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다니엘 6:16~24)

Johnangel 2022. 10. 30. 18:19

왕은 만수무강 하옵소서 (다니엘 6:16~24)

 

오늘 본문의 배경은, 다니엘을 둘러싼 세력과의 권력 싸움으로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다니엘은 분명 남유다의 포로이며, 바벨론의 총리요, 재상으로서 역할을 감당한 사람인데, 새로운 나라 메대와 바사(페르시아)가 세워졌음에도, 여전히 다리오 왕의 총애를 받아 총리 중의 총리, 선임 총리로서, 모든 개국공신들보다, 앞자리에 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온갖 궂은일을 다 해서, 힘겹게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동안 수고한 대가와 노력의 결과를 얻고자 하는데, 이전 왕조의 관료가 떡하니, 그들 위에 앉아 있을 때, 개국공신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다니엘을 무너뜨리고,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묘책을 짜냅니다.

 

그것이 바로 다니엘서 6:7절입니다.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모든 관료들이 올린 이 상소를, 다리오 왕이 쉽게 거절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다리오 왕의 왕권을 강화하고, 근동지역의 왕으로서, 신적 영향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그들의 상소는 나름 일리가 있는 조치였고, 다리오 왕에게 유익한 결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다리오는 왕이지만 개국공신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왕에게 상소를 올린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그들은 단지 왕과 신하의 관계를 넘어서, 전쟁터에서 피를 나눈 사이 이기에, 왕에게 마땅한 요구와 요청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런 개국공신들의 요청으로 말미암아, 메데 바사 전 지역에서 30일간 왕 이외 다른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구하거나, 비는 행위를 철저히 금하여졌습니다.

이는 오롯이 백성들이 다리오 왕에게, 집중하게 하는 시기를 가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것이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개국공신들의 계략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일로 자신에게, 칼날이 향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오히려 다니엘은, 정공법으로 전에 하던 대로,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고, 하루의 세 번씩 그의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쉬지 않습니다.

 

10절을 읽겠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왕의 조서가 내려갔음에도, 다니엘이 여전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쉬지 않자, 다니엘을 죽이고자 계획한 개국공신들은, 벌떼처럼 왕에게 달려갑니다.

그리고 “왕이시여! 왕의 명령, 어명을 어긴 자가 있습니다.”라고, 왕을 충동질을 합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 곁에 있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충동질하고, 여론몰이를 하면 어떻게 됩니까?

나도 모르게 흥분하게 되고, 감정이 격화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다리오 왕 역시 개국공신들의 여론몰이로 인해서, 흥분을 하게 되고, “그 못된 놈을 당장 잡아들이라!”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왕 앞에 포박되어, 무릎을 꿇여 놓인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다니엘입니다.

다리오 왕이 왜, 다니엘을 그토록 아끼었는지는 모릅니다.

다니엘은 이미 노쇠하여, 관직에서 은퇴해도, 충분히 남는 노년의 사람입니다.

 

또한 그는 이전 왕조의 고위관직자로서 어찌보면, 다리오 왕에게 있어서 숙청 제1호에, 해당하는 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오왕은, 다니엘을 전적으로 존경하고, 그를 아낍니다.

 

다리오왕이 다니엘을 얼마나 아끼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8-20절을 읽겠습니다.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새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오락을 그치고 잠자기를 마다하니라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다니엘이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묻되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하니라”

 

여러분, 거대한 강대국의 왕이, 그저 노년의 한 재상으로 인해서, 이토록 아파하고 걱정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그리고 이토록 아끼고 걱정하고, 사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 넣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왕의 위엄과 권위를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개국공신들의 요구와 요청으로 인해서, 자신이 직접 도장을 찍고 세운 법을 함부로 변경하거나 수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왕의 준엄함과 절대적 권위를 나타내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다리오왕은, 다니엘을 그토록 아끼고,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굶주린 사자들이 가득한 사자굴에, 다니엘을 던져 넣게 된 것입니다.

 

17절을 읽겠습니다.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어귀를 막으매 왕이 그의 도장과 귀족들의 도장으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에 대한 조치를 고치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더라,”

 

다리오 왕의 행동은, 이 일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하게 왕의 위엄, 권위를 드러내고자 했던 일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철저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역량과 정치적 논리의 힘을, 드러내기 위해 결정을 한 것입니다.

 

다리오 왕이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고, 자신의 위엄과 권위를 주장하며,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굶주린 사자굴에 던진, 다니엘을 지키시고 구하셨습니다.

이 장면은 매우 역설적인 장면입니다.

 

여러분, 상상해보십시오.

한순간도 잠을 이루지 못한 다리오왕은, 새벽 미명에 슬피 울면서, 사자굴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아 다니엘아 살아있느냐?”라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이미 사자들에 의해 찢기워졌을 것을 예상한 다리오 왕을 향하여, 21절에 보면, 다니엘은 너무 천하태평하게 “다니엘이 왕에게 아뢰되 왕이여 원하건대 왕은 만수무강하옵소서.”라고, 말합니다.

 

이 모습은, 큰 나라를 세우고, 왕의 권위와 능력과 존엄함을 강조하며, 스스로 근엄함을 세우고자 했던, 다리오 왕이 오히려 멸망한 나라 유대나라의 포로였던, 다니엘보다 못한 자로 비춰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당대 모든 패권을 장악한 다리오 왕이었지만,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은, 다리오 왕에게 진짜 신이 누구인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명확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함께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더욱 더 드러내시고, 나타내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나를 드러내고, 나를 자랑하라고 말합니다.

내가 강해져야 하고, 내게 힘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주의 자녀 된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누가 참 신이시며,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드러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계시는 하나님, 세상만물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주님 앞에 우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요?

하나님을 마주하게 될 때에, 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엎드릴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다리오 왕 역시 하나님께 항복을 합니다.

 

저는 26-27절에서부터, 기록된 다리오왕의 조서가 마치 항복 선언같이 느껴집니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들리는 소리는 “너가 힘을 가져야 한다. 너가 왕이 되어야 한다. 너가 우두머리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소리가 성도된 우리에게도 들려와, 흔들리게 하고, 유혹에 빠지게도 합니다.

 

신약의 초대교회 성도들 안에서도, 이와 같은 소리에 미혹되어, 정욕에 빠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시금,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며, 참 하나님 되시고, 능력의 주되시는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엎드릴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구원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또한, 메데-바사(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온 땅에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28절에서, “이 다니엘이 다리오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는 말씀은, 단지 다니엘이 죽을 때까지 총리로 호의호식하며 살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에게 형통함은, 하나님과의 관계로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서 다니엘은, 자신의 노년의 삶 속에서, 늘 영적인 민감성과 민첩성을 가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깊은 교제의 삶을 살았음을 보여줍니다.

즉, 영적으로 깨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교제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라 하시는 일들을, 충성스럽게 순종함으로 우직하게 감당함을 하였습니다.

실제로 많은 성경학자들은, 예레미야가 예언하였던 바벨론의 70년의 포로생활 이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그 일에, 다니엘이 제2의 출애굽을 가능하게 하도록, 밑거름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항복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내가 지는 것, 내 성질을 죽이는 것, 내 주장을 내려놓는 것이, 어쩔 때에는,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주님을 높이는 것임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따라 살아가는 인생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고, 나타내시도록 선한 도구로 쓰여지기를 축복합니다.

 

다니엘이 그의 전 생애를 통해 그러하였고,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그러하였듯이, 심지어는 메데바사(페르시아)제국의 다리오 왕조차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높이며 살았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도 영적으로 민감하여져서, 다니엘처럼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도구로 아름답게 쓰여지도록 다듬어지고, 준비된 귀한 그릇이 되기를, 오늘도 변함없이 살아 계시는 존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