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로마서 3:27-31)
27절에 보면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 없느니라 모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자랑할 것이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구원받은 것이 우리가 의롭게 행동했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의 법”에 의해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법이 무엇입니까?
28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사람을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것을 우리가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의롭다 하셨습니까?
은혜로, 예수님을 제물 삼으심으로, 오래 참으심으로, 죄를 간과해 주심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를 우리가 어떻게 받은 것입니까?
믿음으로입니다.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에서 “인정하다”라는 말은 확신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이런 질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는다.” 것 자체는, 우리의 공로가 아닌가 하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랑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십자가 구원을 이루어 놓으심으로 우리의 믿음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 자체도 하나님의 은총이기 때문에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29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우리는 본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지니지 못한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도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초청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 우리를 세워주셨습니다.
22절을 보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아브라함, 모세, 다윗처럼 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2:8-9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구원의 은총을 진실로 믿는다면, 우리가 자랑해야 할 것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자랑하는 삶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입니까?
31절을 읽겠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으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그렇습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율법을 세우는 것은, 우리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랑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마5:18절에 보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율법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는, 원칙의 측면, 둘째는, 계명의 측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원칙적 측면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계명적 측면은 남아 있습니다.
요14:21절에 보면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 증거는 계명을 지킴으로써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 계명들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모습을 본받아 그대로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해 주셨습니까?
1. 값없이 은혜를 베푸심으로 사랑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값없이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바른 삶의 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바른 삶이 무엇인지 모른 채 어둠 속을 헤맬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사회로부터 비난 받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른 삶의 길을 보여 주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전11: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도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데 있어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이와 같이 고백할 수 있는 단계에 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제물 삼으심으로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이어 받아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우리도 제물이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모르면 일평생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도 이기적인 모습을 보리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제물이 되어 하나님의 응답이 우리에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 우리 역시 다른 사람을 위한 제물이 될 때 하나님의 능력과 응답이 삶에 더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자주 망각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살아계시는 동안 제자들은 주님의 능력을 직접 목격하며 주님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제물이 되려 하기는커녕 자신이 더 높다며 서로 다투기에 바빴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아무런 능력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 그들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 제물이 되기 시작하자 그들을 통해 주님의 능력이 드러났습니다.
3.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심으로 사랑해 주셨습니다.
고후12:12절에 보면, 바울은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죽은 사람을 살리고 병자를 고쳐야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사도 된 표징의 첫 번째로 “참는 것”을 들었습니다.
참는 것은 고통이라고 했습니다.
사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세우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사랑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사랑을 부르짖어도 고통을 감수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과거에 행한 잘못을 안경 삼아 그 사람을 평가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몇 년 전의 그는 오늘의 그가 아닙니다.
과거로 그를 판단하는 것은 오늘의 그를 과거의 그로 착각하는 것이며, 오늘의 그를 죽이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간과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인생을 벌써 끝났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람의 네 가지 원칙으로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율법을 굳게 세우는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할지라도 사람들 앞에서 바른 삶을 보이고, 다른 사람을 위한 제물이 되고, 오래 참고 깊이 참으면서 상대의 허물을 덮어주면 우리의 삶 속에서 천국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면서 매 주일 교회에 나와 열심히 찬양하고 실교를 들어도 마음에 근심과 어둠이 그치지 않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율법을 세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눅17:21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어서나 천국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짧다면 짧지만 길면 긴 이 땅에서의 삶이 죽는 순간까지 지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진정 말씀 앞에서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믿으십니까?
그럼에도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칭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정말 깨닫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율법을 굳게 세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과녁으로 삼고 하나님께서 부여주신 사람의 원칙대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천국의 권세를 세상에게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설교원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가능을 넘어서려면 (마가복음 9:17-29) (2) | 2024.09.11 |
---|---|
그런즉 이 복이 (로마서 4:9) (0) | 2024.09.10 |
하나님의 한 의(2) (로마서 3:21-26) (0) | 2024.09.05 |
하나님의 한 의 (로마서 3:21-26) (3) | 2024.09.04 |
하나님의 한 의 (로마서 3:21-26) (0) | 2024.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