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베드로전서 2:4~8)

Johnangel 2022. 11. 27. 21:36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베드로전서 2:4~8)

 

베드로전후서는,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는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읽은 벧2:4-8절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함께 생각해보려는, 두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위로”이고, 다른 하나는 “사명”입니다.

 

1. “위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의 편지를 손에 쥐어 든 나그네와 같은, 성도들의 삶을 조금 설명해 드리고 싶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베드로전서가 쓰여 진 시기는, 대략 AD64년경을 예상합니다.

당시는 폭군 네로황제가, 로마제국을 다스리던 시기입니다.

특별히 네로황제는, 자신의 폭정을 감추기 위해서, 당시의 사회적 문제의 모든 원인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돌리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잔악한 사형에 처하기도 하고, 짐승의 먹이 감이 되어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잘 기록한 역사가 “타키투스”가 쓴 “연대기”의 내용의 일부를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들(그리스도인)은 짐승의 가죽에 쌓여서 개들에 의해 찢기우기도 하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 혹은 화형 되는 이들은 캄캄한 밤을 밝히는 일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네로는 그 광경을 위해 자신의 정원을 개방하고 자신은 기수의 복장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마차를 몰고 다녔고 서커스에서는 쇼가 공연되었다. 그러므로 가혹하고 본보기적인 형벌을 받기에 마땅한 범죄자들이라 할지라도 사람들 사이에 동정심이 생긴 것은 이와 같은 일들이 공중의 선을 위하여 행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광적인 잔학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들(그리스도인)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키투스”가 쓴 “연대기”를 통해, 초대교회 성도들이 경험하였던, 시련과 고난들을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이와 같은 상황 가운데 놓여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세상 가운데 버린바 된 돌과 같은, 시련과 고난의 시간을 겪으셨다고 말합니다.

 

4절을 읽겠습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예수님의 삶을 보면,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한 때는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고자 하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이 로마의 병사들에 이끌려 심문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에는, 예수님과 함께 하고자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버린 돌과 같이 여기고, 예수님 곁을 떠났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예수님 곁을 떠났습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연예인들이 자신의 거품과 같은 인기가 사그라들면,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깊은 동굴 속에 숨고, 심지어는 자살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다수가 “사람에 대한 상처”입니다.

 

예수님도 만약 이런 기준으로 삶을 사셨다면, 어떤 심정이셨겠습니까?

물론 참 신이시기도 하시지만, 참 인간이시기에, 예수님도 깊은 마음의 상처와 관계의 단절 속에서, 겪게 되는 아픔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흔들리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역을 끝까지, 충성스럽게 마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버린 돌과 같이 필요에 의해서, 취하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의 아들인 예수님을 끝까지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말씀이, 예수님께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 갈수 있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버린 돌과 같은 예수님이시지만, 하나님으로 인해 산돌로 사명을 감당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수신자인 우리들에게 재차 설명합니다.

 

베드로의 편지를 읽는 초대교회 원래 수신자들도,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것과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는, 살아갈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도 이와 같은 삶을 사셨고, 예수님은 우리의 처한 상황을 가장 잘 아시고, 이해하시는 분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붙들고 계셨듯이, 동일하게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여전히 우리를 붙들고, 지키고 계심을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고현 믿음의 가족 여러분!

세상의 위로는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있는 것처럼, 유동적이고, 상황에 따른 변화무쌍한 것이지만, 모든 위로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주목하고 계심을 잊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고후1:3-4절을 읽겠습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참으로 녹록치 않음을 경험합니다.

또한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 모두는 신앙의 큰 전환점과 위기 앞에 서 있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가 참된 위로자 되시는, 주님의 위로하심과, 힘주심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내 사랑하는 딸아!”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우리가 함께 살펴볼 다른 하나의 단어는, “사명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위로”의 일차적 목적을 넘어서 “사명”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5절을 읽겠습니다.

“너희도 산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와 같이 드러내 보일 것이 하나도 없는, 인생인 우리 성도들에게 거룩한 제사장으로 살아가길 권면합니다.

하루, 하루도 근근히 살아가는 것이 어려운 그들에게, 베드로는 제사장의 삶을 살아가라고 도전합니다.

 

그렇다면 제사장의 삶이 무엇입니까?

제사장의 역할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⓵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삶, 본이 되는 삶

⓶제사를 주관하는 것

⓷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

⓸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겠지만, 하나로 축약해보자면,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중재자 역할을 담당하는 일을 주관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자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이와 같은 이어주는 삶, 세상과 이웃이 하나님과 연결되어지고, 이어지는, 그 일에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것을 “증인의 삶, 사랑의 실천, 제자의 삶, 그리스도의 몸, 건축물”로, 다양하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이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와 하나님과의 연결을 넘어서, 우리 주변과 연결되어지며, 그 연결은 하나님께 연결되도록 돕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왜 베드로는 하루하루를 사는 것도 벅찬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더 과중한 짐을 지게 하는 것입니까?

왜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또 다시 재차 섬김의 자리를 강조합니까?

“우리가 이만큼 했으면 할 만큼 했어, 나도 젊은 날에 난다 긴다 했잖아! 너도 왕년에 그렇게 했잖아!”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왜 재 헌신을 요청하는 것입니까?

 

10절을 읽겠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전에는”이라는 단어와 “이제는”이라는, 두 단어를 주목해봅시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before & after 가, 확실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하나님나라의 백성,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나라의 통치 아래에서, 우리는 성장되고 성숙되어 가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디까지 성장하며, 성숙해야하는 자들입니까?

4:13절을 읽겠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이르러야 하는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그 길은, 명확합니다.

그리고 그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열심과 이끄심은 확고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를 죄와 사망의 깊은 바다에서 불러내신 것처럼, 우리도 죄와 사망의 깊은 바다 가운데 놓여 있는 자들을 건져내며, 그들이 하나님과 연결되어지도록 중재자로, 제사장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일은, 고된 일이고, 힘든 일입니다.

사실 전도를 하며, 이웃을 섬기며, 사랑을 하고, 인내하며, 오래참고, 무례하게 행하는 자를 용서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들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처럼,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이 그 힘든 일을 하지 않으면, 더 힘들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내 맘대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룩한 제사장의 삶은, 힘든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 축복하기도 바쁜데 다른 사람을 축복하라뇨?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뇨? 다른 사람의 눈물 가운데 함께 하고, 기쁨 가운데 함께 하라뇨? 내 가족조차 사랑하는 것도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데요~? 나 혼자 열심히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함께 공동체로 연합하여 세상을 축복하고 섬기라뇨? 저는 못해요. 그냥 나만 하라면 하겠는데, 같이하다가 제 성격 다 버리겠어요. 못해요!”라고, 얼마든지 우리는 이런 생각이나, 말을 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정도 수준에서 살도록,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내가 뛰어나서, 내가 대단해서, 내게 여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힘입어, 그 길을 걷게 하십니다.

 

이전에는 내가 해보려다가 실패만 했다면, 이제는 그래도 작은 사랑을 흘려보내는 자가 되도록, 만드시고야 마시는, 하나님의 그 크신 능력의 손길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러하시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사명자의 길을, 믿음으로 걷게 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놀라운 일들을, 저와 여러분을 통해 반드시 이루어가시리라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코로나 팬데믹과 어려운 경제의 영향으로, 요즘 우리의 삶의 짐이 무겁고 힘이 들지만, 하나님으로 인하여 위로를 얻고, 더 나아가 그분의 부르심 앞에 믿음으로 “아멘”으로 고백하며, 순종의 걸음을 걸어 나아가는, 거룩한 제사장이 된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