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예레미야17:5~8)

Johnangel 2022. 11. 13. 17:45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예레미야17:5~8)

 

사람은 누구나 복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공부, 직장, 사업, 노력, 연구, 저축, 나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다 복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연수가 70-80년인데, 순간에 의해 인생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 번 실수나 실패로 인하여, 평생 동안 고생을 하기도 하고, 대를 이어 고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종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모두가 이 어려운 시대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5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어느 누구도 저주 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저주도 충격이지만,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면, 그 인생은 불행하고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에게 저주 받는, 세 가지 조건이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을 믿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둘째는, 육신으로 힘을 삼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나 건강이나 물질을 의지하는 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셋째는, 여호와에게서 떠난 사람이 저주를 받게 됩니다.

나의 생각과 기준에 맞지 않아도, 모든 것을 하나님 기준에 절대적으로 맞추어야, 하나님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복을 받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돌아온다는 것은, 방향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때로는 각도를 조절하고, 때로는 인생을 송두리째 U턴을 해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반드시 하나님께 돌아와야 생명과 축복이 있습니다.

이것이 지혜이고, 믿음입니다.

 

15장에서 소개하는, 탕자가 모든 실패에서, 아버지께로 돌아섰을 때, 상상을 넘어선 용서와 사랑과 축복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다른 사람을 잘 안 믿고, 의심이 많은 사람들은, 중국인과 유태인들이라고 합니다.

아마 중국은 땅이 너무 넓고, 유태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는, 민족이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좁은 땅에서는 속이고, 도망을 가더라도 금방 잡히거나, 소문이 나서 들통이 납니다.

그러나 넓은 땅에서는, 속이고 도망친 사람을 잡을 길도 없고, 그 속임수가 드러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따라서 한번 속았다 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그런 경험이 반복되다보니, 중국인들과 유태인들은, 여간해서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믿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일단 한번 의심을 해보고, 신중하게 접근을 하면서, 확인을 하고, 계산을 하고, 따져보고, 조사를 합니다.

그러므로 장사도 이런 태도로 하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태인과 중국인들이 장사를, 가장 잘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우리나라 기독교에는, 이단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면서, 기존의 교회들을 유린하고, 무너뜨리고 다니는 것일까요?

우리 한국 사람들은, 귀가 얇아 다른 사람들을 잘 믿고, 뭐든 따져보지도 않고, 잘 속는 민족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의심하면 안 된다. 무조건 믿어라. 따지는 것은 믿음이 없는 짓이다.” 이렇게 가르쳐 놓으니까, 믿지 말아야 할 것 까지도 잘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신앙의 기본진리들을 가르칠 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믿습니다.”라고, 어거지로 가르치지 말고, 이런 의심 저런 의심을, 다 이해하도록 해결해 주면서, 믿게 해야, 가짜에 속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이외의 것은, 다 변하고, 변질됩니다.

모두 다 시간적이고, 제한적입니다.

그 무엇도 영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도, 육신도, 그 무엇도, 우리를 구원하거나,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믿음의 대상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이 세상이나 사람들 사이에서는, 미련하고 왕따를 당하는 것 같으나, 진짜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만이 믿음의 대상이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도 속으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 살다 보면, 알게 모르게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우리는 이미 늦었다고 포기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즉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면, 사탄이 수작을 부리고, 사람들의 소리로 인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로 즉시 돌아가 복 받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여호와를 의지하라

 

7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여호와가 복의 근원임을 믿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여, 복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복 받는 비결이요, 방법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복종하는 사람은, 때가 되면 반드시 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만 의지하고 의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은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눈에 보이는, 세상이나, 우상이나, 사람을, 우리가 의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눈에 보이는 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여 복을 받았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을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께 목숨을 걸고 기도하여, 사자 굴에서 살아나와, 바벨론제국에서 최고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것저것을 의지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어떤 조건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목숨 걸고 의지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길은, 포기하면 열립니다.

하나님의 치유는, 포기하면 시작됩니다.

우리가 포기하고, 항복할 때,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포기하라고 하심은, 우리를 망하게 하심이 아니라, 흥하게 하심이며, 우리의 것을 빼앗기 위함이 아니라, 더 주기 위함이며, 우리를 어렵게 하심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부자이면서도 물질을 포기했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부자이지만, 가난해도 물질의 종으로 산다면, 그 가난은 옳은 가난이 아닙니다.

포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포기는,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주님의 은혜로는 가능합니다.

마치 더 좋은 것이 생기면, 덜 좋은 것은 포기하듯이, 주님이 더 좋으면, 덜 좋은 세상 것은, 무엇이라도 저절로 포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 큰 은혜, 더 깊은 은혜를 받으면, 포기 안 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포기하려고 노력하지 마시고, 포기되는 은혜를 주님께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포기의 현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죽어야 살고 포기해야 얻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마음에 품고, 포기와의 전쟁을 위하여, 성소로 나아가 하나님 앞에 엎드립시다.

우리에게 아무리 크고 많은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은 주님 앞에서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직 문제는, 내 자신입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고, 그래도 엎드리지 못하고, 그래도 매달리지 못하는, 그것이 우리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시간은, 우리가 엎드리는 시간이며,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타이밍은, 내가 포기하는 순간입니다.

‘내’가 ‘나’이기를 포기할 때, 하나님은 ‘나’를 위한, 당신의 계획을 시행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나’이기를 고집할 때는,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고향에서는 아무런 능력도 행하실 수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식을 믿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8:34절을 읽겠습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물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끈기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를 포기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내가 나를 포기한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기대하고, 붙잡는 끈을 결코 놓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의 추적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신앙이란, 나와 세상적인 것을 의지하지 않고, 모두 내려놓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의뢰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복 받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여호와의 축복을 받으라.

 

8절을 읽겠습니다.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시편1편의, 복 있는 사람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뿌리도 든든하고, 가지도 든든하고, 잎도 청청하여, 어떠한 가뭄에도,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는 백성은, 반드시 어떠한 환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복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의 삶의 현장 속에서,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길을 선택하며, 전적인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결과는 지옥과 천국, 저주와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한 순간의 세상적인 유혹에 끌리지 말고, 때로는 손해와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최고의 축복과, 열매를 보장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당신의 사명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0:10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주님이 우리를 향한 아름다운 계획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주 안에서 생명을 얻고,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린 후, 하나님께서는 너에게 “무엇을 줄꼬”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솔로몬은, 백성을 재판하고, 섬기기 위해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시고, 지혜뿐만 아니라, 솔로몬이 구하지 아니한 부귀영화를, 덤으로 더하여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이제는 우리 모두 저주의 삶을 청산합시다.

그리고 축복의 삶을 시작합시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 다 여호와께로 돌아오고, 여호와를 의지하고, 여호와께 축복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이 시대에서 최고로 복을 받고,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