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교회를 세우는 영광스런 동역자 (사도행전 2:42)

Johnangel 2022. 6. 18. 23:00

교회를 세우는 영광스런 동역자 (사도행전 2:42)

 

우리 성도들이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건강한 교회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되어서, 좋은 교회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의 최종 정착지가 되게 하는 것이, 교회의 비전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땀과, 눈물과, 희생과 기도가 제단에 스며들 때, 우리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공동체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공동체는, 두 가지입니다.

그것은 가정공동체와 교회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교회공동체에 안에, 그렇게도 문제가 많은 것일까요?

그 이유는, 교회자체의 연약성 때문이 아니라, 교회공동체에는 연약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치 병원에 병들고, 연약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때때로 병원에서 의료사고도 일어나고, 병원에서 오히려 병에 감염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병원은, 사람을 살리고, 건강하게 하는 기관으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가지고 있는 허물과 연약성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여전히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 모인 우리들이 거룩하기 때문이 아니라, 부족한 우리들을 거룩하고 정결하게 만들어 주시는,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 있고,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교회의 허물과 연약함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면 됩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면, 교회는 건강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됩니다.

또한 그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자긍심이 넘치는 행복한 성도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를 누가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2:19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즉, 우리들의 정체성에 대하여, 우리들은 고현교회의 손님이 아니라, 동일한 하나님의 가족이요, 식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상호의존 상호책임을 지는 가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우리교회가 건강한교회가 될 수 있는 책임을, 하나님의 가족인 저와 여러분에게 맡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었다”는, 것은 “그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건강한 신앙인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더욱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인 줄로 믿습니다.

 

개혁자 죤 칼빈은 교회에 대해 정의하기를 어머니의 품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가 건강하면 좋은 젖으로 건강한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것처럼, 교회가 건강해야 성도가 건강해 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47:9절을 읽겠습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들어 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즉 “우리교회가 건강해야 여기에 속한 우리 모두가 건강한 성도가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통해 모든 범사가 형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교회가 건강하게 될 수 있을까요?

 

1. 바른 가르침과 배움이 있어야합니다.

 

42절을 보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라고, 했습니다.

 

좋은 교회는, 먼저 바른 가르침과, 배움이 있어야 합니다.

초대예루살렘교회는, 말씀을 배우는데, 전력을 다해 힘썼습니다.

그 결과, 튼튼한 교회, 건강한 교회로, 든든히 서 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인격입니다.

그러나 신앙인격은, 저절로 갖추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한 믿음의 선배와의 교제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잘 듣고, 순종함으로 인하여, 주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아 변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3:15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고 했고, 12:5절을 보면 “만일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고 했고, 13:17절을 보면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내 마음에 합한 목자, 바로 담임목사를 말합니다.

교회는, 담임목사를 통해 하나님의 비전이 주어지고, 설교말씀을 통해 바른 지식이 주어지고, 바른 지식이 명철을 가져옵니다.

따라서 이러한 모습이, 우리고현교회 성도의 모델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남들이 믿는 만큼만 믿어서는, 그 사람들을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남들이 헌신하는 것만큼만 헌신해서는, 그 사람들을 뛰어 넘을 수 없습니다.

남들이 기도하는 것만큼만 기도해서는, 그 사람들을 뛰어 넘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기준을 높여야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기준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기준을 가지고, 사는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진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세상이 우리의 비교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인생은, 허망한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평생을 사는 동안, 목사의 가르치는 말씀을 잘 받으시고, 그 가르침에 순종하여, 삶에 적용하면서, 기적을 경험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축복합니다.

 

2. 바른 교제가 있어야합니다.

 

42절을 보면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라고, 말씀합니다.

 

교회생활을 통하여, 여러분이 가진 행복을 나누어 가질 때, 교회는 행복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하나 축복받고, 나하나 행복하면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이 건강한 신앙인이 되도록, 나의 것을 나누고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실천할 때,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이란, 바른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혼자 타는 석탄은, 결코 온전히 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너무 믿지 마십시오.

모이지 않고는, 바로 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다른 사람과 교제해야 내 영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마치 자동차 밧데리가 죽었을지라도, 살아있는 밧데리와 케이블로 연결시키면 되살아나듯이,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내가 죽었을 때, 나를 살리는 자가 될 수도 있고, 나 또한 다른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신앙성장을 위해서, 교제의 폭을 넓고, 깊게 하십시오.

그리고 교제의 중심은, 반드시 예수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11:3절에서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를 중심하여, 참된 교제와 따뜻함이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영혼이 살아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격려와 위로는,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격려하고, 위로하고, 세워주고, 붙들어주는 아름다운 교제가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바른 기도가 있어야합니다.

 

42절을 보면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고, 말씀합니다.

 

중세기가 종교적으로 암흑시대가 되었던 것은, 당시 사제들이 평신도들의 손에, 성경을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신도들은 사제들에 눌려서,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루터나, 칼빈, 등 개혁자들에 의해, 성경을 평신도들의 손에 돌려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1의 종교개혁입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와 “평신도에 대한 재발견을 제2의 종교개혁”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평신도를 재발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에서 만나게 되는, 그리스도인들은 “상투적인 예배”를 위해,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믿음 생활은, 하루하루의 실제였지, 일주일에 한번 모이는, 틀에 박힌 믿음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46-47절을 읽겠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가족이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고, 서로 사랑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고, 희생할 수 있기 때문에, 더 행복할 수 있으며, 지역사회에서 칭송을 받으면서, 우리고현교회는 더 부흥할 수 있습니다.

개혁신학자들은 평신도를 가리켜 “교회의 동결된 자산”이라고 말하고, “기도는 평신도의 동결된 자산”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철강 사업가 카네기에게, 기자가 “당신은 마음의 평화를 어떤 방법으로 찾고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매일 기도합니다. 그리고 내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깁니다. 이로 인해 정신적 갈등이나 번민은 내게서 사라지게 되고 평안과 능력이 나를 사로잡습니다. 그리고 나의 기업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은 책임져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말대로 우리의 건강이나 사업은, 모든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인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께, 나의 생활을 드리는 절대위임의,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나라의 창고를 여는 황금열쇠입니다.

기도는, 주님께 있는 무한한 자원을 가져다쓰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성도들은, 이 황금열쇠인 기도를 활용하지 않아서, 게으름이나 불신으로 녹이 슬어있습니다.

 

이 시간 습득한 말씀의 지식을, 기도와 성령의 능력 안에서, 응답과 기적을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일을 위해, 고전1:10절에서, 말씀하시는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으로, 담임목사와 같은 열매를 맺는, 주님의 제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담임목사와 더불어 목회비전에 동역자가 되어, 교회를 부흥시키고, 내 가정을 살리고, 이 지역을 살리고, 세계열방을 살리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