습니다.

 

따라서 세상에 감동을 주는 교회의 모습이 되려면, 반드시 세상에 당혹감을 주어야 되고, 감동을 주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한국교회가 능력을 잃어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극히 상식적인 일들만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모습으로, 내려가는 그런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고현교회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자기 발을 씻으려 할 때, 말리며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 내 발을 씻길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 가지 사랑의 유형을 알 수 있습니다.

①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고 ②사랑을 하지도 받지도 않는 사람이 있고 ③사랑을 받고도 배신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사랑을 받고 배신하는 사람이, 제일 나쁜 사람이겠지만, 여기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고는 절대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지금 “내 힘으로 하겠다. 스스로 개척하겠다. 주님의 도움이 전혀 필요 없다.”이런 자세입니다.

 

그런 베드로의 삶에 대해서, 예수님은 호되게 질책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탕자는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받아, 먼 곳으로 가서 허랑방탕한 삶을 살다가,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결국에는 돼지우리에서 살다가 “아버지 집의 품꾼으로 받아 달라.”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탕자를 품꾼이 아니라, 아들로 맞이합니다.

 

그리고 살찐 송아지를 잡고, 금가락지를 끼워주고, 신을 신기고, 좋은 옷을 입힙니다.

 

염치는 없지만, 그런 아버지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것, 아버지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아들 됨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여러분, 여기 베드로의 약점이 무엇입니까?

그가 끝까지 우기면서 “주님 제 발은 씻길 수 없습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자체가, 우리는 잘못된 자존심이고,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될, 가장 중요한 자세는 “나는 허물이 많은 죄인이고, 나는 목욕까지도 필요한 더러운 종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비로소 세상에 나가서,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함으로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제일 잘 섬기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가하면 누가 다른 사람을 가장 크게 용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용서를 가장 크게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더러운 발까지 씻기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뿌리가 예수님께 있기 때문에, 그 예수님의 측량할 수 없는 큰 사랑을 받은, 우리들도 능히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길 수 있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사랑이 무엇입니까?

자기가 낮아져서 다른 사람을 섬김을 통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당혹하게 만들고, 감동 가운데 빠지게 만드는 것이, 성도된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할, 진정한 사랑의 모습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측량할 수 없는 큰 사랑을 받은 자로써, 서로 사랑으로 섬기는, 고현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사랑이라는 것은 빚진 자의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14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다시 말해서 “너희는 주님의 은혜를 받았으니, 나에게 갚지 말고, 더 연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나누라.”는, 것입니다.

 

1:14절을 보면,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빚진 자”라는, 의식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일을 많이 하고, 난 다음에 “자기 자랑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나에게 은혜와 권능을 부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자랑해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주도권을 잡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의 종이 아닌, 예수님의 종이 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그것은 제자들 간에 “누가 크냐?”는,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 세배대의 아들들인 요한과 야고보 어머니가 자기의 두 아들 가운데 “한명은 주의 좌측, 한명은 우측의 자리를 주십시오.”라고, 예수님께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순간 살벌하게, 긴장된 분위기가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끼리 시기심과 질투심으로, 팽팽하게 서로 견제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나 그런 일은 다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세속의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속의 질서 가운데 주도권을 잡으시고, 가장 크신 분이 가장 밑에 내려가서, 물을 갖다 놓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수건을 가지고 발을 닦아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세속의 질서가 다 깨져버리고, 서로 낮아지고, 섬기려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교회공동체의 문제는, 교회공동체 전체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만 대야에 물을 갖다 놓고 수건을 들고 와서 발을 씻기겠다.”고 나서면, 그 안에 서로 “내가 크다.”고, 하는 교만한 분위기가 절대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인격을 닮은 그 한 사람만 나오면, 전체의 질서를 다 바꾸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사랑의 힘으로 무너지게 되어 있고, 새로운 질서가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많은 교인들이, 교회를 한탄하고, 정죄합니다.

 

“이 교회는 사랑이 없다. 이 교회는 기도가 없다. 말씀이 없다. 찬송이 없다. 전도가 없다. 등등…”

 

놀라운 것은, 이렇게 말하는 그 사람은 “자기 자신이 지금 교회의 가장 큰 대적이 된다.”는, 것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예수 피로 거듭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아십니까?

예수님의 은혜와 충만한 능력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과 주도권을 쥐고, 세상에서 살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교회에 사랑이 없다.”고, 말할 때, 한 사람만 나타나서, 정말 헌신적인 사랑을 해보십시오.

그러면 교회의 전체의 분위기가 다 바뀌어버립니다.

 

한사람만 나와서 생명을 걸고 기도하면, 교회 전체가 기도의 분위기로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고통 가운데 찬양하는 사람이 한사람만 나오면, 교회의 전체가 찬양하는 분위기로 바뀌어버립니다.

 

그러므로 그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세상 가운데 사랑의 주도권을 가지고, 먼저 섬기는 모습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도권을 잡는다는 무엇입니까?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낮아지는 겸손입니다.

빚진 자의 의식을 가지고, 세상의 질서 앞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도전이 무엇입니까?

내가 새로운 질서를 깨우도록, 사랑을 먼저하고, 기도를 먼저하고, 말씀을 먼저 외치고, 찬양을 먼저 하는 모습입니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오늘도 힘든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여전히 관계 맺은 사람들과는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들 앞에서, 세상질서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내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섬김을 통해 사랑의 질서를 바로 세워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