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고린도전서 9:19-23)

Johnangel 2023. 4. 7. 15:23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고린도전서 9:19-23)

 

공산통치시대 러시아의 한 수용소에 보리스 콘펠드라는 이름을 가진 유대인 의사가 배치되어 왔습니다.

그의 임무는 아무리 심한 병에 걸린 환자라도 “건강함. 일할 수 있음”이라는 결제 도장을 찍어 노동장으로 보내야한다는 지령을 받고 있었고, 만일 이 지령을 어기면 그는 사형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한 죄수의 전도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한 생명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총명해 보이는 한 젊은 죄수를 진단하다가 그가 장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됩니다.

초기 장암이라 치료의 희망이 있다고 판단한 이 의사는 수용소의 비밀수칙을 어기고 정성을 다해 치료하고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그가 회복되기 시작하던 어느 날 그는 의사에게 “당신의 목숨의 위험을 알면서 왜 나를 살리십니까?”하고 묻습니다.

이 의사는 조용히 “예수님이 당신은 너무 소중한 존재임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날 저녁 그는 한 간수를 통해 방금 전에 자기를 살린 “의사가 처형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합니다.

이 처형당한 의사가 살린 청년이 바로 유명한 노벨상 수상작가 “알렉산더 솔제니친”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열린모임을 하며 2차에 걸쳐 베스트를 작정하고, 준비하고 있는 VIP축제는 우리의 소중한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결신하게 하는 잔치입니다.

물론 전도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언제나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특별한 기간을 정하고, 집중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온 천하보다도 귀한 영혼들이 몇 사람이라도 구원받는 것을 보고자 함인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제2차 선교여행 중 1년 반 동안 고린도에 머물며,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자신을 통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그는 무엇이라도 하겠고, 무엇이라도 되겠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한 영혼이 구원받는 일보다 더 고귀한 일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가 어떻게 전도해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 종으로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19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어떤 사람이 종이 되면 그에게 제일 먼저 일어나는 변화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더 이상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5: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본문에서는 “스스로 이 자유를 포기하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겠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전도의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떤 권리들을 포기해야 했습니까?

9:4절에 보면 “더 잘 먹고 마시는 권리를 포기했다”고 했고, 9:5절에서는 “다른 사도들처럼 아내를 데리고 편히 다닐 수 있는 권리를 포기했다”고 했고, 9-11절에서는 “복음 전도자로서 당연히 봉급을 받을 수 있는 권리조차도 포기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12절에 보면 그 이유를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바울처럼 불신자들을 향해 희생과 섬김이 없이는 전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따라서 전도의 명령에 순종하려면 먼저 자기 권리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기를 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종은 자기의 주권이나 권리가 없습니다.

오직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군사훈련을 받는 것은 바로 주님의 명령에 즉각적인 복종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너희는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할 때 우리에게도 황홀한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2. 상황화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말콤 펜위익(Malcolm Fenwick,1865-1935)선교사를 알고 계십니까?

한국기독교회사를 저술한 민경배 박사는 펜위익 선교사를 가르쳐 “토착화의 한 거보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카나다 출신의 선교사로서 한국 기독교 초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강원도 원산 시골에 들어가 갓을 쓰고, 한복을 입고,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며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얼마나 농사를 잘 지었든지, 동네 사람들에게 농학박사님으로 불리웠고, 동네 사람들에게 개량된 영농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1917년에 “만민이 좋은 기별”이라는 책을 출간하게 되는데, 그 책에서 그는 성령님을 “거룩한 숨님”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본래 성령의 뜻이 숨(호흡)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한국식으로 예수씨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1935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원산 땅에서 70세를 일기로 동네 사람들의 애도와 존경 속에 세상을 떠납니다.

여러분, 제가 말콤 펜위크를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선교지의 문화를 존중하고, 선교 대상자의 삶 가운데로 깊이 들어갔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토착화요, 상황화인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신 그 자체가 바로 상황화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상황 속에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그들에게 전도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우리는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소중한 인격으로 존중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 20-21절에서 바울이 고백한 내용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아래에 있는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여러분, 바울이 이렇게 상황화에 노력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22절에 보면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것이 바로 전도하는 우리가 불신자들 속에 들어가 상황화되어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3. 여기 바울의 상황화의 노력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23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현대어 성경에서는 “이 모든 것은 그들과 함께 복음을 나누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결정적인 때에 우리의 이웃들에게 복음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나눌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미 16절에서 “복음전도를 피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엄숙한 의무”로 선언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그렇다면 여러분, 도대체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바울은 복음을 고전15:3-4절에서 “성경의 예언 그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되는 것일까요?

롬4:25절에서 바울은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 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우리의 자리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이를 믿는 자들에게 죄사함이 되었으며, 또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우리의 주인이 되어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고자 죽음에서 부활하여 살아 계신 주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이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순간, 우리 모든 인생의 영.육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은 이런 기적을 체험한 우리들의 입을 통해 불신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에게 바울사도처럼 종의 태도로 섬김으로 전도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더 풍성한 결실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심으면 반드시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와 성도들이 너무나 세속적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믿는 사람들과 교회도 별개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 성도들과 교회가 초월적이기를 기대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잃어버린 영성회복과 잃어버린 삶의 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여 기도응답을 통해 병든 자가 고침받고, 어둠의 영들 사탄, 마귀, 귀신)이 떠나가고, 사업 문제, 직장 문제, 자녀 문제, 가정 문제가 해결되고, 놀라운 영육의 축복들과 령의 능력이 삶이 된 사도행전 초대교회 때의 성도들의 삶이 우리의 삶이 되어 우리 모두가 세상의 불신자들로부터 칭찬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의 능력이 무엇입니까?

가장 확실한 복음의 능력은 기도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새벽기도와 열린모임과 그리고 성령축제에서 확실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담대하게 나아가 우리의 이웃들에게 복음을 들려줍시다.

아무쪼록 몇 사람만이라도 구원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살아 계신 주님의 지상 최대의 명령인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라”는 명령에 복종하는 여러분을 통해 놀라운 복음의 능력이 일어날 것을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