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신앙의 명문가 (사도행전 10:1-8)

Johnangel 2023. 4. 6. 16:35

신앙의 명문가 (사도행전 10:1-8)

 

오늘 본문에 보면 로마제국의 군인 고넬료가 거주하던 곳이 이스라엘 땅의 해안도시 가이사랴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방문지는 가이사랴에서 남쪽으로 불과 50km 떨어진 해안도시 욥바로 되어 있습니다.

이 두 해안도시는 당시 로마로 오가는 모든 배들이 정박하는 항구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마침내 로마와 온 세상으로 전파할 믿음의 증인과 선교사 가문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방인 전도의 도구로서 주님께서 이 고넬료를 준비하고 쓰신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1. 가족 신앙의 영성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개인을 구원하는 영성에서 출발합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수용하는 것도, 예수를 믿기로 결단하는 것도, 개인적인 결단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나를 대신하여 예수 믿을 수 없고, 또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믿음에 근거하여 내가 구원을 받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 신앙이 개인에 대한 관심에서 머문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복음을 통한 구원이 정말 한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바꾸는 중대한 사건이라면, 이 중요한 구원이 나에게만 일어나는 것으로 우리는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연스럽게 이 놀라운 구원이 그 누구보다 먼저 내 가족에게 임하기를 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적 신앙은 개인적이면서도 가족적이고, 더 나아가 사회적인 성격을 갖는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노아가 갖게 된 여호와 신앙의 궁극적인 축복은 그 가족을 구원하는 축복이었습니다.

비록 그가 그 시대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방주로 인도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가족을 구원함으로 결국 구속사를 이어가는 믿음의 명문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히11:7절을 읽겠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그리고 사도 바울이 빌립보의 감옥에서 간수와 죄인들에게 선포한 행16:31절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복음도 바로 가족구원의 복음이었습니다.

고넬료는 아직 예수님을 알지는 못했지만, 유대 땅에 군인으로 주둔하면서 온 가족과 함께 유대인들의 여호와 신앙을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2절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라고 했고, 22절에서는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정복자로 성지에 주둔하고 있었지만, 유대인들의 신앙의 대상만은 그도 겸손하게 받아드려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마침내 베드로를 그에게 보내시어 그와 그의 집이 예수를 구주로 믿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가족이 구원을 받지 못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담대하게 세상에 나아가 이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가족이 먼저 구원받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가족신앙의 영성을 유산으로 계승하는 믿음의 명문가가 되기 위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2. 구제의 영성입니다.

 

22절 보면 “고넬료를 의인”이라고 소개합니다.

여러분, 고넬료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의인으로 소개되고 있을까요?

2절을 보면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의인으로 소개된 것은 바로 “구제의 실천”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복지 유대 땅 백성들에게 칭찬을 받았던 것입니다.

사실 구제는 성경에서 경건의 실천 혹은 의의 실천으로 가장 보편적으로 강조된 신앙인의 덕목이었습니다.

마6: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예수님이 강조하신 “의의 행함”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 대답은 바로 다음 절인 2절에서 발견됩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그렇습니다.

구약시대와 초대교회를 거쳐 오면서 “의의 실천”은 바로 “구제의 실천”’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한 사람이 새롭게 예수 믿게 되었을 때, 이웃들에게 보여지는 현저한 삶의 변화가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그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다는 것도 중요한 변화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웃에게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화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이웃들은 우리가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는 것으로 감동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교회에 나가게 됨으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주목합니다.

그런데 교회 나가기 전에는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이던 우리가 이웃들을 생각하고 이웃들과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살기 시작할 때, 그것이 바로 이웃들에 간증이 되고,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넬료가 새롭게 갖게 된 믿음의 경건은 바로 이런 구제의 실천으로 나타났고, 성경은 그것이 바로 경건의 증거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약1:27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성도들이나 교회공동체에서 전도와 함께 구제는 영성실천의 두개의 날개로 강조된 덕목이었던 것입니다.

갈2:9-10절을 보면 “또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자신이 감당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전도지만, 그 전도와 함께 잊지 않고 실천하고자 한 것이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실천이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성의 실천, 전도와 구제가 하나님이 바울과 고넬료를 사용하신 이유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복음 전도와 함께 가난하고 외로운 이웃들을 찾아 그들과 반나절이라도 함께 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3. 기도의 영성입니다.

 

2절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고넬료의 집은 두개의 창을 열고 있었는데, 하나는 이웃을 향한 구제의 실천이었고, 다른 하나는 하늘을 향한 기도의 창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상적인 성도의 삶을 산다면 기도의 삶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넬료의 기도의 삶을 의식적 차원에서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항상 기도하고 살고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가 곧 “그의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는 지금 여호와 하나님만 알았지 아직 예수님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절에 보면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바가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여기 본문의 증언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아직 예수를 모르던 고넬료의 기도도 열납하시고 기억하셨다면, 예수 믿고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 성도가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시고 열납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기도하지 않고 사는 것일까요?

본문에 이어지는 기도의 결과를 보십시오.

기도하는 고넬료를 보시고,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어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말씀합니다.

9절 이하에 보면, 사도 베드로도 길을 가다가 기도시간이 되어 욥바 무두장이 즉 짐승가죽으로 물건을 만드는 사람인 시몬의 집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바로 이 기도시간에 베드로는 환상을 보고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깨고 가이사랴 고넬료의 집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함으로 고넬료와 그의 가족 친척 친구들이 함께 구원받고 성령을 체험하게 됩니다.

따라서 기도가 결국 고넬료의 집을 구원하고 변화시켜 하나님이 쓰시는 신앙의 명문가가 된 것입니다.

 

나는 오늘 한국 교회 역사의 초기에 이렇게 기도로 쓰임받은 한국판 고넬료의 가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주인공 서씨는 평북 의주에서 태어나 어릴 적 서당에서 한학을 배워 글쓰기에 뛰어났고 글을 읽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동경하여 청년시절에 이미 중국을 오가며 홍삼 장사를 시작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도 신실하고 총명하였으며, 열린 마음으로 이웃을 돌아보던 진취적인 분이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만주에 장사하어 갔다가 장티푸스에 걸려 고생할 때 영국인 의사 헌터의 치료를 받고, 이어 그의 소개로 선교사 맥킨타이어 목사를 만나 전도를 받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며 복음에 감화되어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또한 이곳에서 맥킨 타이어와 같은 선교회에 소속된 선교사 로스를 만나 성경번역에 참여합니다.

그는 이제 권서인(매서인)이 되어 황해도 소래에서 그의 동생과 함께 한국 최초의 소래교회를 개척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울에 와서 남한 최초의 교회인 새문안 교회를 설립하게 됩니다.

이 분의 이름이 서상륜이고, 그는 그의 동생 서경조와 함께 한국 초대교회의 신앙의 명문가를 만들게 됩니다.

새문안 교회 설립당시 14명의 세례 교인이 있었는데, 그중 13명이 서상륜이 전도한 분들이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 서씨 가문이 민족 복음화의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우리도 한번 이런 믿음의 명문가를 꿈꾸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 집도 이웃을 향한 창을 열어 사랑을 실천하고 하늘을 향해 창을 열고 기도를 시작한다면 우리 집에서도 가이사랴의 기적, 가문의 영광이 시작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