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사람 (요한3서 1:15)
여러분, 어떤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까?
이 질문에 여러 대답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교회 건물이 그 교회의 건강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화려한 경력도 교회건강의 보증수표로는 부적격입니다.
교회의 재정의 넉넉함은 복된 일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헌신의 잣대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정능력이 교회의 영성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는 결코 아닙니다.
사43:4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예수 피로 거듭난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긍정하고, 주님의 뜻을 따라 헌신하며 사는 성도가 될 때, 교회건강의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는 건물과 재산이기 이전에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사람 즉,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사람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사람으로 쓰임 받을 수 있을까요?
1.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할 수 있습니다.
1절을 읽겠습니다.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본문 2.5.11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여”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요한삼서는 사도요한이 교회의 영적지도자가 된 “가이오”라는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보낸 편지입니다.
여기서 요한은 가이오에게 계속하여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곧 사랑 받음과 사랑의 나눔 즉 사랑의 봉사와 실천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수고할 수 있는 사람은, 먼저 사람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편지를 쓰는 사도요한은 가이오라는 지역교회 지도자를 생각할 때, 거듭거듭 사랑하는 자라고 하면서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나타냈습니다.
또한 복음을 위하여 수고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사랑받아야 됨을 그 이면에 깔고 있습니다.
요1서3:1절을 보면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놀랍고도 상상을 초월한 희생적인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 주셔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놀라운 칭송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세상이 도무지 주지 못하는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일꾼으로서 복음을 위해 함께 수고하기 위해서는 사랑받는 성도이어야 됩니다.
요1서3:16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된 우리는 원래 참사랑을 모르던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가페적 사랑을 통하여 우리는 비로소 사랑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보며 주님 앞에 나아갈 때, 비로소 변질된 사랑은 점점 물러가고,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게 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한시적이며, 조건적이며, 따라서 변질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불변하고, 무조건적이며 항구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접촉된 사람만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위하여 함께 수고할 수 있습니다.
요1서4:9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감추어진 사랑이 아니라 드러나고 실천된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경험하고 접촉한 사람만이 주의 복음진리를 위해서 담대한 믿음의 용사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지 않은 사람은 줄 사랑이 없습니다.
은혜 받지 않은 사람은 나눌 은혜가 없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자들은 반드시 먼저 하나님의 사랑과 가장 가까이 있는 부모님의 사랑과 그리고 공동체 내에서 사랑에 접촉된 사람만이 복음을 위해서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은 흔적이 있습니까?
또한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은 감사가 있습니까?
사랑받은 지수가 사랑실천의 지수를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진리의 사람이 복음을 위해 함께 수고할 수 있습니다.
3절을 읽겠습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교회의 평신도 지도자들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어야합니다.
또한 진리의 수용자이면서, 동시에 진리의 실천자가 되어 삶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4절에 보면 사도요한은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고 했습니다.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말은 “복음 안에서 예수님의 목적을 이루면서 생활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없이 봉사하면, 마음이 공허하게 되고 쓰러지게 됩니다.
그런데 현대그리스도인의 특징 중 하나가 여러 종류의 봉사가운데 자기 기분대로 봉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①사람을 보고 하는 봉사 ②재능으로 하는 봉사 ③기분 따라 하는 봉사 ④입으로 하는 봉사들은 모두 위험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따라야할 봉사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감격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봉사해야 합니다.
시119:55-56절에 보면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 앞에 드려야 할 재산은, 말씀 따라 살고, 말씀 따라 봉사하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소유한 재산이 많은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부유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익명의 봉사자가 되어 교회건강에 기여하는 성도가 됩시다.
3. 팀웤에 기여하는 사람이 복음을 위해 함께 수고할 수 있습니다.
8절을 읽겠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 “영접한다.”는 것은 그 당시 순회복음전도자들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따뜻하게 모셔 들여 따뜻한 마음의 교제를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들이 여행할 때 불편함이 없도록 순회복음 전도자로서의 여장을 갖출 수 있도록 챙겨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 아름다운 사역은, 주님의 사랑과 성도들의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는 숫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실 때 홀로 부르지 않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훈련을 시키실 때도, 베드로 혼자가 아닌 그룹으로 부르셨습니다.
잠18:1절에 보면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팀을 이루어서 복음의 진리를 위해서 함께 수고해야 합니다.
여러 형제교회와 손에 손잡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보조를 맞추어 진군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집니다.
여러분과 가족을 통하여 목장이 이전보다 더 활성화 되었습니까?
더 생기가 넘쳐납니까?
의미 있는 삶으로 쓰임받기를 소망하는 여러분!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 우리를 영원히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기억합시다!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의 한 가족 된 사랑을 누립시다!
우리는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누면서 복음의 진리를 위해 살아갑시다!
각자 자기 기분대로 사람 때문에, 재능을 드러내기만을 고집하면서 입으로만 봉사할 것이 아니라 진리를 따라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감격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봉사합시다.
진리를 위해 함께 수고하는 건강한 성도들이 되어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갑시다.
우리교회가 지역교회와 사회에 기여하는 교회로 세워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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