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을 넘어서려면 (마가복음 9:17-29)
오늘 본문은 간질병에 들린 어린아이를 어떤 아버지가 데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와 “치유”를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제자들은 이 아이의 병을 고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으나, 고치지 못하고 절망에 빠졌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이 산 위에 세 제자와 함께 올라가셨다가 내려오셨습니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을 발견한 순간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도와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사실 간질병은 지금도 치유하기 힘든 병입니다.
그런데 이 병을 예수께서 고치시는 과정에 있어서, 우리는 인간의 불가능의 한계들을 돌파할 수 있는 그 삶의 비밀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1. 예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19절을 읽겠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한번 따라 하십시다.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여러분, 이 아버지는 난치의 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먼저 누구를 찾아 왔습니까?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때 예수님은 “변화산상”에 계셨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부탁했지만, 제자들은 그 아이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종종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도할 때, 어떤 어려움 속에 빠진 사람들이나,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 교회에 한번 나와 보세요. 하나님 의지하시면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문제에 대한 해결의 희망”을 안고, 전도를 받은 대로 교회에 나옵니다.
그러나 “그들이 교회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문제가 해결이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이 교회에 나와서 “참 하나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그들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만 제가 강조하는 것은 “교회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의 책임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책임”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제자훈련과 성경공부의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제자훈련이나 성경공부의 목적”을 단순한 “지식의 획득”에 두는 것은 “가장 나쁜 방법”으로 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고, 주님 만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성경은 교회의 주인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본질”은 단순한 건물이나 어떤 마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건물 안에 들어 왔다.”고 해서, 특별한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구성하는 구원 받은 우리 성도들이 예수 이름으로 모여 주의 이름을 높이며 예배”는, 그곳에 우리 하나님이 임재하실 줄 믿습니다.
따라서 정말 중요한 것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어떤 문제의 해결을 놓고 기도할 때, 보편적으로 갖는 기대가운데 하나는 “영적 지도자들의 도움”을 기대합니다.
저는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영적지도자인 저의 역할”은, 우리 성도들이 정말 진정한 목자이신 주님 앞으로 달려가도록, 그 주님을 만나볼 수 있도록, 주님을 의존할 수 있도록 “설교로, 교육으로, 훈련으로 강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는 길이요, 예수가 진리요, 예수가 생명이십니다.
그분만이 홀로 선한 목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 앞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때에만 우리는 불가능을 넘어서서 나 자신을 이기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놀라운 능력의 삶을 경험할 줄로 믿습니다.
2.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28절을 읽겠습니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지금 제자들은 실패한 후였기에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라고, 주님께 조용히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 아이의 병이 고쳐지지 못한 이유를, 19절에서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라고 간접적으로 대답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제자들에게 “주님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나섰을 때 “왜 예수님을 향한 어느 정도의 믿음”이 없었겠습니까?
저는 제자들에게 “어느 정도의 믿음은 다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말씀하신 것은 “믿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 현장에서만은 제자들이 주님을 향한 그들의 믿음을 충분히 나타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랬을까요?
“우리가 믿는다.”고 말할 때, 중요한 것은 “믿음”이란, 그 단어 “자체”가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실패의 원인은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보다는 제자들이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유혹에 빠진 그 순간 그들은 실패를 경험”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직 예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를 예수님 앞에 가지고 나오시길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을 도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신실하신 주님은 여러분을 확실하게 도와주실 줄을 믿습니다.
3. 기도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29절을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기도가 이런 문제를 돌파 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기사가 마태복음에도 취급되어 있습니다.
마17:21절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없음”이렇게 되어 있지요.
왜 그렇게 되어있습니까?
우리가 쓰고 있는 성경은 다 사본인데, 어떤 사본에 보면, 마17:21절 “없음” 그리고는 바깥에다가 “기도와 금식이 아니고서는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와 함께 무엇을 강조하셨습니까?
“기도”만 강조하신 것이 아니라 “금식”까지 강조하셨습니다.
금식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가장 집착하는 것, 하루를 살면서 절대로 빼놓지 않는 것, 그것은 바로 “먹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식사마저 일정기간 단절하고, 간절히 부르짖는 것을 “금식기도”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가장 간절한 형태”가 있다면, 그것은 “금식기도”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우리 성도들이 때로는 “나의 힘, 나의 지혜, 나의 생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이런 난제들을 뚫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경험하기 위해서 “금식기도의 경험”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사도행전의 초대교회는 “이상적이 교회”라고 생각하며, 지금 현대교회보다 굉장히 “훌륭한 교회”라는 상상은 하지 마십시오.
초대교회 역시 우리와 똑같은 문제들이 있었고, 우리 교회보다 건물이나 교인들 숫자도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는 “당대의 그 세계를 흔들 수 있는 영향력과 충격”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그 원인 어디에 있었습니까?
바로 “금식기도”에 있었습니다.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던 그 기도가 세계를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10여 년 전 서아프리카 선교지를 돌아보고 영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공항에 Pick up하러 유학중에 있던 후배 목사님이 나왔습니다.
그는 승용차 안에서 나에게 “목사님 런던에서 제일 먼저 보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설교의 왕자”라고 일컬어지는 “스펄젼 목사님이 사역하던 교회는 어떤 형태일까 궁금해서 그 교회가 보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그 후배 목사님과 함께 가봤습니다.
한 200명 정도 모여 예배를 드렸는데, 찬양도 힘이 없었고, 무력해진 회중과 설교도 큰 감동이 되지 못해 저는 슬펐습니다.
한때 6,000명 이상의 회중들이 꽉꽉 자리를 채우던 이 교회, 그리고 많이 모일 때는 10,000명 이상씩, 어떤 때는 20,000명까지 모여서 성령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영광으로 불타오르던 이 교회였습니다.
스펄젼의 전기에 보면, 사람들이 교회를 방문하면 “스펄젼 목사님은 항상 방문객을 데리고 교회 아래층으로 데리고 가서 기도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 주며 제 목회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서 기도하는 이 성도들입니다. 그들이 나의 힘이요, 능력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 교회의 발전소입니다. 저들의 기도 때문에 오늘 우리의 교회는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행1:8절을 읽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모두 “성령의 역사하심 속에서 구원을 받았고, 지금 하나님의 자녀로 주님의 임재하심 속에서 예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보혜사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전심으로 기도하여 전지전능하신 주님을 경험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풍성히 맺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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