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의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마가복음 2:13-17)
결혼50주년 되어 금혼식을 맞이한 노부부가 가족과 친지들을 초청하여 감사의 연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 축복된 연회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치 폐기물처럼 보이는 깨어진 꽃병이 노부부가 앉자 있는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었습니다.
잔치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중에 노부인의 답례순서가 되었습니다.
“저의 남편이 51년 전에 내게 청혼을 했을 때 너무 놀라고 감격한 나머지 꽃병을 넘어뜨려 깨뜨렸는데 그 꽃병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그때의 감격을 평생 잊지 않기 위해서 늘 이 깨어진 꽃병을 간직하며 살아왔습니다”
저는 이 노부부의 가정이 따뜻한 사랑과 감동의 봄바람이 부는 가정이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을 때에 따뜻한 가슴의 감동을 가지고 믿어야 합니다.
지식적으로만 믿는 사람들의 가슴은 감동이 자리잡을 공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감사를 담을 수 없습니다.
14절에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 비난”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세리나 죄인들보다 더 의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누구입니까?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율법학자들입니다.
율법의 대 강령인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몸같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잘 알고 가르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머리의 지식은 가슴까지 내려와 따뜻하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을 가슴으로 따뜻하게 품을 수 없는 지식이라면, 그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머리로만 믿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허물과 단점에 대해서는 관대합니다.
자신은 스스로 섰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은 “겸손하게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지식으로 진리를 거부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과 무지함과 한계를 늘 마음에 두어야 주님의 치료와 도우시는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의 중심이 주님 앞에 온전히 드려져야 합니다.
그때에 비로소 죄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치료받기 위한 세 가지 원리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1. 예수님을 영혼의 치료자로 모셔야 합니다.
17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한국대표팀 선수들이 거스 히딩크 감독을 신뢰하고 마음을 합하여 따르지 않았다면 4강의 위업을 달성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모시느냐?”에 따라 우리의 신앙생활의 본질이 결정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죄인이요, 병자요, 부족한 피조물로 나아가고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의사요, 권능의 주요, 만유의 주로서 우리에게 다가오실 때 우리의 삶에 희망과 치유가 있습니다.
치료자, 의사이신 주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믿기 이전의 삶과 믿은 후의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신뢰하고 믿음으로 따라가면, 반드시 승리하고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2. 예수님을 내 삶의 중심에 영접해야 합니다.
15절을 읽겠습니다.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더라”
어떤 일에 최상의 가치를 두고 자신의 삶을 던지는 사람들을 우리는 매니아(mania)라고 합니다.
한국이 8강에 오르자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 앞에는 텐트촌이 생겼습니다.
경기 며칠 전부터 반환되는 표라도 사기 위해 학교와 직장에 휴가를 내고 와서 텐트를 치고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곳곳에서 배낭을 메고 한국을 찾아온 젊은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돈을 들여 먼 여행을 할 만큼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즉 축구 매니아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취미가 아닙니다.
추상적인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전 인생을 거는 일이요, 주님을 실제적인 내 삶의 현장에 모시는 것입니다.
마태는 예수님께 부름 받은 후에 자신의 집을 기꺼이 열어 예수님과 사람들을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주님을 모신다”는 것은, 곧 주님의 일을 위해서 시간과 물질을 기쁘게 드리고 전 생애를 거는 것입니다.
축구 매니아들이 축구에 푹 빠져 온 몸에 바디페인팅을 하고 승리를 환호하면서 차량행진을 하는 것을 누가 이상하다고 손가락질 하겠습니까?
환호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를 때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멀찍이 주님을 따른다고 할 때 주님에 대한 결례요, 모독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주님의 은혜에 푹 잠기고 십자가의 사랑에 다스림을 받으면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받은 구원의 축복은 나에게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확대 재생산되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과 사업과 교회가 잘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의 삶의 중심에 모시고 우리가 받은 복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눕시다.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신 사람은 이웃과 담을 쌓고 살 수 없습니다.
3. 예수님께 순종함으로 계속적인 성장을 해야 합니다.
감독은 막강한 선수선발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경기 중에라도 감독이 선수교체를 지시하면, 선수는 반드시 그 지시에 따라야 합니다.
심판도 경기진행 지시와 선수들의 반칙에 대한 경고 및 퇴장을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어느 선수도 여기에 불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경고의 사인을 주십니다.
그때 우리는 순종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계3:14-16절에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께 대한 미지근한 신앙을 버리라는 주님의 경고의 사인”을 받았습니다.
만약 이 경고의 사인을 무시한다면 주님의 은혜 밖으로 퇴장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여러분의 영적지도자들의 권면에 순종하십시오.
건강하고 힘 있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순종의 지수를 높여야 합니다.
주님의 명령과 영적지도자의 권면은, 내 마음과 기분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명령에 조건 없는 순종만이 영적인 근육을 강화시킵니다.
나의 의지를 꺾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의 전사로 단련하시고 사용하십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이 되셨다”는 것은 “그분의 뜻이 나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주님의 뜻을 앞장세우고 순종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 인생의 치료자가 되시는 주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셔드립시다.
우리 인생의 감독자가 되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영적인 탁월성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주님께서 파격적인 은혜를 베푸셨다면 우리도 파격적인 헌신을 드려 주님의 이름과 영광만이 높임 받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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