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기도를 듣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 (누가복음 18:1~8)

Johnangel 2022. 12. 3. 23:55

기도를 듣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 (누가복음 18:1~8)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나 같은 것과 대화하실 수 있는 시간이 없으실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싶어 하십니다.

 

제가 아무리 바빠도, 저의 아들이 전화하면 항상 받습니다.

손자 손녀가 전화하면, 정말 반갑습니다.

바쁘니 전화 걸지 말라고,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다스리시고 운행하시지만, 가장 기다리시는 것은 사랑하는 자녀들과 대화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사실만 알고, 가셔도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싶어 하십니다.

기도가 아니어도 대화의 시간, 자녀들과 대면하여, 한 자리에 앉아 말을 나누고 싶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기도를 듣고 싶어 하십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는 일에 본을 보여주셨고,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과부에게는, 적대자가 있었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원수”라고 하였습니다.

아마 남편이 살아 있을 때에 엄청난 손해를 끼치고, 남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인지, 과부로 혼자 살고 있으니 물질적인 손해를 주고 갚지 않는 사람인지, 여하튼 원수라고 하였고, 원한을 풀어달라고 한 것을 보면, 적대자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과부가 혼자서, 원한을 해결하고, 문제를 풀어가기에는, 너무 힘이 버거웠습니다.

이 과부 혼자의 힘으로는, 도무지 원한을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힘 있는 일가친척도 없습니다.

그녀의 억울함을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도시에서 자주 만나는, 이 원수는 기고만장하였고, 안하무인격이었습니다.

자기 혼자만 잘 나고, 자기 때문에 억울한 피해를 입어 고생하는 과부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이런 억울한 일을 해결해줄 사람은, 재판관뿐인데, 그 재판관은 불의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과부의 원수나 다를 것이, 조금도 없는 불의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었고, 사람의 인권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존중하지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가난한 과부의 호소하는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 과부에게 유일한 희망은, 이 재판관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재판관에게 찾아가는 과부를 향하여, 시간낭비하지 말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재판관은, 하나님과 사람도 몰라보는 불의한 재판관이었습니다.

이 과부도, 그런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과부에게는 재판관이 유일한 희망이요, 그녀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불의한 재판관이 원수를 갚고, 원한을 풀어줄 유일한 사람이다 보니, 부탁하고 또 부탁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또 호소하고, 들어줄 때까지 조르고, 또 하소연하고, 들어줄 때까지 조르고, 부르짖는 것이었습니다.

재판관이 자기를 돌아보게 하려고, 자주 찾아가서 졸랐습니다.

재판관이 집에 퇴근할 때에도, 가서 자기 얼굴을 보게 합니다.

찰거머리같이 따라다니고, 부르짖어 호소하고, 마치 일인 시위하는 것처럼 번거롭게 합니다.

 

그러자 과부의 하소연 같은 것을 묵살하고, 듣지 않다가, 어느 날 불의한 재판관은 속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지만,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무슨 일을 하며, 어디 조용히 살 수가 없으니, 귀찮아 죽을 지경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재판정에 출근하면, 더 먼저 와서 진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인은, 자기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외칩니다.

재판관이 어디를 나가면, 또 따라나섭니다.

아이고, 내가 그 과부의 원한을 풀어 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고, 결단하고, 해결해주었다고 했습니다.

여기 불의한 재판관은 선량한 사람이 아닙니다.

끈질기게 괴롭히는 것 때문에, 들어준 것이지 다른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런 비유의 말씀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보면서, 잘못된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비유를 풍유적인 해석으로 해석하여, 가난한 과부는 성도들이요, 불의한 재판관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잘못된 해석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려는, 본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십니다.

 

6절을 보면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7절에서 주님께서 하시는 중요한 말이 있는데, 바로 “하물며”라는, 말입니다.

 

이 사건은, 비유입니다.

비유는, 예수님께서 무엇을 나타내려고 하는, 의도가 있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비유는, 서로 반대되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부와 같지 않습니다.

그 과부는, 가난하고 무력하며, 사회적인 관심의 대상이 아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과 딸이며,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값주고 사신 형제자매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당당히 간구할 수 있는, 아들과 딸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신실하신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과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을, 마치 하나님에게 비교한 것부터 죄송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긍휼히 보시는, 자상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육신의 부모님도, 관대한 사랑으로 자식을 대해주셨습니다.

아낌없이 주시려고 하셨습니다.

갈 때마다 무엇이라도 주고, 싶어주시는 부모님이셨습니다.

 

7:9-11절을 읽겠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물론 이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습니다.

자기는 도둑질하여, 자식을 먹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자기 자식에게만은, 가장 좋은 것으로 주고 싶은 것이, 육신의 부모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하물며”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7:11절에 보면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아니하시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본문 7-8절을 읽겠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불의한 재판관은 오래 끌고, 들어주지 않으려고 이리 저리 피하였지만,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의 간구를 신속하게 들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의 애원하는 기도, 안타깝게 부르짖는 기도에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여기 “속히”라는 말은, 헬라어로 “엔타케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난 후에, 일어날 사건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빨리 이루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탄식하셨습니다.

마지막 시대에는, 자기를 의지하고, 자기중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의지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풍조에 밀려 요동하고, 신령한 믿음의 길을 포기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간구하는, 그 믿음이 사라질 것이라고, 탄식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고,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그 기도의 능력을 모르고, 사장시킬 것이어서, 우리 주님은 탄식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을 믿고 확신하고 신뢰하면서,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적을 것을 이미 다 내다보시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아버지로 확신해야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시고, 더 좋은 것으로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아버지이신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세상의 모든 난제를 풀 수 있는 마스터 키, 기도가 있습니다.

 

13:8절에 보면 “예수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옛날 기도에 응답하시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더 좋은 것으로 베풀어주시기를 기뻐하시고 있습니다.

 

1:24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고, 3:20절에서는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라고, 하셨습니다.

 

스펄죤 목사님은 “기도하지 않고 성공했으면 성공한 그것 때문에 망한다. 10년을 염려하는 것보다 10분간 기도하는 났다.”고, 말했습니다.

 

개혁자 칼빈 선생님은 “어려운 환경에서 기도하고 싶은 마음마저 없다면 우리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기도의 사람인 죠지 뮬러는 “기도란 그리스도의 능력을 붙잡는 손이다. 늙어 갈수록 기도를 더 많이 하라. 그러해야 신령한 일에 냉냉해 지지 않는다. 기도는 하나님을 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변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의 간구하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고, 더 좋은 것으로 들어주시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환경에 낙심하지 말고, 주님께 기도하는 기도의 용사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