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복음의 능력 (로마서 1:16~17)

Johnangel 2022. 8. 9. 14:55

복음의 능력 (로마서 1:16~17)

 

저는 개인적으로 성경에서 “저 분처럼 살고 싶다.”고, 나에게 큰 도전을 주신 분 가운데, 단연 탁월하신 분은, 바로 바울입니다.

바울이 살았던 모습을 보면, 그는 진정 “인생을 통달한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4:11-13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은 이렇게 살았기에,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서양문화와 발전은, 바울이 전한 복음 위에 세워진 세계입니다.

그렇다면 세계사의 대 변혁을 가져 온, 사도 바울의 탁월한 삶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요?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당시 로마인들의 눈에 비친 그리스도인은, 식민지 백성들이 믿는 종교, 더구나 그 교주로 불리는 예수는 로마법에 의해, 가장 극악한 흉악범들이 받는 최고의 형벌인 십자가에 달려 죽은 죄인으로, 인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불경스럽게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과 자기는 하나라고, 선언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유대교에서 파생된 하나의 이단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당시 세계를 통치하던 로마인들도, 유대인들조차도 부끄러워했던 이 복음을, 사도 바울은 16절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타나나서”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잘 살려면, 가장 먼저 인생의 근본적인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겪는, 모든 고난과 결핍과 혼란은, 죄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거의 매 주일마다, 강단에서 설교하며, 죄와 관련된 문제를 말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한 복음을, 제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과의 화목. 이웃과의 화목, 나 자신과의 화목”을, 깨뜨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스스로의 노력과 공로나 지혜로 죄로 인하여 깨어져 버린, 관계를 회복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3:25-26절을 읽겠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난과 피흘리심으로 이루신 그 “의”를,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주어서 “우리를 의롭다.”고, 선포해 주심으로 말미암아, 죄 문제를 해결 해주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명절 때마다, 대통령 특사가 있었습니다.

특사는, 대통령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죄짓고 감방에 앉아 있는 죄수들이, 아무리 나를 석방해달라고 소원한다고 해서, 대통령의 특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대통령만이 자신의 절대적인 권한으로 특사하면, 무슨 죄를 지었던 관계없이 그 사람은, 감방에서 나가는 것입니다.

나갈 자격이 있어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특사했기 때문에, 더 이상 죄인으로 인정이 되지 않고, 마치 죄가 없는 것처럼, 감옥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의인이 된 것은, 의인이 될 만한 노력이나 공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린 “대속의 의”를, 그냥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특사로 말미암아, 의인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이고,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유난히 많이 핍박했던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당시 성전을 지키던 군사들을 이끌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기도 하고, 심지어 신실한 초대교회 지도자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서 죽이는데, 앞장을 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회심을 했다.”고, 하더라도 양심에 심한 가책과 고통을 받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죄의식이나, 죄책감으로, 바울은 아무 일도 못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의”를, 자신의 의로 받아 들여 의인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선언했던 것입니다.

 

2.복음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17절에 보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원어의 뜻은, “내적인 믿음이 밖으로 나와 행동하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 공로 없이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의” 즉, 믿음을 선물로 받아서, 죄로부터, 저주로부터, 고난으로부터, 해방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그 은혜에 대한 믿음이, 저절로 행동으로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 주는, 믿음의 행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복권에 당첨된 것을 확인한 사람은, 그냥 그 복권을 쳐다만 보고 있지 않습니다.

복권 당첨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복권을 가지고, 은행에 가서, 그 돈을 찾아 누리는 삶을 살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입니다.

 

2:22절을 읽겠습니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그렇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믿고 행할 때, 하나님 능력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몇 번 말씀드린, 전주에 사시는 문무양 장로님은, 지금까지 중견기업을 운영하시면서, 국내에 2교회, 해외에 3개의 대학과 17개의 교회를 건축하셨습니다.

 

그분께서 어느 날 저를 집으로 초대하여, 언제 어느 나라에 얼마의 예산으로 대학과 교회를 건축을 했는지, 사진과 자료를 모은 파일을 보여 주시며, 저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힘주시는 그날까지 이 사역을 계속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하나님께 한 서원을 지켜 나가는, 신실한 믿음이 바로 “믿음으로 믿음에”이르는,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저는 우리교회와 성도들을 “마중물 교회” “마중물 성도”라고, 생각합니다.

 

마중물이 뭔지 아십니까?

옛날 시골에서 펌프에 물이 안 나올 때면, 한 바가지의 물을 넣고, 계속 펌프질을 하면 물이 나옵니다.

무한정의 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마중물이라 부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역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조금 헌신할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마중물처럼, 우리를 써 주심으로써, 오늘까지 우리교회와 성도들을 통해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인도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케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54:2-3절에 보면, 하나님은 믿음의 확장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 이는 네가 좌우로 퍼지며 네 자손은 열방을 얻으며 황폐한 성읍들을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것임이니라.”

우리 모두 행동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말씀하신, 영육의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6절에 보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아무 공로 없이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선물로 받아 의인이 되고 “믿음으로 믿음에”이르게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여기 “능력”은, 헬라어의 “두나미스”로서, 영어로는 영어로는 “다이너마이트”입니다.

다시 말해서, 가공할 만한 폭탄을 말합니다.

 

복음 안에 들어 있는 능력은, 믿는 자들을 통해 위대한 일들을 행하십니다.

1;8절에 보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하고, 3:6절을 보면 “예수 이름으로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고전2:2절을 보면 예수께서 베풀어주신 십자가의 사랑이 내 삶에 최우선이 되도록 변화”시켜 주십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을 한번 보십시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은, 당시 사회에서도 엘리트 그룹이 아니었습니다.

가난한 소외 계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당시의 사회를 변화시켰습니다.

황제보다도 더 강력한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학문이나, 지위나, 배경을 전혀 의지하지 않고, 오직 복음의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오늘도 이 복음의 능력이, 우리에게 죄를 이기게 해줍니다.

세속을 이기게 해줍니다.

거룩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게 해줍니다.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은 바울 당시처럼, 복음이 부끄러운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기독교인인 것이, 부끄러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실종이 되고, 복음의 능력이, 실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공로로, 우리의 의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이 땅에 보내어 십자가에 피흘려 죽게 하심으로 이루신, 그 의를 믿는 자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골1:23절에서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의”가 나타고, 복음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고,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행동하는 믿음의 확장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따라서 복음은, 내 자신을 변화시키는 능력, 가정을 변화시키는 능력, 직장과 사업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 그 자체인 것입니다.

 

지난 주 불볕더위 속에 비지땀을 흘리며, 제31차 농어촌전도여행에서, 가는 전도자 혹은 보내는 전도자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 안에서, 쓰임을 받아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맺은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