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핍박 후에 든든히 서다 (사도행전 9:31)

Johnangel 2022. 10. 28. 08:16

핍박 후에 든든히 서다 (사도행전 9:31)

 

 이 시간 읽은 31절의 말씀은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사도행전 1장에서부터 9장에 이르기까지어떤 일들이 있었으며또 그 배경이나 흐름은 어떠했습니까?

한마디로 표현한다면결코 평안한 시대가 아니라핍박의 연속이었습니다.

특별히 1장부터 6:6절까지는, 사도들이 두 번이나 감옥에 갇히는 일이 있었고예루살렘교회는 핍박과 위협 속에서하나님께 이길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나타난 결과가 바로 6:7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온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해졌고그렇게 기독교를 핍박하던 많은 무리의 제사장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복종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나서 6:8절부터 9:30절 사이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스데반이 순교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순식간에 살벌한 분위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핍박자의 손에 완전히 깨지는 비극을 맛보았습니다.

성도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온 사방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는 무서운 시련을 당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교회가 위축되어 이제는 영 맥을 못추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31절을 읽겠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그렇습니다.

온 유대가 복음화되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핍박을 받아 사방으로 흩어지자 온 유대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갈릴리와 사마리아에까지 교회가 생긴 것입니다.

 

따라서 9:31절까지의 기록은 1:8절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사마리아까지 복음화되는 과정을 보여 준 것입니다.

 

이 과정은 핍박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핍박 가운데 교회가 확장되는 것은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아직 핍박을 당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관공서에서 예수 믿는다고 홀대하는 그런 비참한 일을 당해 보지도 않았고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법적권리를 빼앗긴 적도 없으며누가 위협해도 법적으로 호소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빠진 일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핍박 가운데 교회가 확장된다.”는 것이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은 할 수 있습니다.

 

핍박 중에는 교회가 위축되기가 쉽지확장되기는 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정반대였습니다.

예수 때문에 고향을 잃고예수 때문에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예수를 전했습니다.

예수 때문에 손해를 보고생명에 위협을 받으면서도그들이 예수를 가는 곳마다 자랑한다는 것은사람의 힘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수천 명의 신자들은마치 바람이 불어 민들레 씨앗이 공중으로 흩어지듯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로 흩어져 씨앗이 공중으로 흩어져 이야기했습니다.

예수 때문에 욕을 먹으면서도예수 이야기를 했습니다.

 

따라서 사도행전의 이런 배경을 생각하면우리의 믿음이 참으로 형편없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예수 믿고 남에게 칭찬 듣고예수 믿고 남에게 존경 받는다 해도 무언가 좀 힘들면우리는 대부분 입을 꽉 다물고 예수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또한 예수 때문에 그 어떤 위협도 당한 일이 없지만이웃 에게 조금 멸시를 받았다고 예수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집을 잃고고향을 잃고가족과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예수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었을까요?

이것이 초대교회 정신이요지난 2,000년 동안 피비린내 나는 핍박 속에서도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손해를 보면 볼수록 더 예수를 이야기합니다.

고생을 하면 할수록더 예수를 자랑하고 사랑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초대교회는 이렇게 핍박 가운데 성장하고 확장되었습니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00여 년을 돌이켜 보면한국교회는 1910년 일제 강점부터 시작해서 해방 후 공산당에게 핍박당한 1950년까지, 40년이란 세월 동안 거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 앞에 참으로 마음 뿌듯하게 생각하고이렇게 고백하곤 합니다.

“하나님한국교회는 핍박 한번 받지 않고 안일하게 자라온 교회가 아닙니다한국교회는 비록 역사는 짧지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억압 속에서 성장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뿌리가 있고 사람이 무너뜨릴 수 없는 강한 힘이 그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믿음이 핍박을 통해 꺾였습니까?

아닙니다.

핍박이 심하면 심할수록 교회가 위축되었습니까?

아닙니다.

핍박받아 흩어진 사람들이 예수 이야기를 멈추었습니까?

아닙니다.

위대한 우리 선조들의 믿음은 이러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편하면 편할수록더 편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시간이 좀 여유롭고 잘먹고 잘살수록 더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음생활을 잘할 것 같은데오히려 믿음이 점점 병들어갑니다.

 

성경을 보면핍박받아 신앙이 병들었다는 이야기는 한 군데도 없습니다.

대부분이 “평안하고 평안하다”하는 중에세상과 욕심과 염려로 마음이 가득해졌고결국 영적으로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자녀가 살찌고 배부르도록그래서 영적으로 병들도록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평안하다고 주님을 찾지 않으면주님은 그 평안을 가져가 버리십니다.

따라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핍박 때문에 그만큼 성장했다면우리는 평안할 때두 배세 배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온 유대와 사마리아교회는 이처럼 핍박받는 환경에서 확장되었습니다.

 

꺾일 것 같던 핍박의 기세가 누그러진 것은바로 사울이 회심한 때부터였습니다.

사울이 예수 믿고 변화 받아 완전히 돌아서자핍박의 시대가 끝났습니다.

드디어 교회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평안해진 교회는 든든히 서 갔습니다.

주님을 경외하고 성령의 위로를 받으며 나아가자믿는 자의 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그렇습니다.

핍박을 견디고 나면교회는 금방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8.15광복 후 6.25사변 후그렇게 놀랍도록 성장한 이유도 환난을 잘 이겨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사를 통해 핍박 중에 온 사방에 세워진 각 지 교회 차원에서 보면아직 성장 이전의 단계에 있었습니다.

 

복음이 뿌려진 곳마다 그저 조그마한 교회가 하나씩 하나씩 생겼습니다.

그러다가 핍박이 멎고 교회에 평안이 깃들면서각 지 교회들이 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평화 뒤에 찾아온 교회의 성장은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내적으로 든든히 서 갔고외적으로 그 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질적인 것과 양적인 골고루 배합된 균형잡힌 성장을 한 것입니다.

 

내적인 성장을 나타내는 “든든히 서 가다”는 말은헬라어로 “오이코트메어”인데 “집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집을 세울 때겉으로 보이는 윤곽을 잡는 것은그다지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속을 갖추는 것이 참 어려운 일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 교회도 그렇습니다.

내실을 기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아무리 “목사가 힘을 다해 수고하고 밤잠을 안 자고 노력한다.” 해도그 노력이 교회를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일하셔야 합니다.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에 뿌려진 교회의 씨가양면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무엇일까요?

그들이 주를 경외하고성령의 위로를 받으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한마디로 묶으면 “하나님 중심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생활을 배우지 않고는 알 수가 없습니다인간이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28:20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가 내실을 다질 수 있었던 것은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교육”이 잘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일까요?

이것을 알기 전에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알아야합니다.

 

내가 경외해야 할 대상에 대해 잘 모르면서어떻게 구분을 경외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어떤 것을 기뻐하시고 어떤 것을 미워하시는지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는성경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난 다음에는어떻게 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워야합니다.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하는지일상생활 속에서 주님과 어떻게 교제할 수 있는지말씀은 어떻게 보고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실천해야 합니다.

배우면서 실천하고배우면서 사모하고배우면서 순종할 때우리 삶에 성령의 열매가 풍성해집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개인 열 명이 모이고 스무 명이 모이다 보니교회 전체가 안팎으로 충실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계속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어느 정도의 과정을 거친 성도들 중에는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추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언가 꽉 막힌 것 같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직분을 맡아 일은 하지만영적으로는 더 자라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리고 제일 무서운 것은자라지 않고 멈춰 있는데도 계속 자라는 것처럼 행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독선에 빠지기 쉽고도무지 말씀이 들어가지 않는 굳은 마음이 되어 버립니다.

 

사실 영적으로 가장 굳어 버리기 쉬운 사람이 목회자입니다.

 

교역자들은 주일에 교인들을 돌보고 인사하고 그러다 보면예배도 제대로 못 드립니다.

이렇게 시간에 쫓기다 보면말씀 앞에서 자기 자신을 비추어 보며기도하고 몸부림칠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한 30년 생활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기가 막힌 사람이 됩니다.

“주여”하는 말도 별로 없는 것 같고“아멘”하는 말도 잘 안 나오는 것 같고말씀 앞에 감격하는 모습도 없습니다.

이미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 들여다봐야 다 아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그런데 목사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장로권사집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하면 이런 모습으로 전락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성령 충만해서 항상 성령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이 될까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숙제입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 일생 풀어가야 할 숙제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어린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말씀 배우는 것을 사모합시다.

듣지 않고배우지 않고기도하지 않고무슨 일을 할 수 있으며내가 자라지 않는데어떻게 교회가 자라며교회가 내적으로 성장하지 않는데어떻게 이방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내적으로 충만하고 성령의 은혜를 받고 있지 않으면교회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바리새인과 같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어린아이처럼 모여야 합니다.

엎드리면말씀 앞에서 부들부들 떠는 역사가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어느 분량까지 성장해야 합니까?

예수그리스도의 분량에까지 이르러야합니다.

예루살렘교회와 유대교회갈릴리교회사마리아교회가 성장하기 위해 몸부림쳤기 때문에오늘 우리는 이와같이 아름다운 유산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내적으로 성장하고 외적으로도 성장하기 위해서는 말씀 배우기를 사모하고 순종하기를 사모해야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할 수 있고성령충만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