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그리스도인의 삶 (데살로니가전서4:1-2)

Johnangel 2024. 3. 24. 08:38

그리스도인의 삶 (데살로니가전서4:1-2)

                                        

사도 바울의 편지를 읽어보면, 공통되는 점이 있습니다.

첫부분에서는 기독교의 교리적인 면을 다루고, 끝부분에서는 그 교리에 입각한 그리스도인의 생활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도 다른 편지에서와 마찬가지로 끝부분에서, 성도들이 경건한 삶을 살도록 권면하는 사도바울의 목소리를 들어 볼 수가 있습니다.

 

1절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하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끝으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을 향해서 이미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말씀했기 때문에, 거기에 근거해서 말문을 열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이란, 계속 발전하고, 전진하고, 성장하고, 성숙해야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마땅히 행하라”는 강력한 표현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해도 되고 안 해도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행하지 아니하면 안 되는 의무적인 표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그것을 받았습니다.

 

살전2:13절에 보면 바울은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데살로니가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기쁨으로 마음속에 영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의 권면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때로는 교회에서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요청하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 부탁이나 요청, 혹은 권면이 어느 개인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까?

모두 우리 “주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목장이나 팀에서도 봉사를 요청하는 것은, 모두 “주안에서” 구하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개인적인 위치나 지식을 가지고 그들의 행동을 위해 제안한 것이 아니라 그가 그들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그리고 바로 이런 일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특징이기 때문에 그는 담대히 외친 것입니다.

만일 바울 자신의 일이었다면, 바울은 절대로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2절에도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이 무슨 명령을 하던지, 그것도 주 예수로 말미암아 하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1-2절에 반복해서 “자신이 인간적인 방향대로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을 끌고 나가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처음부터 그들에게 하나님의 방법과 길을 보여 주었고 지금도 그는 그것을 계속 행하고 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언제나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해 “우리가 너희에게 명령을 준 것은 너희가 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히11:6절을 읽겠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믿음으로 사는 길입니다.

히11:5절에 보면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본래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은 믿음의 역사를 하는 교회로 소문이 나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지금 “더욱 힘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으로 사는 것은 아무리 힘써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아는 것이나, 인정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되는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내맡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상수도 파이프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수원지에는 무진장의 축복의 생수가 저장되어 있습니다.

내 믿음의 파이프를 “어떤 것으로 연결하느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느다란 파이프를 연결하면, 그 가는 파이프를 통해서 축복의 생수가 졸졸 흐릅니다.

그러므로 시원하지가 않습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승리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기는 믿으면서도 불안과 초조와 염려와 근심과 낙심과 한숨, 원망과 불평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이 작아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 믿음이 적어서 불안해 할 때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의심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적은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큰 믿음을 가지면 굵은 수도 파이프를 연결한 것 같아서 하나님의 축복의 수원지에서 하 나님의 축복의 생수가 폭포수처럼 쏟아집니다.

그러므로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은 기쁨과 찬송, 감사와 감격, 전진과 승리만 있습니다.

예수님도 큰 믿음의 소유자를 칭찬하시고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될지어다”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큰 믿음 가지시고 큰 축복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살면 범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입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빌4:13절을 보면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어떻게 적극적일 수가 있습니까?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견지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시느니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이것처럼 귀한 것이 없습니다.

보통으로 믿음 없는 사람은 환경과 조건만을 봅니다.

그러므로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믿음 있는 사람은 외부적인 환경이나 조건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믿음 없는 사람과 믿음 있는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과 같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소위 “자기암시”라고 합니다.

안된다, 안된다, 끝났다, 끝났다. 하면 안되고 끝납니다.

그러나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하면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 가지고 사시면서 범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로 사시기 바랍니다.

크게 믿으면 크게 복이 되고, 적게 믿으면 적게 복이 되고, 아무것도 안 믿으면 아무 복도 없습니다.

큰 믿음으로 큰 축복 받으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복되고 우리 가정과 사업 그리고 직장이 번영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