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본질 (베드로전서 1:6-9)
사도 베드로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1절에 보면, “흩어진 나그네“에게 본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나그네는 환경에 순응하게 되어있고, 희망도 없고, 길을 가다가 좋은 사람을 만나서 어느 정도 정착을 하면 그것으로 만족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환경에 순응하는 존재로 살지 말고,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지고 삶을 치열하게 저항하며 살라고 촉구하며 격려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응답 가운데 길들여지기 쉽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도리를 굳게 잡고 믿음의 닻을 올리고 믿음의 닻을 내리기도 하면서, 흔들림 없는 그리스도인의 자아상을 정립하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특권이며, 의무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살기 위해서는 신앙의 본질을 붙잡아야 하는데, 신앙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1.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자아상에 견고히 서는 것입니다.
2절을 읽겠습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아무리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 살아도 나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주의 일꾼이요, 자녀라는 건강한 자아상을 소유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택하신 주님의 자녀들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세상을 역류하거나 저항할 수 없습니다.
나의 이성의 차원 높은 활동과 지식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행하심 가운데 무릎을 꿇고 주님의 견해를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의 본질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하는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이 세상 나그네 길로 살 때 열매 맺기가 힘듭니다.
자아상이 흔들리면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자신과 이웃이 바라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사람이 됩시다.
신앙은 내생각과 견해를 가지고, 하나님의 생각과 견해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견해를 내 생각보다 우위에 두는 것입니다.
2. 신앙의 본질은 예수님의 사랑에 불붙어 사는 것입니다.
8절을 읽겠습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나니”
교회생활을 하고, 직분을 가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핵심은 예수님 사랑입니다.
예수님 사랑 때문에 예배가 좋고 직분을 수행하는 것이 즐거워야 됩니다.
따라서 모든 해법은 예수님 사랑에 귀결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쁘고 감동이 충만한 나그네 생활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믿음과 사랑입니다.
이 두 가지는 상호 역학적인 관계를 가집니다.
믿는 만큼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기 때문에 믿음이 증가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코드는 믿음과 사랑의 코드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기쁨은 주님 사랑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랐던 베드로도 주님을 보지 못하는 것 때문에 믿음이 떨어지고 주님을 덜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그것이 바로 믿음을 통한 사랑의 신비입니다.
내가 직접 손으로 만지지 못해도, 마음의 눈을 열어 예수를 보고 말씀을 통해 성령의 감동이 내 맘에 있으면, 이 전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이 사랑의 비밀을 체험하며 사는 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예수사랑과 예수를 믿음이 우리 신앙의 본질입니다.
예수님 사랑에 불붙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 뿌림”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하심”과 “예수그리스도의 나타나실 재림”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고난당하시고 부활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시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우리는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는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령에 예수님 사랑을 불붙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과 재림하실 주님에 대한 깊은 통찰이 개인적으로 체험되고 고백되어져야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 때문에 누리게 된 축복이 무엇입니까?
세 가지를 말씀합니다.
①3절에 보면,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거듭남과 산 소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②4절에 보면,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기업”을 마땅히 누릴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마련해 놓으신 모든 것을 주님이 기쁨으로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기업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그것을 누려도 누리는 사람처럼 살지를 못합니다.
③5절에 보면,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게 되었습니다.
나그네 인생길에서 하나님의 보호가 얼마나 필요합니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능력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이 그냥 고백이 아니라 내 삶의 체험을 통해서 하는 고백이 될 때 하나님의 능력을 삶의 현장에서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 모든 축복의 결론을 이렇게 매듭짓습니다.
9절을 읽겠습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전인격적인 구원을 가리켜 “영혼의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약속 받은 자들입니다.
이 땅에 나그네로 살지만 이 약속을 붙잡고 사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복과 은혜는 구약의 선지자들, 신약의 복음 전도자들, 심지어는 하늘의 영물인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원대하고 깊은지 영물인 천사도 다 이해를 못합니다.
천사들도 알아내기를 원하는 비밀이 바로 여러분과 저의 구원의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당당하고 멋있는 존재입니까?
3. 신앙의 본질은 고난과 환경보다 주님을 더 존중하고, 더 의지하고, 더 집중하는 것입니다.
6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예수 믿기 때문에 오해받고, 사회적으로 핍박받고, 정치적으로 압박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여러 시험가운데서 오히려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때, 믿음의 사람으로 살게 될 때, 이 시험들이 주님을 기뻐하는 축복의 기회가 됨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7절에 보면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라고 말씀합니다.
물질가운데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순금으로 만들기 위해, 정금으로 만들기 위해, 순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금을 단련해야 합니다.
동일한 원리로 우리의 주님 사랑하는 순도를 높이기 위해서도 불같은 시험의 과정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고난의 골짜기로 지나야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의 골짜기를 지날 때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주님께 믿음의 충절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 위협, 역경이 없으면 우리는 믿음의 저항도 없고, 간증거리도 없습니다. 불같은 시험가운데서도 금 같은 믿음을 나타낼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 주님은 우리가 환경에 순응하며 사는 무력한 군중으로 전락하여 살기를 원치 않고 믿음을 가지고 삶을 치열하게 저항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건강한 자아상에 견고히 섭시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과 재림을 깊이 확신함을 통해 예수님 사랑에 불붙어 삽시다.
어떠한 고난과 환경보다도 주님을 더 존중합시다.
주님을 더 의지합시다.
주님께 더 집중합시다.
이 땅에서 살 때 선택받은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본향을 바라며 삽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합시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믿음의 결국 곧 영혼구원의 복을 누리며 사는 축복된 성도답게 믿음과 사랑의 원리로 전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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