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위하여 심어야 합니다. (갈라디아 6:6-10)
오늘 본문은 “우리의 삶을 경영하는 원리가 무엇인가?”를 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7절에 보면, 그것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거둘 것이 없는 사람은, 여러 환경과 일들을 원망하기도 하고, 사회를 원망하기도 합니다.
부모를 원망하기도 하고, 자신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분명한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파종과 추수의 법칙입니다.
만약 이 법칙을 부인한다면, 그 사람은 두 가지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첫째, 자신을 스스로 속이게 됩니다.
성경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말합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서울에서 발행되는 6개 일간지의 광고에 무속과 점술을 안내하는 광고나 “오늘의 운세”와 같은 광고가 대거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사철, 결혼시즌과 같은 생활변화가 많은 3~5월에 점술 및 무속광고가 더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분석이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점을 보는 카페도 성업중이라고 합니다.
수고와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서 요행수로 “내 인생이 한번 성공할 때가 언제인가?” 기대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우리나라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땀과 눈물을 뿌려서 정당한 결실을 거두려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불신자들이나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은,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 대해서 해답 얻기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경험하는 고난의 정도와 깊이는 다르지만,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고통이나 고난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은 고난과 죽음과 질병을 맞이하는, 우리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기뻐하고 평안해하는 반응에 주목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그리스도를 전파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세우신 목표를 성취하도록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나타나며, 교회는 그 고난을 통해 생겨났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함께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지막에 있을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기 전에 먼저 그 고난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업신여긴다.”는 것은 “가볍게 취급한다. 조롱한다. 우습게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유한한 피조물이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가볍게 여길 수 있습니까?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거둘 것이 없는 사람은, 언제나 두려움의 삶을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는 원리는 무엇일까요?
1. 대인관계에서 성공자가 되십시오.
6절을 읽겠습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말씀의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영적인도자와 모든 축복된 것을 함께 나누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의 원래 의미는, 말씀사역자에게 보수를 지불하고 그를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에 보면, 정치, 혈연관계, 사제의 관계에서 배은망덕 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인도자의 권면과 가르침에 복종하십시오.
영적인 축복의 채널을 막지 스스로 막지 맙시다.
영적인 지도자와 등을 돌리지 맙시다.
우리는 말씀의 가르침을 받는 자와 말씀을 가르치는 자의 관계를 “하나님이 인도하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서로를 존중합시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부모와 자녀가 서로 존중하고 신뢰합시다.
딤전5:17절에서 바울은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할 것이니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목회자뿐 아니라 평신도 지도자들을 서로 존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상대방에 대한 정성과 존중하는 마음을 통해 대인관계의 성공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자신을 경영하는데 엄격해야 합니다.
8절을 읽겠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는 우리 인생의 최고경영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밝아지고 열매가 있으려면, 삶의 경영원리가 분명히 확립되어야 합니다.
만약 이러한 원칙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나침반이 없는 항해를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육체의 본능과 죄 성을 따라 심는 사람이 되든지,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 위하여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되든지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갈5:16-26절에 보면, 육체를 따라 산 사람의 인생의 결과와 성령을 따라 심는 자의 인생은, 그 결과에 현저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경영원리가 되게 합시다.
또한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인생경영의 원리로 물려줍시다.
3. 선한 일에 격려를 받고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9-10절을 읽겠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여러분, “좋은 일을 한다.”하더라도, 낙심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족과 사람들의 오해나 비협조로 인해, 원망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열매를 거두지 못한다 할지라도, 주님은 주님의 나라에서 합당한 우리의 수고에 대한 은혜와 축복을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함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보든지, 아니 보든지, 나의 일을 묵묵히 감당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시간에 귀한 것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반석 같은 확신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오늘날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조급증에 붙잡혀 있습니다.
아침에 기도하고 저녁에 응답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기도에 응답되지 않았다 해서 주저앉는 것은, 성숙한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백열전구를 발명하기 위해 계속해서 1,247번이나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이 일이 하나님의 뜻이고 사람들에게 유익이 된다면 제게 힘을 주십시오.”라고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실망하지 않고 실험을 계속한 결과 1897년 10월 21일 드디어 백열전구를 이 땅에 태어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신문들은 토마스 에디슨의 천재성을 대서특필했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천재란 2%의 영감과 98%의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에는 정직한 노력과 땀이 뒤따라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얻고, 그 용기를 가지고 선한 일을 행하는 데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 직분, 환경은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행복을 위하여 아름답게 쓰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교회의 양육목표는, 주님을 알고, 주님의 뜻을 행하며, 주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교회가 이미 성도가 된 자들을 양육하여 믿음을 성장시킬 의무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성부 하나님은 자녀들을 부르시고,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성령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그 몸의 양육을 위하여 삼위일체 하나님도 함께 일하십니다.
우리는 추수의 기쁨을 누리는 성도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삶의 원리를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합시다.
우리 자신을 위하여 성령을 따라 심는 자가 됩시다.
양육과 훈련을 받아 우리에게 주신 환경과 직분과 시간을 통해 선행에 힘써,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안겨주는 믿음의 사람으로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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