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한사람을 찾읍시다 (누가복음 15:1-7)

Johnangel 2024. 3. 30. 16:29

한사람을 찾읍시다 (누가복음 15:1-7)

 

혹시 여러분 가운데 부모로써 자녀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습니까?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는, 앞이 캄캄하고 당황하며, 온통 그 아이에게만 집중하게 됩니다.

따라서 아이를 잃은 부모에게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고, 대신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찾아다니다가 비슷한 또래아이만 눈에 보여도, 자기 아이인 것처럼 착각을 하기도합니다.

 

아이를 잃어버려 보면 “부모의 마음에 무엇이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주 값비싼 보석을 잃어버린 것과는, 결코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10년 20년 전에, 잃어버린 아이를 지금도 찾아다니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어떤 부모는, 생계를 포기하고 찾아나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부모가 아니고는, 그 심정을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녀를 잃은 부모의 마음이요, 이 부모의 마음은, 곧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본문은 양을 잃은 목자의 심정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목자의 심정은 무엇입니까?

 

1. 목자의 놀라운 관심은, 길을 잃은 양에게 희망의 출발입니다.

 

4절을 읽겠습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양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자구책이 전혀 없습니다.

스스로를 지킬 무기가 없기 때문에, 위험에 완전히 노출된 동물입니다.

유대 땅은, 낭떠러지위에 초원이 형성되어 있고, 계곡에는 가시밭이 있기 때문에, 방향감각이 없는 양에게는, 지형적으로도 아주 위험합니다.

따라서 목자를 떠나 길을 잃은 양은,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이 양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양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록 백 마리 중 하나이지만, 목자가 이 양을 알아보고, 찾을 때까지 찾아 나서는데 있습니다.

 

관심은 사랑의 외적인 표현입니다.

교회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잃어버려진 자를 향한 그 하나님의 관심을, 우리의 관심으로 삼아 실천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어야만, 이 세상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소망이 있는 우리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2. 참된 목자는 포기하지 않고 끈질지게 추적하십니다.

 

목자에게는 포기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합법적인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해가 지고, 일과가 끝났기 때문입니다.

또한 양을 찾아 나섰다가, 목자의 생명도, 위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자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 집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군중 속에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전체로 대하시지 않습니다.

일대일로 대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나 한 사람에게 집중하시고, 나 한 사람의 죄를 위해 십자가 달리심으로써 구원해 주셨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를 무리중의 한 사람으로 만족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 개인적으로,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반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헌신에 묻어서 헌신의 흉내만 내고, 형식만을 취하는 잘못된 성도의 태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심정을 깨달은 목자였습니다.

갈4:19절에 보면, 바울은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고 말했습니다.

우리교회가 힘이 있기 위해서는 “집중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목장의 목자들은 목원들 한사람 한사람을 가슴에 품고, 구체적으로 기도하고, 말씀으로 권면하고, 위로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사들은 자신이 맡은 반의 아이들을 가슴에 품고, 구체적으로 기도하고 말씀으로 권면하고, 위로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주님은 잃은 양을 찾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태초부터 지금까지 달려오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집념의 하나님시요, 열심의 하나님이십니다.

 

3. 참된 목자는 드디어 잃은 양을 찾아 이웃과 함께 즐거워합니다.

 

5-6절을 읽겠습니다.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주님의 즐거움은, 잃은 양을 찾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잃은 양을 찾아 집에 돌아와 동네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벌입니다.

잃은 양을 찾은 기쁨은 드러내고 나눌 수밖에 없는, 감출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성숙한 성도는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자신의 즐거움보다, 주님의 즐거움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즐거움은 무엇입니까?

우리 안에 있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는 것입니다.

 

7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여러분, 누가 잃어버려진 양입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가 잃어버려진 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절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잃어버려진 양인 사람이 있습니다.

1절에는 “세리와 죄인들” 2절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는 것을 못마땅해 했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볼 때 “세리와 죄인들”은, 죄 덩어리요, 인간쓰레기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 인류의 대속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이 마지막 순간에, 복음을 듣기 위해 나오는 세리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복음을 베푸셨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주님과 함께 기뻐해야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오히려 주님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종교지도자들로써 “그들 스스로는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이기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같은 마음은 없습니까?

혹시 자신의 구원에만 만족하고, 이 구원의 즐거움에 다른 사람들은 접근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쳐놓고, 우리끼리만 즐거워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에게는 “한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 잃어버려진 한 영혼이 주님 앞에 나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이것에 실패하면, 우리교회는 실패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누가복음 15장의 “집안에 남아있는 탕자”인 큰 아들과 같은 마음으로써, 잃은 아들을 찾는 아버지의 마음과, 찾았을 때의 아버지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해서 불평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의 경우는, 다 주님의 마음과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감정과 만족에 사로잡혀 있는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교회에 “예수 생명 예수 구원. 전하자. 전하자. 전하자.”라는 구호 속에, 5월 29일까지 “행복나눔축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행사가 아닙니다.

이 시대를 향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우리교회가 성숙한 교회요, 또한 우리가 은혜를 받은 자라면, 그 증거는 바로 “주님의 관심이 우리의 관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나를 찾아오신 주님께서 다른 사람의 영혼에게도 찾아오실 기회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 가까운 주변에는,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주님의 헌신된 수많은 증인들에 의해 복음이 2천년동안 전해졌지만, 아직도 이 지구상에는 복음을 접해보지 못한 미전도 종족이 12,000여 종족이나 됩니다.

이들은 불교, 회교, 힌두교, 라마불교 등 원시종교에 사로잡혀 사는 잃어버려져 방황하는 영혼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주님의 관심을 우리의 관심”으로 삼아, 이들을 복음의 빛 앞에 드러내기 위해 매년마다 “해외단기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하나님나라의 역사적이고, 축복된 발걸음입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민족, 우리지역, 우리직장, 우리주변이웃에, 아직도 수많은 잃어버려진 영혼들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나 하나가 이 광활한 우주에 혼자 존재한다 할지라도,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실 분이십니다.

동시에, 내 주변에 아직도 새생명을 얻지 못한 이웃을 위해서도, 동일한 심정과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주님이십니다.

따라서 주님의 이 사랑과 관심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의 배움과 힘과 가진 모든 것을 가지고, 우리 이웃이 주님의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주는데 총력을 다 합시다.

우리 안에 잠재해 있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과 같은 마음을 뿌리 채 뽑고, 가난하고 열린 마음으로,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복음을 나누어주는 도구로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 참 목자의 심정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고후6:1-2절의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임을 깨닫고, 많은 잃어버려진 영혼들을 주님께 구원의 제물로 드리는 거룩한 복음의 제사장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