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감동을 주는 사람 (사도행전 9:26-31)

Johnangel 2023. 5. 21. 23:26

감동을 주는 사람 (사도행전 9:26-31)

                                                

신약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세계선교의 문을 활짝 열었을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를 포함해 성경 13권을 썼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바울을 초대교회 지도자들이 경계하고 두려워할 때에 등장시켜 쓰임 받게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바울과 함께 1차 세계여행 때에 마가를 데리고 다녔으나 2차 선교여행 때에는 마가를 데리고 다니는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가 논쟁을 하고 갈라졌으나 그때도 역시 1차 세계선교 여행에서 실수했던 마가를 품어준 사람도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는 이렇게 품어주는 덕이 많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결과 마가는 훗날 베드로의 신실한 제자가 되었고,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을 기록하였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되어 이 시대를 감동하게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1. 상대를 인정해 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26-27절을 읽겠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한마디로 바나바는 바울이 다메섹 노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그 자신 안에 있는 “예수충만을 믿어주고 인정하였다”는 것입니다.

주경학자들의 견해를 보면, 바나바가 바울을 추천한 것은 바울이 그만큼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의견과, 바나바가 현재가 아닌 미래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정확한 이유는 바나바의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사람들을 대할 때 그대로 보지 않고 시기심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장점을 크게 과장하여 이야기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단점을 크게 부각시켜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만의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주님의 사랑으로 사실에 직면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다 받아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아내를 아내로 보지 않고, 자녀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아니하면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여 아내와 자녀에 대하여 불평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도에 대한 목사의 입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 사람을 키울 수 있고 살릴 수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빌1:16절을 보면 바울은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당시 초대교회에 잘못된 지도자들은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바울을 비난하며 잘못된 동기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18절을 보면, 바울은 그들을 비판하지 아니하고 “그리하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노라”고 말했습니다.

즉 “그들이 잘못된 동기를 가지고 전도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으냐?”는 것입니다.

바나바도 이와 같은 태도를 지녔던 사람입니다.

우리들도 바나바나 바울처럼 고현교회 4대 목회비전을 이루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우리는 모두가 성도들의 장점이 있으면 인정해 주고 칭찬해 줍시다.

이러한 바나바의 태도가 위대한 사도바울을 세웠고, 또한 세계선교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인재를 키워냈던 것입니다.

 

2. 보증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6절을 읽겠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그렇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의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바울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를 두려워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의 과거 행적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나바가 그의 보증이 되었고, 사귐의 다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힘들고 희생이 되더라도 그 희생을 통해 다른 사람의 길이 열린다면 우리들도 그렇게 하여 썩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 같으면 그토록 십자가에 생명을 주어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배반한 것에 대하여 질책하겠지만, 예수님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내 양을 먹이라”고 그에게 다시 사명을 주셨습니다.

최고로 믿는 것은 하나님의 세계비전 즉 사명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믿어주고 밀어줌을 통해 베드로 같은 인물이 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우리가 믿어주고 밀어줌을 통해 우리 교회에 인물이 난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19세기부터 20세기가 산업화 사회였다면 21세기는 정보화 사회입니다.

그리고 산업사회는 “개미사회”로서 부지런함과 성실이 인정받는 시대였지만, 정보화 사회는 “거미사회”로서 아이디어와 지식이 인정받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정보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심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업사회처럼 부지런함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전략과 분석이 필요하고, 정보의 독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정보공유의 시대입니다.

높은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위치에 있든지 그 자리에서 중심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중심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섬기는 사람, 공유하는 사람, 베푸는 사람, 나 때문에 사는 사람이 있게 만들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나바는 베풀고 섬기는 사람으로서 21세기 정보사회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거미의 중심, 즉 거미줄과 같은 웹의 중심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21세기는 높고 낮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막10:43절에서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너희가 큰 사람이 되고자 하느냐 그렇다면 섬기는 자가 되라”는 이 말씀이 이 시대에 맞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시간과 물질을 영혼을 사랑하며 이웃을 섬기는데 써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반드시 강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섬김으로 다른 사람 세우는 자가 되어 보십시오.

우리 교회는 반드시 주님의 비전을 성취하는 일에 강해질 것이고, 여러분은 반드시 지역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세운 사람을 통해 사역을 넓혀가야 합니다.

 

28-30절을 읽겠습니다.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그렇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말씀을 전했을 때 가장 당황했던 사람이 옛날 사울과 함께 믿는 자를 핍박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당시 유대사회의 엘리트 계층의 지식인들이었던 헬라파 유대인들에게는 약했습니다.

그런데 헬라 말에 유창하고 지성으로 무장된 사도바울이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그 결과 초대교회의 복음사역이 더 넓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언어의 능력과 지식은 하루아침에 쌓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바울 한사람을 예루살렘 초대교회에 세움으로서 바울은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전도하고 예루살렘에서 든든한 사역을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도 20여년 전 처음 농어촌 국내전도와 세계선교를 시작하면서는 많은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람들을 성령님께서 붙여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사역이 넓혀졌으며 더 크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역자를 세워 함께 사역해야 합니다.

그러면 라이벌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내 인생이 넓어지는 비결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 바나바의 사역은 동역자와 함께 하는 사역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동역자를 세우면 사역이 커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대의 강점은 바나바와 같이 일꾼을 세우는 것입니다.

 

21세기 정보화 시대 즉 거미줄과 같은 웹의 시대에 우리 고현교회 성도님들은 동역자들을 세워줌을 통해 바나바와 같은 영적인 거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얼마 전까지 예수 믿는 자들을 비판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할렐루야!”하고 주님을 찬양하면서 열정적으로 주님을 증거 하는 새가족들을 목격해 본 일이 있습니까?

이렇게 극적으로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돌아온 사람은 모태신앙을 가진 사람보다 더 큰 충격과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가장 크게 놀란 사람은 사실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이었고, 당시 바울과 같이 핍박하던 유대사회의 엘리트계층의 헬라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지도자들과 바울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중간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사실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누구를 추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요즘처럼 서로 신뢰하기가 어렵고, 겉모양만 번지르하게 꾸미기를 좋아하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인품이 갖추어진 사람을 추천하려면 바나바처럼 영적으로 사람을 분별하는 눈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은 정보화 시대입니다.

높은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심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오늘 이 아침에 바나바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 나타날 때 그를 앞세우기를 좋아하는 온유하고 겸손한 인품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사도행전의 기록을 검토하면 바나바는 바울을 추천하고 그를 곁에서 도와주다가 조용히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진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격적 면에서 보면 바나바는 사도바울보다 훨신 더 훌륭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데는 이렇게 바울과 같은 주연도 필요하지만, 바나바와 같은 조연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지금 강력한 두날개로 주님의 비전성취를 위해 비상하고 있는 우리 교회에 필요한 사람이며, 지금 주님이 찾는 사람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