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쓰임 받는 기쁨 (역대상 29:20)
지구촌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마더 테레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몽당연필입니다. 나를 사용하신 하나님이 여러분도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녀는 “사랑의 봉사단”을 만들어 인도의 빈민촌에서 고아와 병자, 장애인들을 돌보는 일들을 감당했습니다.
이 “사랑의 봉사단”은 126개국에서 모인 4,400여명의 전임사역자들을 둔 아름다운 단체로 성장하였습니다.
어떻게 한 여인의 손을 통하여 이러한 일이 가능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녀가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몽당연필”이라고 말한 것처럼, 외적으로는 화려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쓰임 받는 것이 그 인생을 달라지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의식주의 문제가 충족된다고 해서 만족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발견한 의미와 가치로 인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이러한 영성이 사라지면, 두 극단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는, 남을 지배할 수 있는 높은 권력에 대한 추구입니다.
다른 하나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마음껏 즐기며 사는 쾌락에 대한 추구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삶의 의미와 본질을 늘 추구하는 삶인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다윗이 자신의 왕위를 아들 솔로몬에게 이양할 뿐 아니라 다윗의 평생소원이며, 나라의 숙원사업이었던 성전건축을 솔로몬에게 부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윗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감동을 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과 국가를 성공적으로 경영한 경영자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이 바래지 않고, 어두운 밤하늘에 더욱 찬란하게 빛나는 별처럼 우리에게 기쁨을 줍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의 삶이 어떻게 하면 다윗처럼 “주 앞에 쓰임 받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가?” 그 원리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삶이야말로 위대한 삶의 출발입니다.
4-5절을 읽겠습니다.
“곧 오빌의 금 삼천 달란트와 순은 칠천 달란트라 모든 성전 벽에 입히며 금 은 그릇을 만들며 장인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쓰게 하였노니 오늘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하는지라”
다윗은 물질의 소유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금 3천달란트(환산하면 약100-150톤)와 은 7천달란트를 성전건축에 드릴만큼 엄청난 부를 소유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삶의 본질적인 의미를 자신의 소유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에서, 그 삶의 가치를 찾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이스라엘 왕으로 쓰임 받는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이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또한 다윗은 이러한 택하심의 관점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 솔로몬을 택하셨다”는 사실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자녀들을 바라볼 때 “거룩한 하나님의 손이 그들의 인생에 개입하신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자녀들이 복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들의 인생에 견고한 지지대로 삼게 한다면, 우리의 자녀들은 다윗처럼 복된 인생으로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손길을 인정했을 뿐 아니라 아들 솔로몬을 향한 하나님의 손길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솔로몬에게 세상의 정욕과 권력을 좇지 말고, 삼가 하나님을 힘써 섬길 것을 당부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통해 자기 존재의 뿌리를 분명히 아는 사람들은 허송세월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인생의 폭풍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무게와 힘을 갖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이야말로 우리의 위대한 삶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은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이 시대 교회의 비극은 “영적인 기쁨과 은혜를 물질적인 수치로 환산하는데 익숙한 교인들을 양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가치, 정신적인 가치를 물질적인 가치로 변질시켜버립니다.
3-4절에 보면, 다윗은 자신의 소유 중 가장 순전한 오빌의 금 3천달란트와 순은 7천달란트를 성전건축에 드립니다.
이것은 “다윗의 마음속에 물질적인 가치보다 영적인 가치가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5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가슴 벅찬 기쁨”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6절에서는, 다윗의 자원하여 드리는 기쁨이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큰 도전을 불러 일으켜 그들도 기쁘게 동참하게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물질과 삶을 사용하신다”는 확신이 있을 때, 거기에서 파생된 마음의 희열과 감동이 있는 성도들은 주님 앞에 자연스럽게 자신을 비울 수 있는 것입니다.
고후9:6-7절을 읽겠습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사도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께 물질과 봉사로 자신을 드릴 때에 마치 “강탈당하는 것처럼 억지로 드리지 않아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드리는 자입니까? 빼앗기는 자입니까?
주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신앙고백이 분명한 사람은, 그것이 물질이든지, 시간이든지, 무슨 봉사를 하든지 즐거이 기쁨으로 드리는 삶을 삽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반드시 주님이 약속하신 100배의 축복을 받습니다.
실제적으로 창26:12-14절에 보면 이삭은 주님으로부터 100배의 축복을 받아 믿음의 거부, 물질의 거부가 신앙의 명문가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은 2,000여 년이 지나는 지금도 이삭의 후손인 유대 민족에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주님과 이웃을 위하여 나를 비우고, 즐거이 드리는 자가 되면, 영원토록 일점일획도 변함없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하게 차고 넘치도록 채워주실 줄 확신합니다.
3.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쓰임 받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1절을 읽겠습니다.
“다윗 왕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이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바 되었으나 아직 어리고 미숙하여 이 공사는 크도다 이 성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세상에는 사울형의 사람과 다윗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입성할 때, 여인들의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사울은 다윗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그의 남은 인생을 불행으로 몰고 가게 됩니다.
이처럼 사울형의 인간은 타인의 성공과 행복에 박수치지 못하고 닫혀있는 인간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들 솔로몬이 쓰임 받는다”할 때 기뻐하며, 성전건축에 부족함이 없도록 준비합니다.
다윗형의 사람은 남이 잘되었을 때, 박수를 쳐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주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동료나 이웃이 잘되고 성공하였을 때, 기뻐하는 마음이야말로 은혜 받은 성도의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넉넉한 마음과 어머니의 사랑의 마음이 될 때, 타인의 행복을 수용하고 기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보람된 일은 사람을 키우는 것입니다.
예수 피로 구속받은 저와 여러분은 남의 성공을 진정으로 박수치며 기뻐할 수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가진 자로서 진정한 성공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는 집중해서 쓰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이 집중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분산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질 때, 큰 바위를 굴러가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학문에 집중할 때 뛰어난 논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에 집중할 때, 풍성한 축복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15절을 읽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
이 말씀은 “다윗이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세월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을 고백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흘러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세월 가운데 “하나님 앞에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가?”를 깨닫고 주를 위해 쓰임 받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주님이 원하시는 종의 명분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역의 영혼들을 구원하고 복음의 깃발을 높이 드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상징적인 뜻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쓰시겠다”하실 때, 우리의 마음과 기도와 물질을 드린다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줄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는 그 미래를 하나님이 확실하게 책임지십니다.
우리 고현교회가 행복한 교회라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인생길을 다 달려간 후에 다윗처럼, 우리들도 하나님께 쓰임받는 기쁨을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삶을 하나님께 집중하여 풍성한 축복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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