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당신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4-11)

Johnangel 2024. 3. 26. 14:31

당신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4-11)

                                         

오늘 말씀을 보면 우리를 가리켜 “빛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빛의 아들들은 어두운 면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아니라 항상 밝은 곳만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먼저 살펴볼 것은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의 중요한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재림에 대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소망을 가져다주는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곳곳에서 주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기록된 데살로니가전서가 다루는 중요한 문제가운데 하나가 바로 재림에 대한 말씀입니다.

살전4:16절을 읽겠습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 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주님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이 땅의 통치자로, 이 땅의 심판주로 분명히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 항상 이 의식을 갖고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언제와? 이렇게 태평스러운데, 여기가 천국인데, 안 오실거야?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불신자들에게 “주님의 오심을 도적 같이 오신다” “해산의 고통이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오는 것 같이 다가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주님의 재림은 멸망의 순간이요, 예측하고 준비하지 못하는 그 사이에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도적같이 오지 않고, 그날은 즐거움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빛의 아들들이기 때문에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주님의 다시 오심이 밤에 홀연히 찾아오는 도적과 같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이 “몇 년 몇 월 며칟날 주님이 오신다”고 이렇게는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주님이 오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고, 그 나라에 대해 대비할 수 있으며, 또한 대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주님 재림을 대비하기 위해 두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 “자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육적인 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잠을 가리킵니다.

잠에 빠져 있는 사람은 누가 건들어도 쉽게 눈을 뜨지 못합니다.

어떠한 상황이 와도 전혀 감각이 없는 사람이 바로 잠을 자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자지 말라”는 것은 “무감각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감각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죄에 대한 문제도 감각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도 감각이 있는 자가 되어야 하고, 성령께도 민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와 동행하시는 그분의 음성에 민감해질 때에 우리는 자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 우리는 정신을 차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7-8절을 비교해 보면, “자는 자들”이라는 단어를 “술취함”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술취한 자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바르게 걷지 못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는 사람들, 즉 자제하지 못하는 것이 술취한 자들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다”는 단어는 그와 반대되는 말로 “술취하지 말고 맑은 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다른 성경에서는 이것을 “자제하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신을 차린다”는 말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하여 어떠한 유혹과 시험에도 자제할 줄 아는 삶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우리를 흔들리게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힘든 것만이 시험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편하게 하고, 오히려 우리에게 좋은 것은 가져다주는 것이 시험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 그만인데, 그것이 나를 안주하게 만들고, 그러한 여유로움과 풍요로움이 나를 바쁘게 만드는 것이 시험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약1:10절에서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에게 이러한 부를 허락하신 이는 내가 아니라 주님이시기에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의 제목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영적인 잠을 자지 말고 정신을 차립시다.

그리고 모든 유혹과 시험에서 우리의 삶을 자제하고, 목표를 향해서 전진해 나갑시다.

우리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이제 내려놓읍시다.

이렇게 정신을 차리고 우리의 삶에 채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8절에 보면 바울은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고 바울은 권면합니다.

믿음, 사랑, 소망은 빛의 자녀들의 삶의 원리입니다.

살전1장을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었던 모습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너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기억함이니”

그렇습니다.

믿음, 사랑, 소망은 삶의 원동력입니다.

우리는 역사가 있는 믿음, 행함이 있는 믿음, 삶의 현장 가운데서 드러나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수고하는 사랑,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내 시간과 환경에 손해가 나는 사랑의 수고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가슴속에는 “주를 향한 소망을 품으며 인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내 삶에 충만할 때에 우리는 정신을 차릴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더 나은 미래가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또 이 말씀을 보면 “가슴에 호심경을 붙이고 투구로 무장하라”는 군인들의 무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군인들은 싸움도 잘 해야 하지만, 잘 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당시의 로마군인들은 적의 활이나 창으로부터 가슴을 보호하기 위해서 호심경을 붙였습니다.

주로 심장에 있는 가슴을 보호하기 위해서 누빈 가죽이나, 주조한 놋쇠로 가슴에 호심경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투구는 머리를 보호해 주는 중요한 군장입니다.

전쟁터에서 싸움하는 군인이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머리에 상처를 입게 되면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군병들입니다.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신앙의 무장을 갖추어야 합니다.

안일한 신앙은 무너집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미혹하는 무리들은 더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라는 단어입니다.

나 하나만 무장하고, 나 하나만 단련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함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할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함께 하는 이들 중에 근신하지 못하고 넘어지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1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하라”

다시 말해서 바울은 이미 데살로니가교회 교인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