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그리스도인이 먼저 해야 할 일은 (갈라디아 2:8-10)

Johnangel 2023. 5. 14. 23:35

그리스도인이 먼저 해야 할 일은 (갈라디아 2:8-10)

                                                   

성경에서 말씀하는 “사도”란 헬라어에서는 “아포스톨로스”(apostolos)라는 단어로서 그 뜻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사도란 좁은 의미에서는 예수님의 12제자와 같은 분들이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을 모두 다 사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을 다시 세상으로 보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요17:18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면서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라고 기도하시고, 요17:20절에 보면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 당시의 12제자뿐만 아니라 그들을 통해 전도 받을 후대의 모든 제자들을 다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본래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 교회를 상대로 당신이 진정한 주님의 사도임을 변호하기 위하여 쓰여진 편지입니다.

본문에서는 특히 사도의 우선순위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사도를 넓은 의미로 적용하자면 보냄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 전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바로 우리 성도들의 삶의 우선순위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피로 거듭난 우리가 이 땅에서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이 많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먼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적 사역은 무엇일까요?

 

1. 불신자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입니다.

 

성경에서 믿지 않는 불신자들의 구원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오라”는 단어입니다.

구약성경 사55:1절을 보면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했고, 신약성경 마11:28절에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피로 죄 문제를 해결받고 거듭난 자들의 소명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가라”는 단어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마지막 명령을 기억하십니까?

마28:19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라”는 그 단어가 오늘 본문에도 등장합니다.

9절을 읽겠습니다.

“또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다시 말해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저들의 동족인 유대인 선교에, 그리고 바나바와 바울은 이방인 선교에 헌신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선교의 대상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부르심에 따라 다를 수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8-9절의 고백이 바로 그것입니다.

8절에서는 “베드로를 할례자인 유대인들의 사도로 삼으신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는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다”는 것이고, 9절에서는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은사)를 따라 된 일이기 때문에 유대인 선교로 부르심 받은 야고보, 베드로, 요한과 이방인 선교로 부르심 받은 바울과 바나바는 피차에 서로 협력의 필요가 있다는 것을 피력한 것”입니다.

따라서 어디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사역하든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공통적인 부르심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7절을 읽겠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그렇습니다.

바울은 무할례자에게, 베드로는 할례자에게 복음 전할 책임이 맡겨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넓은 의미에서 전도자가 아닌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 믿고 언제쯤 전도를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요?

어떤 분들은 좀 영적으로 성장하고 훈련을 받은 후에 전도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숙하고 훈련된 사람이 전도하면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미성숙과 훈련부족을 구실로 전도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성경에 보면 모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만난 즉시 전도를 시작합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거라사 지방에 군대귀신이 들려 무덤을 배회하던 사람이 예수님 만나고 치유를 받은 후 그는 그 즉시 예수님을 따르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러자 이때 예수님은 “네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전도부터 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 만나고 언제부터 전도를 시작했습니까?

그녀는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깨닫자마자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전도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요한4:39절에서 “여자의 말이 내게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도하면 기도하게 되고, 전도하면 제자훈련을 받게 됩니다.

전도하면 전도의 현장에서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고 인생이 변화됩니다.

여러분은 금년한해 지금까지 얼마나 전도사역에 헌신하셨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전도의 헌신으로 영적성장의 기쁨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전도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우선순위인 것입니다.

 

2. 가난한 이웃들을 돌아보는 구제사역입니다.

 

10절을 읽겠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행하여 왔노라”

바울 사도는 전도 외에 또 한가지 사역이 그의 마음의 부담이 되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이것은 바울 사도의 개인적인 관심이 아니라 처음 사도들과 초대교인 모두의 공통적인 부담이었는데 “나도 이 사역을 힘써 행한다”고 말합니다.

무슨 사역입니까?

구제 사역이었던 것입니다.

행6:1절을 읽겠습니다.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여기에 보면 예루살렘 초대교회에 이 구제사역 문제로 다툼이 일어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경우 교회가 다시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구제사역을 포기하자고 결의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초대교회는 이 문제로 다툼이 일어날 정도로 구제사역에 열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전도사역과 구제사역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목장모임과 열린모임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고현교회 안에서 교우들에게 안정적인 가족구조를 제공하여, 교회정착과 영적성숙, 공동체적 봉사로서, 전도와 사랑의 실천 구제를 실현하고 목장의 재생산을 통한 하나님 나라 확장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목장모임과 열린모임에서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주님의 능력으로 고침받고 전도하기 위해 기도하고, 태신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더 나아가 선교사를 파송하고 이방인 세계선교후원에 동참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병원전도팀이 정기적으로 병원의 입원환자들을 방문하여 고통받는 이웃들을 대상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어르신 섬김팀이 노인어른들과 나눔을 실천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전도와 구제의 실천은 우리 모두가 “복음의 빚진자”라는 성경적 정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은 누군가가 과거에 이 복음을 위해 희생하고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요3:16절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은 잘 기억합니다.

그러나 요일서3:16절의 “그가 우리를 위하여 그가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는 교훈은 망각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요일3:16절은, 요3:16절이 증언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평생에 붙들고 살아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을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일3:17절을 읽겠습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신학자들은 “전도의 명령을 위대한 사명이라고 불렀는가 하면, 사랑의 실천즉 구제사역 또한 주님의 위대한 명령”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웃 사랑을 가장 큰 계명에 포함시키셨던 것입니다.

물론 이웃을 사랑한다고 해서 이 세상 모든 가난한 자들을 우리가 책임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가 여리고 길에서 강도를 만나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이 구제사역에 헌신하기를 꺼리는 원인의 하나는 “우리가 크게 도와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도와 선교가 이웃에 대한 관심과 친절로 시작하듯이 사랑의 실천도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시작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제를 포함한 사랑의 실천사역 중에는 물질이 아닌 우리의 시간과 몸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적지 않습니다.

병원전도사역과 위로심방사역, 어르신 섬김이 그런 경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제는 돈이 아니라 우리의 사랑과 관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전도사역과 구제사역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 모두 나 혼자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세상이 되기 위하여 고민하고 결단하는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 문제를 해결 받고 구원받은 확실한 흔적을 지닌 주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