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십자가와 구원 (요한복음 3:11-16)

Johnangel 2023. 5. 17. 17:58

십자가와 구원 (요한복음 3:11-16)

                                            

구원이라는 용어는 기독교가 사용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입니다.

물론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이란 “예수를 믿고 죄사함을 받아 영생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종교가 말하는 구원과는 뜻이 다르고,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롬3:10-12절을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죄 없는 존재,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의 내용대로 모든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죄짓고 타락함으로 우리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아담이 지은 죄가 그 후손에게 유전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어떤 신학자들 가운데는 “5천년전의 미이라의 뼈 속에 남아있는 DNA를 가지고 복제인간을 만들 수 있다고 장담하면서, 그 유전인자만 남아 있으면 죄가 없는 인간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신빙성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죄는 유전인자보다 더 강한 유전성과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의 결과는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롬6:23절을 보면 “죄의 값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멸망을 받은 아무런 소망이 없는 불쌍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소식이 있습니다.

요3:16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이 구절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쁜 소식이 들어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라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내가 죽을 죽음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인류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1. 모세의 구리뱀 사건으로 십자가 사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4-15절을 읽겠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민21:4-9절을 근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430년간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간의 광야생활의 여정은 한마디로 험난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길을 가로막는 부족들과의 전쟁, 더위와 추위 그리고 맹수들의 위험, 배고픔과 목마름과 계속되는 주거이동 등. 모든 것들이 다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들의 영적 방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생을 견디다 못한 그들은 모세와 하나님을 싸잡아 원망했고,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그들의 원망을 성경에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출4:11절을 보면 “모세를 향해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 우리를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려느냐”라며 원망했고, 출16:2-3절을 보면 “우리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굶주려 죽게 하려느냐”라고 원망했고, 출17:3절을 보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목말라 죽게 하려느냐”라고 했고, 민11:5-6절을 보면 “애굽에서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었거늘 이제는 정력이 쇠약해져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고, 민14:2절을 보면 “애굽 땅에서 죽었더라면 더 좋을 뻔했다”고 했고, 민16:41절을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백성을 죽였다”고 대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때마다 하나님이 진노하여 징계하셨고, 단 한번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을 그냥 지나치신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구원받은 우리들의 원망이나 불평을 싫어하십니다.

민21:5절을 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해 가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려느냐 이곳에는 식물도 물도 없도다”라며 원망하고 대들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즉시 불뱀을 동원해 그들을 물게 하셨고, 독이 올라 죽은 자가 많았습니다.

그때 다시 모세가 하나님께 백성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구리로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높이 달라 그것을 바라보는 자는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민21:9절에 보면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그 놋뱀을 쳐다본 즉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구리로 만든 뱀은 생명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놋뱀을 바라보고 살았다는 것은, “그 놋뱀을 바라보면 살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바라본 사람은 모두 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요3:1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그 놋뱀 사건을 자신의 십자가 사건과 대비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 “놋뱀을 바라보아야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모순이요, 비과학적이며, 비합리적인 가설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이치에 맞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바라본 사람들은 모두 다 죽지 않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2천년전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33년의 짧은 생애를 살다가 우리의 죄값을 속량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믿는 자는 죽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나타난 결과는 둘입니다.

하나는, 그 약속대로 믿고 구원받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그 약속을 불신하고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전1:18절을 보면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멸망 받을 사람들에게는 유치하고, 어리석고, 허무맹랑한 사건으로 보이기 때문에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는 십자가 사건이, 능력과 사랑과 구원의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광야에서 놋뱀을 바라본 사람들이 구원받은 것처럼,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고 바라보아야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15절에서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다”고 했고, 16절에서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했고, 18절에서는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영생을 얻고 멸망치 않고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16절에서 기억해야 할 부분은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는 것과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사랑을 체험하라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롬5:5절을 보면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부은바 되었다”는 말씀은 성령을 우리에게 “소낙비처럼 퍼부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호우가 쏟아지면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되듯이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셔서 우리 마음이 사랑의 바다가 되게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감동을 받고 마음이 설레이는 때가 언제입니까?

저는 세상에서 누구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느끼는 그 놀라움보다 더 마력적인 놀라움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 사랑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놀라움은 어떻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어깨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삶에서 지칠 대로 지친 우리들에게 이런 하나님 사랑의 체험이 얼마나 절실합니까?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성령님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면, 바위처럼 무거운 우리 인생의 모든 짐도 조그마한 조약돌을 두 손에 든 것처럼 가볍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감사가 절로 나오고, 우리 입에서는 찬송이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오늘날에 종교 다원주의라는 신학사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를 믿어도 구원받고, 부처를 믿어도 구원받고, 마호메트를 믿어도 구원받고, 공자를 믿어도 구원받는다는 사상입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를 믿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믿는다는 그 행위가 중요하기 때문에 무엇을 믿든지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행4:12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우리는 결론적으로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요14:6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진리임을 믿으시고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십자가를 새롭게 바라보며 이 놀라운 소식을 여러분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불신자들에게 전해주심으로서 축복의 통로가 되어 그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