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불가능을 넘어서려면 (마가복음 9:14~24)

Johnangel 2022. 10. 24. 21:37

불가능을 넘어서려면 (마가복음 9:14~24)

 

예수를 믿는 우리는, 불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인정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뢰했을 때, 그 하나님과 더불어 우리는 이 불가능을 극복할 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삶의 현장에서, 부딪쳐 오는 이러한 불가능의 사건들 앞에 서서 불가능을 넘어서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것이 오늘 본문 앞에서, 우리가 던지고 있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간질병에 들린 어린아이를 어떤 아버지가 데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와 치유를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 아이의 병을 고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고쳐지지 않아 그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마침 그때에 예수님께서 변화산 위에, 세 명의 제자와 함께 올라가셨다가 내려오셨습니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을 발견한 순간,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도와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이 간질병은, 지금도 치유하기 힘든 병입니다.

그런데 이 병을 예수께서 고치시는 과정에 있어서, 우리는 인간의 불가능의 한계들을 돌파할 수 있는, 그 삶의 비밀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불가능을 넘어서려면, 배워야할 삶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1.예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19절을 읽겠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이 말씀에서 강조된 단어는 “그를 내게로 데려 오라”는, 단어입니다.

한번 따라 합시다.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여러분, 이 아버지는, 먼저 난치의 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누구를 찾아 왔습니까?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찾다가 예수님이 없으니까,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부탁했을 것입니다.

 

6:7-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전도여행을 보냈을 때, 그들은 귀신을 내어 쫓았고, 많은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그러나 산 아래 남아있던 제자들은,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종종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 어떤 어려움 속에 빠진 사람들이나,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교회에 한번 나와 보세요. 하나님 의지하시면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저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 문제에 대한 해결의 희망을 안고, 전도를 받은 대로 교회에 나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들이 교회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문제가 해결이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도 잘 압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이 교회에 나와서, 참 하나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그들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제가 강조하는 것은, 교회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의 중요한 책임은,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배는 왜 드리며, 제자훈련과 성경공부의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자훈련이나 성경공부의 초점을, 단순한 지식의 획득에 두는 것은, 가장 나쁜 방법으로 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고,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성경은 교회의 주인을, 예수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본질은, 단순한 건물이나 어떤 마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건물 안에 들어 왔다고 해서, 특별한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교회를 구성하는 저와 여러분이,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배하는 그곳에, 두 세 사람 이상이 예수 이름으로 모여, 주의 이름을 높이는 그곳에, 우리 하나님이 임재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예수님을 만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교회에서 예배와 헌신과 봉사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 영혼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셨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교회 문턱 하나 넘어 들어오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 어떤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기도할 때,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갖는 기대 가운데 하나는, 영적지도자들의 도움을 기대합니다.

 

저는 그것도 나쁜 것이 아니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영적지도자인 내 역할은, 우리 성도들이 정말 진정한 목자 되신 주님 앞으로 달려가도록, 그 주님을 만나 볼 수 있도록, 주님을 의존할 수 있도록, 설교로, 교육으로, 훈련으로, 강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유일한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그 분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때에 우리는 불가능을 넘어서서, 주님이 함께 하시는, 놀라움의 삶을 경험할 줄로 믿습니다.

 

2.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28절을 읽겠습니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지금 제자들은 실패한 후였기 때문에, 주님께 조용히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우리는 어찌하여 실패했습니까?

여러분, 이 아이가 고쳐지지 않은 이유,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제자들의 기도가 실패한 이유, 도대체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19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여기서 우리는 분명한 원인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간접적으로, 이 아이의 병이 고쳐지지 않은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한마디로 제자들이 주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세대가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곳에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당신의 임재를 계시하시고, 당신의 손길을 나타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는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믿음이 적은 자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나섰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로 결단했을 때, 예수님을 향한 어느 정도의 믿음이 없었겠습니까?

저는 어느 정도의 믿음은, 있었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에게도 차이는 있지만, 어느 정도의 믿음은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주님 앞에 가까이 나와서, 봉사도 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누가 여러분에게 “당신은 왜 그렇게 믿음이 없으십니까?”라고 하면, 과히 좋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지 않고 “믿음이 적은 자여! 그대들이 실패한 이유,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그것은 믿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 당신들에게 믿음이 적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현장에서만은, 주님을 향한 그들이 절대적인 믿음을 충분히 나타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러분, 우리가 믿는다고 말할 때, 중요한 것은 “믿음”이란, 그 단어 자체가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실패의 원인이 예수를 믿지 않고, 자기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이면서도, 순간적으로 그 주님을 신뢰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 그 순간, 제자들은 실패를 경험한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를 주님 앞에 가지고, 나오시길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을 만족하게 도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만족하게, 도와주실 줄을 믿습니다.

절대적으로 주님을 신뢰하시기 축복합니다.

 

3.기도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왜 우리는 쫓아 낼 수가 없었습니까?

29절을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기도가 이런 문제를 돌파 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기사가, 마태복음에도 취급되어 있습니다.

17:21절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한번 찾아보세요.

웃는 사람은 빨리 찾은 사람입니다.

“없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어있습니까?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은, 모두 다 사본인데,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성경에는, 17:21 없음” 그리고는 바깥에다가 “기도와 금식이 아니고서는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고, 쓰여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와 함께 뭘 강조했습니까?

예수님은 기도만 강조하신 것이 아니라, 금식까지 강조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금식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 하루를 살면서 절대로 빼놓지 않는 것, 그것은 먹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식사시간까지 단절하고, 간절히 매달리는 기도를 “금식기도”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가장 간절한 형태가 있다면, 그것은 금식기도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 성도들이 때로는 금식의 경험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힘, 우리의 지혜, 우리의 생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이런 난제들을 뚫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경험하기 위해서입니다.

 

1999년도 가을에 서부아프리카 코트디아부르 수도인 아비장 한인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그 지역 선교지 말리, 토고, 가나 등, 몇 나라를 돌아보고, 제가 영국 런던을 처음 방문했을 때, 공항에 후배 선교사님이 Pick up하러 나오셨습니다.

 

제가 승용차에 오르자 그는 “최 목사님, 런던에서 제일보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설교자라서 그런지, 19세기에 설교의 왕자라고 불렸던, 스펄젼 목사님이 사역하던 교회는, 어떤 형태일까 궁금해서, 그리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가봤습니다.

교회 건물이 정말 크고 웅장했습니다.

그러나 예배당 안에 들어가니까 200여명 정도 성도들이 모여 함께 예배하는 가운데, 찬양도 힘이 없었고, 무력해진 회중들과 설교도 큰 감동이 되지 못해, 저는 굉장히 슬펐습니다.

 

한때 6,000명 이상의 회중들이 꽉꽉 자리를 채우던 이 교회, 그리고 많이 모일 때는 10,000명 이상씩, 어떤 때는 20,000명까지 모여서 성령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영광으로 불타오르던 이 교회였습니다.

 

스펄젼 목사의 전기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스펼전 교회와 목사님을 방문하면, 목사님은 항상 이 방문객을 데리고, 교회 아래층으로 데리고 가서, 기도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 스펄젼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제 목회의 비밀은 바로 여기 기도하는 이 성도들입니다. 그들이 나의 힘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교회의 발전소입니다. 저들의 기도 때문에 오늘 우리교회는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는 굉장히 이상적이 교회라서, 지금 현대교회보다 굉장히 우수한 교회였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마십시오.

당시 초대교회들도 우리와 똑같은 문제들이 있었고, 대부분 우리교회보다 건물이나, 교인 숫자도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들은, 당대의 그 세계를 흔들 수 있는 영향력과, 충격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그 원인 어디에 있었습니까?

바로 주님 앞에 엎드려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하던, 그 기도가 세계를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라기는 초대교회에 있었던 그 기도능력이, 우리 교회에서 회복되어, 이 지역 형제들 교회와 우리민족, 그리고 세계열방에, 하나님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