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늘 급한 일로 쫓기십니까? (골로새서 4:2)

Johnangel 2022. 6. 25. 08:17

늘 급한 일로 쫓기십니까? (골로새서 4:2)

 

여러분, 교회라는 건물 안에서 행하는 나의 삶과, 교회라는 건물 밖의 나의 삶이, 어떤 상관이 있습니까?

혹시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건물과 장소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반석 같은 신앙고백 위에 사람들의 모임과 회중을 세우실 때, 그 어떤 것도 이들을 막을 수 없고, 죽음도 멈추게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세상과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 속에 있지만, 세속화되지 않아야 하고, 세상과는 다른 교회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 진정한 교회가 되고자 하는 갈망이 있을 때, 그 어떤 어려움도, 그 어떤 권세도, 교회의 확장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두 종류의 기도를 확보해야 합니다.

하나는, 육신을 위한 기도확보이며, 다른 하나는, 영혼을 위한 기도확보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5분 이상 호흡을 하지 못하면, 뇌기능이 상실되는 것처럼, 성도들의 영적호흡인 기도가 끊어져서, 하나님의 능력이 공급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영적으로 무능한 자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고 한 가정의 제사장으로서의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권이 회복되는 기도가 확보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바울은 “골로새교회 교인들에게 기도하는 성도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가장 많이 강조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것은, 가장 적게 실행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누구나 기도의 필요성과 유익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

그런데 “바쁘다”는 이유로, 기도의 자리로 들어가지 못한 채, 피상적인 독백에 그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에게 기도보다 더 시급한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성경은, 기도에 대하여, ⓵영혼의 호흡이며, ⓶우리 그리스도인의 표지라고, 정의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도의 정의에 동의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도가 실제적인 하나님과의 대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예배시간의 한 순서로만 인식되거나, 자녀문제나 경제문제와 같은 위급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영적으로 깊이 교제하는 성도의 특권으로 누려져야 합니다.

1:35절에 보면, 예수님은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목표가 분명한 성취의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그 완성된 삶을 사실 수 있었던 비결은, 예수님의 새벽 이른 시간의 기도였습니다.

 

따라서 예수님도 기도로 삶의 목적을 부여잡고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셨다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삶의 완성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찰스 험멜은, 그가 쓴 “늘 급한 일로 쫓기십니까?”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느라고 잠시 멈춰 설 때, 시간의 부족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가 처해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곧 그것은 기본적으로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문제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게 될 때, 삶의 우선순위를 정립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믿음의 사람으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디언 선교에 헌신했던 “데이빗 브레이너”는, 30대의 짧은 생애를 통해 후세까지 영적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 쓰임을 받았으며, 예수님께서는 33세에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언제까지 시간이 없다고만, 핑계하시겠습니까?

언제 주의 일을 시원하게,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기도에 대한 두 가지 원리를 말씀합니다.

 

1. 기도를 항상 힘쓰라는 것입니다.

 

2절에 상반절에 보면 “계속 기도하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분주한 체질을, 부단한 기도체질로 바꾸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이 왜 성도들에게 꾸준하게 기도하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기도의 생명선이 끊어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의중을 접수하고, 나의 형편을 아뢰는 기능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의 삶은, 결코 비천한 삶에 이르지 않습니다.

주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열매가 풍성한 삶으로 이끌어주십니다.

그러므로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항상 힘써야 하는 것이 기도인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116:1-2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하나님은 평생 기도하는, 믿음의 성도를 붙잡아 주십니다.

중국 선교사로서 아름다운 삶을 보인 “허드슨 테일러”는, 선교사의 길을 시작하는 후배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여보게, 자네에게 맡겨진 지역에 들어가려면 무릎으로 전진해야 된다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는 평생을 무릎으로, 전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무릎을 꿇는 삶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승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2. 기도로 감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2절 하반절에 보면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간구하는 기도를 많이 합니다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주신 것을 감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감사가 앞장서지 않는다면, 우리는 원망과 불평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의 질적 수준은, 소유나 문화적인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심령의 상태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감사를 계발하십시오.

바울은 빌4:6절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빌4:7절에서는 “시시각각 우리에게 엄습해오는 삶의 두려움과 염려를 우리 힘으로는 떨쳐버릴 수 없지만,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반드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평강으로 지켜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어떤 어려운 환경이라도 주님의 은혜로 극복할 수 있다”는, 마음의 평안이 있을 때, 우리는 장애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창공을 높이 나는 독수리는 강을 어떻게 건너갈까를 염려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장애물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기도의 줄을 붙잡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삼성경제 연구소에서 “21C이해의 키워드 7가지”를 발표했습니다.

 

1.응축의 시대/작은 것이 아름답다.

2.유연의 시대/부드러운 것이 강하다.

3.모험의 시대/남이 가지 않은 곳에 길이 있다.

4.공유의 시대/나눌수록 커진다.

5.특이의 시대/튀는 인재가 일을 낸다.

6.지식의 시대/보이지 않는 것이 돈이 된다.

7.기본의 시대/태풍의 핵은 고요함이다.

 

이 내용은, 우리 성도들의 성공적인 삶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성도의 삶은 위의 7가지 요소를, 모두 통합 심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기도 안에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삶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될까요?

 

첫째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노인 정원사가 예쁜 꽃을 키웠는데 “어떤 사람들이 회의를 했다.”하면, 정원에 있는 꽃을 밟아서, 꽃을 피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인 정원사는, 생각하다가 왕에게 “꽃을 밟지 말라는 피켓을 세워 달라.”는, 탄원서를 내자, 왕은 “이 길로만 다니고 꽃을 밟지 말라.”는, 하나의 티켓을 세웠는데, 이것이 지금의 에티켓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지혜로운 말을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4:4절을 읽겠습니다.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우리 속담에도 “고기는 낚시에 잡히고, 사람은 말에 잡힌다.”고, 했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의 삶에는, 말이 중요한 것입니다.

 

둘째는, 기도의 즐거움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아무 쓸모없는 종교 행위에 불과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의무이기 이전에 특권입니다.

기도는 선한 일중에 선한 일이기에, 기도의 즐거움을 회복해야 합니다.

 

극작가인 “죠지 버나드쇼”는, 자신의 비문의 글을 미리 준비하여 자신이 죽으면, 묘비에 이렇게 기록하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어영부영 이렇게 살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셋째는,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팀웍이 필요합니다.

초대교회 120명의 성도가 함께 기도할 때, 강력한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이 시간 성령축제에서 우리 모두가 더욱 힘써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주님 앞에 나아가 영적 시너지 효과를 창출합시다.

 

넷째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완벽한 도덕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가진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비록 누더기 같은 초라한 모습이지만,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나는 하나님을 갈망합니다.”라고, 고백할 때,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금년에도 우리에게 기도할 수 있는, 믿음과 환경과 동역자를 주신 것을 감사하고, 자신과 가정과 우리교회와 사역을 위해 기도하여 하늘의 영권을 회복합시다.

하나님의 귀한 은혜가 기도하는 이 시간 우리 성도들의 가슴과 가정에 풍성하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