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신앙은 세상을 시원하게 합니다 (마가복음 6:53-56)
병들어 죽어 가는 사람이 기대하는 가장 기쁜 소식은 무엇이겠습니까?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소식일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병든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다 치유될 수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앞에 나왔던 사람들이 다 고침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 성함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야한다”는 조건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앞에 나아온 우리가 치료받고, 구원받고, 인생이 새로워지기 위해서 무엇이 도대체 필요할까요?
1. 예수님이 어디에 계신가를 알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53-54절을 읽겠습니다.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갈릴리 바다 가에는 여러 마을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동네의 이름을 따라서 갈릴리 바다를 자기 동네이름을 넣어 불렀습니다.
예를 들면 디베랴에 사는 사람들은 디베랴 바다라 부르고, 게네사렛에서 사는 사람들은 게네사렛 바다라 부르고, 갈릴리에 사는 사람들은 갈릴리 바다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다 똑같은 갈리리 바다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땅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이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몰려왔고, 구원자 예수, 치유자 예수를 만나 고침을 받고 새로워졌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질문은 “지금 그 예수님이 어디에 계시느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우리 기독교인의 신앙고백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전제는 “예수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고백입니다.
따라서 예수가 하나님이시라면 그는 어디나 다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구약에 보면 그 하나님께서 특별한 한 장소를 선택하여 거기에서 당신의 임재를 나타내시고, 당신의 모습을 나타내시고,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당신의 기적을 나타내 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성전을 지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디든 다 계신데 왜 성전이 필요한 것일까요?
솔로몬은 “내가 거할 성전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성전을 짓고 그 성전을 봉헌하면서, 대하6:18절을 보면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말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만물 안에 계시기에는 너무나 크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감격에 찬 고백으로 “만물을 초월해 계신 분, 하늘의 하늘도 감당할 수 없는 놀라운 분,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과연 이 성전에 거하시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어디든지 다 계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주도 감당할 수 없는 놀라우신 하나님이 때로는 자신을 어떤 특정한 장소에서, 자신의 영광과 자신의 임재와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성전에서 자기를 계시하신 하나님께서 지금은 어떻게 역사하실까요?
저는 신약의 교회가 구약의 성전과 꼭 일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은 이미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성경은 아직도 이렇게 강조합니다.
“예수를 믿는 두 세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여 합심하여 예배하는 그곳에 나도 그들 중에 거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모여 주님을 찬양하는 그곳에 “주님께서 거기에 임재하신다. 거기에서 주님의 영광스런 모습을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예배가 왜 중요합니까?
영국의 마틴 로이드 존슨 목사는 “예배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을 살면서 체험할 수 있는 가장 황홀한 로맨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로맨스가 무슨 말입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교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교회에 오실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오십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교회에서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경험한다. 찬양 가운데, 기도 가운데 나는 사랑하는 주님을 만난다. 내 인생을 변화시켜 주시고, 내 삶에 꿈과 소망을 주신 주님을 나는 예배를 통해서 오늘 새롭게 만난다”는 이런 믿음이 확실하다면 이 시간 우리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임이 있어야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예배는 특별한 감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가 모든 예배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이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임재하신 주님을 성령의 도우심 안에서 인격적으로 만나 우리 모두가 다 성함을 얻는 기적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2. 내가 기도하고 마음에 품고 있는 베스트들이 다 온전해지고 구원을 경험하기 위해 두 번째로 하실 일이 있습니다.
55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 채로 메고 나아오니”
여러분, 왜 침상 채로 메고 나왔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완전한 절망 속에 주저앉은 이 병든 사람은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예수 앞에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침상을 메고 병든 자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막2:1절이하를 보면 고침받고 죄사함받고 그가 새로워지는 인생을 기대하면서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계신 그 집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포위하고 있어 도저히 예수님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네 친구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휘하여 지붕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안에 있던 예수님이나 그 일행들이 얼마나 많이 놀랐겠습니까?
물론 그 당시 중동지방의 지붕은 나뭇잎으로 엮어놓은 허술한 지붕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것은 충격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앉은 이 자리에 누군가 지붕을 뚫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흙이 떨어지고 있고, 먼지일테고..... 그리고 그 순간 서서히 들것이 실린 중풍병자가 네 친구에 의해 예수님 계신 곳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아니, 저렇게 무례한 사람들이 어디 있어? 당신들 뭐하는 거야?”라고 소리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네 친구에게는 오직 “우리의 사랑하는 친구가 예수를 만나야 된다, 이 친구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한 가지 생각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은 오직 한 가지 “이 친구는 예수를 만나야 한다” 그것밖에는 다른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어떤 대가라도 기꺼이 지불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 네 친구들은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께 데리고 오기까지 많은 시간을 썼고, 많은 사람들의 비난도 감수했고, 남의 집 지붕을 뜯어 놓았으니까 손해 배상도 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돕고, 그들의 운명의 변화를 원한다면 그 정도 대가는 지불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필요할까요?
요3:16절을 같이 암송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구원받고 내 인생이 새로워지기를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기꺼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시는 그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마음은 나 한 사람 영혼의 가치가 이 세상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에게 빚진 자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빚을 어떻게 갚으시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이제 누군가 스스로 걸어올 수 없는 사람들, 스스로 복음을 들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우리의 수고를 통해 복음의 자리에 앉아서 복음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귀빈축제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통해 베스트들이 이 교회에 들어와서 치료받고 펄펄뛰며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며 나가는 모습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이 복음의 빚을 갚기 위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전도하여 그들을 주님 앞에 데리고 오겠다”는 우리들의 각오와 결단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을 반드시 데리고 오셔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가 일어 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내가 기도하고 있는 베스트가 다 성함을 얻기 위하여 우리가 세 번째로 할 일이 있습니다.
56절을 읽겠습니다.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여기 “다 성함을 얻었다”는 단어는 육체와 마음과 영혼이 고침을 받았다는 것이고, “손을 댔다”는 단어는 “예수가 나를 고쳐주실 것이다”라고 믿는 믿음의 고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touch. 고침 받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아! 어쩌면 나도 고칠 것 같다”는 기대가 일어나서 “예수님 나를 고쳐 주세요. 예수님 나를 구원 해주세요. 예수님 나도 당신을 신뢰하고 싶어요. 나도 변화되고 싶어요. 당신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손을 내밀어 예수님의 옷을 데는 그 순간 그는 새로워졌고, 고침 받았고,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도 베스트들이 이런 변화가 일어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베스트들을 교회에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복음을 듣게 할 수 있고, 복음을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겠다”라는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요, 성령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내가 기도했던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는 것. 예수를 의지하게 되는 것. 예수님의 구원을 호소하게 만드는 것.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라는 베스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구원을 향한 갈망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부분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우리가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이 믿음이 그들에게 생길 것입니다.
반드시 그들이 예수를 향해 손을 내밀어 “예수님 나 구원해주세요” 소리치는 내 주변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역사를 기대하시며 기도하십시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천국의 황금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인생이 하나님으로부터 빚진 인생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내 주변의 사랑하는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당신에게 그들이 누구입니까?
데리고 나와 복음을 듣게 할 그들이 누구입니까?
아직도 작정되지 못했습니까?
어떤 형제와 자매는 10명이 넘는 영혼들을 작정하고 기도하고 있는데,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에게 그들이 누구입니까?
그리고 주님이 그들의 마음을 준비시켜 주도록 기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늘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그들의 인생이 바뀔 것입니다.
복음의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반드시 주님이 우리 가운데 오셔서 당신이 데려 온 그들을 치유하고 고치는 놀라운 축제를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 위대한 역사가 우리 가운데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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