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주님과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는 자 (이사야 55:1-5)

Johnangel 2024. 7. 15. 18:35

주님과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는 자 (이사야 55:1-5)

                                              

나이가 조금씩 들어갈수록 많이 받는 것 중의 하나가 “초대장”입니다.

결혼 초대장, 아이 돌 초대장 등. 대부분의 초대장은, 행복한 삶을 축복해 주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서 보냅니다.

그런가 하면, 힘들어 아파하는 곳으로 초대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장례식에 가봐야 될 때도 있고, 병원에 입원하신 환우나 형편 때문에 아파하는 가정이나 현장으로 달려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웃을 구제하고, 선교현장으로 달려가 선교사를 섬겨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곳에 어떻게 빈손으로 가겠습니까?

꼭 해야 할 중요한 일이지만, 간혹 돈 때문에 망설여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좀 채워주고 싶은데 넉넉하지 않을 때는, 돈에 대한 부담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태풍이 몰려 올 때, 그 바람을 타고 오만 원짜리가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본문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놀라운 초대장이 발견했습니다.

 

1절을 읽겠습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여기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는, 이 말씀은 전혀 부담이 없습니다.

여기 말씀하는 물은 “생명”입니다.

여기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는 초대장은, 포도주와 젖은 생명이 있는 자들에게 삶의 활력과 용기를 부어주는 축복입니다.

이런 하나님 나라의 축복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돈으로 살아가야 되는데,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과 은혜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의 현장으로 달려와 함께 뛰어주는 우리 아버지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돈으로 부유하게 살래? 아니면 이런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로 살래?”라고 물으면, 서슴없이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로 살겠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돈으로 살겠습니다.”고, 말하는 분들도 의외로 많습니다.

 

2절을 읽겠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예수님께서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빈들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배가 고픈 사람들에게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나누어 주기 시작했는데, 나누어 줄수록 떡과 고기가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천 명이 먹고, 열 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을 본 사람들은 감격하고 환호하며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먼 거리를 걸어서 온 사람들도 있었고,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서 대형버스를 대절해서 단체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대단한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을 발견하고 “오, 예수님! 여기 계셨군요. 우리가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찾았는지 아세요?”라고 기뻐서 외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바라보며 어두운 표정으로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양식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나는, 썩을 양식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마셔도 마셔도 “목이 마른 양식”입니다.

이 양식은, 돈 주고 사야만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수고하여 흘린 땀으로 얻는 양식”입니다.

사람을 바라보며, 세상을 바라봐야만 얻을 수 있는 “양식”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양식은 “썩을 양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영원토록 썩지 않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오직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로 주어지는 “양식”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살과 피를 지불해야 살 수 있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예수님은 이 양식을 설명하시면서, “자신의 살과 피를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은 어렵도다. 누가 알아 들을 수 있겠느냐?”고, 듣기를 거부하고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제자라고 말했던 사람들조차도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요6:66절을 읽겠습니다.

“이러므로 제자들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다시 말해서 “주님을 따르면 돈도 주고, 건강도 주고, 권력도 주고, 승진도 주고, 복을 받는 비결을 주면 좋겠는데, 이런 것은 안주고 주님의 살과 피, 예수님의 십자가 생명으로 살라고 하면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도 이렇게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떠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남아있는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성질이 급하고, 화끈한 성격의 소유자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너무너무 멋진 고백입니다.

베드로의 고백 속에는 영원을 사모하는 목마름이 있습니다.

거룩한 목마름입니다.

영혼이 살아나는 목마름입니다.

돈으로는 결단코 해결할 수 없는 목마름입니다.

오직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과 은혜로만 해결할 수 있는 목마름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목마름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라는 이 멋진 베드로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길 소원합니다.

 

3절을 읽겠습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여기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양식”입니다.

상담학자 “폴 투르니에”는 “내가 하는 일이 비록 작고 보잘 것 없어도 하나님의 일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과 함께 뛰어가고 있다”면, 비록 일등으로 달려가지 않아도 참으로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누구에게나 각기 다른 달란트가 주어졌습니다.

돈도 있고, 재능도 있고, 젊음도 있고, 시간도 있고, 아름다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스스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작은 돈, 작은 재능, 때로는 나이가 들었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라도, 나의 작은 것들이 영혼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조화를 이룰 때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작고 사소해도 하나님과 한 방향으로, 하나님과 함께 뛰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 작고 사소한 것을 통해서 무한한 일들을 펼치실 것입니다.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초대왕은 사울입니다.

사울은 외모가 잘생겼고, 능력이 있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같은 방향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가치한 인생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다릅니다.

다윗은 그의 아버지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목자였습니다.

사울이 입던 갑옷을 입혔더니, 너무 커서 입을 수도 없었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방향이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했고, 영혼이 살아있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런 다윗에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별명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보잘 것 없었던 다윗과 은혜로운 언약을 세우십니다.

 

4절을 읽겠습니다.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

다윗과 세우신 언약의 중심에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랑과 은혜의 중심에 세우신 예수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복음을 들고 민족과 열방을 향해 나가라고 명령하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주님께 순종하며 함께 가는 길이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많고 적음과는 관계없이 지금 내가 “주님과 방향이 같은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함께 뛰고 있는가?” 이 사실이 중요합니다.

주님과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면, 반드시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가장 가치 있고, 영화로운 인생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라. 주님 뜻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리라. 나의 가고 서는 것 주님 뜻에 있으니 오, 주님 나를 이끄소서.” 이 고백으로 찬양을 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