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누가복음 10:17-24)

Johnangel 2023. 10. 30. 22:30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누가복음 10:17-24)

                                        

요즘 우리나라는 명품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습니다.

그래서 명품에 대한 지나친 소유욕은 사람들의 정신을 흔들고 있습니다.

인천공항에는 매일 명품을 숨겨 들어오는 자와 드러내는 자 사이에 전투적인 긴장이 감돌고 있습니다.

소위 명품을 따르는 명품 족들의 심리를 분석해보면, 명품으로 치장을 할 때 자신의 품격과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명품이 범람하는 이때에 영적인 본질이나 신자의 위치를 망각하게 되면 명품 바람에 끌려 다니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혈통적인 존귀함과 경제적, 사회적, 지식적 우월성을 드러내기를 기뻐하는 사회 속에 살면서 과연 인간된 행복과 성도된 기쁨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점검할 때, 예수 믿는 자의 정체감을 붙들고 살 수 있습니다.

 

1. 성도의 행복과 기쁨의 원천은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칠십 명을 제자로 훈련시켜 두 사람씩 짝을 지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보냈습니다.

이들이 마을마다 다니면서 복음을 전할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칠십 인이 돌아와 기뻐하며 자신들이 경험한 간증을 예수님께 보고하였습니다.

17절을 읽겠습니다.

“칠십 인이 기뻐하며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18절에 보면, 예수님도 이것을 이미 아시고 부정하지 않으셨고, 19절에서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낼 때에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할 권세와 능력을 주신 사실을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이 주의 복음의 능력으로 귀신의 능력과 맞부딪혔을 때, 그들은 능력의 대결을 경험하였습니다.

오랜만에 친인척이나 고향사람들을 만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서로 권력의 대결, 능력의 대결을 펼칩니다.

사회적인 영향력, 경제적인 안목이 누가 더 있는지를 대결합니다.

이때 우리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뛰어나다는 것 때문에 기뻐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견해는 달랐습니다.

제자들이 사탄을 제압하고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다가 아니라 그들에게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20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이 좋은 일이고 축복된 일이지만, 예수 믿는 자의 근본적인 행복과 기쁨은 그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임을 알고 그것을 기뻐하라고 도전하셨습니다.

여기 “하늘에 기록된 것”은 관용적인 말로 “하나님의 자녀 됨을 보증하는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말입니다(빌4:3, 계13:8, 20:11-15).

세상에서 남들에게 주목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주 뜻대로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고 천국의 축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이 마련하신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그가 과거에 훌륭한 일을 하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계20:13-15절에 보면 “이 세상 명품으로 자기를 치장했든지, 남보다 귀한 지식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불못에 던지우게 된다”고 증언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행복의 기초를 어디에 세우느냐?”에 따라 인생을 보는 관점과 태도가 달라집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권세를 준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나 본질적으로 기뻐해야 될 일은 너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실이다. 그것을 통하여 너희의 자아정체감을 확립하고 너희의 신분의 변화를 직시하고 믿음으로 살아다오”

이것이 우리를 향한 우리 주님의 부탁이십니다.

모든 사람이 오해하고 지지해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오직 한분 우리 주 예수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시고 붙들어 주시면, 그는 삶의 궁극적인 승리자, 행복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천국의 복음입니다.

일시적으로 세상 사람들의 신뢰와 환영을 받지 못하는 순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손으로 어루만지고 붙잡고 계시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할 때 주님께서는 역전의 은혜를 허락해 주십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는 경쟁사회에서의 낙오자도 사랑하시고 관심을 가지시고 다시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도록 은혜를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2. 성도의 행복과 기쁨의 원천은 예수님을 아는 것에 있습니다.

 

22절을 읽겠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내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하시고”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부르심이 없이는 어떤 존재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올바로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예정하시고, 선택하시고, 부르신 사람들만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내가 주님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와 진리가 나를 붙잡는 것입니다.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어도 복음에 대한 감격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자신같이 연약한 존재에게 주께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진리에 눈뜨게 하셨음을 아는 자들은 구원의 감격이 충만합니다.

23절에 보면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조용히 이르시되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고 하셨습니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와 제사장들과 임금들은 오실 메시야를 기대하고 예언을 했지만, 그 현장에는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가 이르러”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래서 주님은 “참으로 너희는 특권과 복을 누리는 자들이구나?”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삶의 행복의 원천은 어디인지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스스로 좌절할 수밖에 없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의 복음을 듣고 십자가의 사랑을 노래하도록 믿음의 눈과 은총의 귀를 주셨습니다.

열린 눈과 귀를 소유한 자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얼마만큼 예수님을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을 아는 것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표지입니다.

교회는 인생행복의 원천인 예수님에 대해서 정확하게 소개하는 곳입니다.

성도의 교회생활은 동기가 순수해야합니다.

교회생활의 본질은, 예수그리스도를 더 잘 알고 주님을 높이는 것에 있습니다.

교회생활을 통해서 예수님을 모시는 것이 희미하면, 교회생활의 전반적인 것이 무너집니다.

직분이 없어도 교회행정이 매끄럽지 못해도 정말로 예수님의 통치를 기뻐하고 주님의 다스리심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교회생활의 정로를 걷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주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구원의 도리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일점이라도 변함이 없습니다.

마5:18절에 보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자의 근본적인 행복과 기쁨은, 그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됨에 놓여있습니다.

우리의 자아정체감을 확립하고, 우리의 신분의 변화를 직시하며 삶의 궁극적인 승리자로 살아갑시다.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우리같이 연약한 존재가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진리에 눈뜨게 하셨음에 늘 감사드리며 살아갑시다.

모든 믿는 자의 인생행복의 원천인 예수그리스도를 더욱 잘 알고 주님만을 높이는 삶을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