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전능하신 하나님 (호세아 12:3~6)

Johnangel 2022. 10. 29. 10:01

전능하신 하나님 (호세아 12:3~6)

 

하나님은 위대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힘 앞에 감동받지 않으십니다.

또한 주님은 지혜의 원천이시므로, 인간의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을 감동시키고자 하는 것도,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참회 즉, 회개하는 자를 향해서, 마음에 감동을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감동하시면,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 주십니다.

 

3-4절을 읽겠습니다.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하나님이 야곱을 벧엘에서, 만나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그의 회개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을, 5절에서 보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이 그 동안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그 약속을, 친히 성취해 가실 날들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야곱은 인간의 계책과 술수와 계략을 통해서,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그 약속을 성취해 보려고, 몸부림치면서 살았습니다.

32:24절을 보면,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천사를 붙들고도, 인간적인 열심에서, 그를 꺾어보려고 겨루었습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이토록 인간적인 계책이나, 사람의 힘으로, 그 모든 것들을 해결해 보려고 했던, 옛사람에게 속한 그의 모든 노력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야곱이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야곱이 회개를 통해 벧엘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난 이 사건을, 오늘 바로 이 시점에서, 상기시켜 주시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깊은 불신앙의 뿌리는, 바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는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만약에 너희들이, 그 죄에서 돌이켜서 회개하면, 야곱에게 베풀었던 그 은혜를, 내가 너희들에게도 베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들이 회개치 아니하면,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오히려 대적이 되어, 너희를 치시는 심판을 경험할 것이라고 하는, 이중적인 그림을 함께 보여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광야에서 유목민 생활을 하며, 지낸 조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풀 한포기도, 제대로 자라나지 않는 광야를 지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농경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아주 발달한 당시 선진문화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땅에서, 이 땅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바알 신에게 잘못 보이고서는, 우리의 농사가 풍년이 될 수 없고, 이 땅에서 살아남지 못하리라고 하는 것이,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고방식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여호와를 버린 것이 아니라, 여호와와 함께 또 바알도, 섬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이중적이며 신앙적인 간음, 그 뒤편에는 하나님만이 우리를 지키실 수 있는 위대한 분이시라고 하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이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할 때에, 이렇게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신앙적으로 간음하는, 영적인 타락으로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 믿음의 자녀들이, 신앙의 순결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능하심을, 하나님께서 당신이 선하게 여기시는 대로, 우리에게 보여주실 것이라고 하는 신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신앙적으로 양보하고, 타협하고, 뒤로 물러서서, 급기야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신앙적인 간음의 상태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받았던 신앙적인 모든 실패를, 반면 거울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깨닫지 못한, 야곱을 깨우치기 위해서, 하나님은 당신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야곱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죄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붙들고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또 하나 여기서 발견하는 사실은, 야곱이 벧엘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그의 인생이 놀랍게 바뀌게 되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벧엘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야곱은, 가정적으로 위기가 올 때나, 개인적으로 위기가 올 때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위기가 올 때나, 언제나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묵상하며, 이제 그 하나님의 손에 자기를 맡기기를 소원했습니다.

 

벧엘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난 후, 야곱의 변화된 모습이 많이 있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 세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창세기 37장에는, 꿈꾸는 요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든 사람들이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두 다 황당무계하다고 생각했을 때, 야곱은 조용히 혼자서 그 어린아이 요셉의 꿈을 마음속에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황당무계하게 보이는 일이지만, 그러나 만약에 이 꿈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는 꿈이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만약 벧엘의 사건 이전의 야곱같았으면, 그 아이가 능히 형들의 경배를 받고, 부모인 자기의 경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야곱의 본래 인간적인 성품이었습니다.

 

그러나 벧엘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난 후, 야곱은 전능하신 하나님은 때로 인간의 추론을 초월해서, 역사하실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면서, 이 모든 일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43장에서는, 이제 더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이미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고,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형들이 거기에 곡식을 구하러 갔다가, 요셉의 작전에 의해서, 시므온이 볼모로 잡혀 있게 됩니다.

그런데 식량이 바닥나자, 이제 막내아들 베냐민을, 그의 형들의 손에 딸려서, 보내야 할 상황이 되었을 때, 야곱은 이렇게 말합니다.

 

43:14절을 읽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49장에는, 야곱이 요셉에게 유언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야곱은 “나는 여기서 죽어도 하나님께서 너희를 주님이 약속하신 그 고향 가나안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여러분, 이 족장 야곱을 보십시오.

자신의 고백대로, 심히 험악한 13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면서도, 야곱의 마지막 소망은, 오직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약속하신, 그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돌아갈 땅도 없고, 돌아갈 수 있는 여건도 안 되었지만,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이 약속하신 것을, 지금의 눈에 보이는 환경과는, 상관없이 이루고야 마실 것이라고 하는 분명한 신념을, 야곱이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벧엘에서 “엘 샤다이”의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도, 야곱과 야곱의 집안이, 완전한 인생을 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야곱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붙들고 살려고 노력했고, 순간순간 그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지하면서 살기 위해, 자신의 계략과 계책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신앙 속에서 살았습니다.

 

4절에서 말씀하는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이 말을, 원어성경에서는 현재형으로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시느니라.”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야곱에게 일어난 이 사건은, 오래 전에 일어난 사건이고, 역사가 많이 흘러갔지만, 그럼에도 그 사건은, 여전히 남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금도 말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누구든지 야곱과 같이, 혹은 야곱보다 더 교활한 방법으로, 언제나 나의 계획과, 나의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을 의지해서, 살아왔다할지라도, 오늘 밤 참회하는 기도는 여전히 하나님을 감동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이 감동하시기만 하면, 너희에게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여 주셔서, 너희로 그 하나님만을 의뢰하며,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실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절박한 인생의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과 저에게도 하나님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절박한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전능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 하나님을 의뢰하며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순간순간 우리의 신앙의 절개는 무너지고, 우리의 신앙의 지조는 휘어지게 되는 것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바람에 갈대와 같이 흐느적거리는, 우리의 정함이 없는 마음을 보시면서, 오늘도 슬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을 들어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또 친히 우리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뢰하면서, 살아가지 않으려고 하는, 우리의 모든 인간적인 성품들과, 잘못된 불신앙의 요소들을, 철저히 내어버릴 수 있는, 결단이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절박한 우리의 문제보다, 하나님이 훨씬 위대하시고 전능하셔서, 그 전능하심으로 불붙는 사랑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들을 성취해 가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절에 보면 “여호와는 만군의 하나님이시라 여호와는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여호와 그 이름은 우리가 늘 기억하여야 될 이름이니라.”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아니하고, 홀로 계신 분이시며, 전능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시며, 또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를 불러 내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호세아 선지자는,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의 아내 고멜은, 한 남편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 호세아를 떠나 방탕한 길로 가서, 간음하여 범죄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면,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더럽히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현재적으로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위대하심과, 그가 우리와 맺으신 그 놀라운 사랑의 관계를, 우리에게 기억하고 되새기고, 그것을 붙들고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야곱에게 일어났던 이 일이, 단지 야곱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야 될 일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이 시간 삶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야곱이 회개와 기도로써 하나님을 감동시켰던 것처럼, 우리도 참회와 더불어 간구하는 기도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립시다.

 

그리하면 오늘밤 하나님의 불붙는 사랑과 넘치는 긍휼이, 기도응답의 역사를 통해서, 저와 여러분에게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