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로마서 5:12-21)

Johnangel 2024. 11. 29. 11:09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로마서 5:12-21)

                                              

우리는 지난 시간 롬5:1-4절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그 권리와 의무는, 첫째는 하나님의 화평을 누리는 삶, 둘째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삶, 셋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 넷째는 환난 가운데 소망을 완성하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까?

5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속에 차고 넘침으로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랑이란 어떤 사랑일까요?

6절을 읽겠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억조차 못할 때, 알 수도 없을 때,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더 나아가 8절을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라고 했고, 10절에서는 “곧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대신 죽어 주신 사랑으로 우리의 심령을 채워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본문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의” 다시 말해서, 예수그리스도로부터 비롯되는 “구원의 필요성과 유일성”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12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여기에서 말하는 “한 사람”은, 바로 “아담”인데, 그 아담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이 말씀을 수긍할 수 있습니까?

아담과 나는 특별한 상관이 없는 듯한데 “왜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고, 성경은 단정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죄인의 피” 때문입니다.

 

첫 번째 사람, 아담이 죄를 지어 그 피가 죄로 오염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죄인으로 태어나 살다가 죄인으로 죽습니다.

내가 낳은 자녀가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그 자녀들도 또한 죄인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통해 죄인의 피를 받아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13절을 읽겠습니다.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법을 주시기 전에는, 우리가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인식하지 못했다.”고 해서, 죄인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죄인의 피 때문입니다.

 

14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하였으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여기에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라고 했는데, 아담은 하나님의 법이 주어지기 전의 사람이고, 모세는 하나님의 법이 주어진 이후의 사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법이 주어지기 전이나 주어진 이후에나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이며, 죄인은 반드시 죽을 수밖에 없으므로 사망이 왕 노릇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모두 다 죄인입니다.

단지 “도덕적인 죄인이냐? 부유한 죄인이냐? 가난한 죄인이냐? 지성적인 죄인이냐? 무지한 죄인이냐”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14절 마지막 부분에서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오실 자”란 누구를 말씀하는 것일까요?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성경은 아담을 첫 번째 사람, 그리고 예수를 두 번째 아담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대표원리”라고 합니다.

“대표원리”는,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표하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의 행위가 나머지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첫 번째 사람인, 아담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피를 타고난 사람은 모두 다 죄인입니다.

 

이에 반해, 예수그리스도의 “대표원리”는, 그 영향이 전혀 다릅니다.

 

15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대표원리”는, 아담의 “대표원리”와는 다르게, 예수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새생명을 얻고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아담의 혈통이 하나님의 자녀로 바뀜으로서, 가능한 것입니다.

 

요1:12-13절을 읽겠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신분이 바뀌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절대적으로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우월한 삶을 살아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17-18절을 읽겠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은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예수그리스도를 내가 구주로 믿고 의지하면, 그분의 생명을 이어받아 새생명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아담의 혈통으로 죽을 수밖에 없던 존재가, 예수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께서 우리의 생명을 살리시는 유일한 그리스도가 되셨습니까?

19절을 읽겠습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여기 “한사람이 순종하심으로”라는 것은, 히9:22절의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즉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말합니다.

아담으로부터 이어받은 오염된 피로,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인들에게, 주님께서 당신의 생명의 피를 부어 주심으로, 영적으로 의인의 혈통으로 거듭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을 위해 오염되지 않은 피를 흘리고 부어주셨다.”는 것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유일성”이 드러납니다.

 

20절을 읽겠습니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 말씀은 “하나님의 법이 주어져 죄를 더 알게 되었지만,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하나님의 은총이 더욱 풍성해졌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모를 때는, 나 자신을 무척이나 의인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서 보니까, 하나님의 법에 조금이라도 저촉되지 않는 면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어떤 법에 비추어보더라도, 나는 죄인이기 때문에 이대로라면 나는 죽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 앞에서,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 많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나를 위해 당신의 피를 흘려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알면 알수록 내 죄가 크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내 죄가 크다는 것을 인식하면, 인식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더 놀랍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존 뉴턴은 자신이 지은 찬송가 305잘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것은 뉴턴 한 사람만의 고백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백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21절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우리로 하여금 그저 이 땅에서 기름지고, 윤택하게, 살아가기 위한 생명에 이르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하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곰곰 생각해 보면, 사실 “영생”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감격적인 말입니다.

수많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수명이 4-5년만 더 보장되어도 말할 수 없이 기뻐합니다.

그런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주님 앞에서 즐거워하지 못할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라면, 진실로 주님을 섬기고,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그리스도의 뒤를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 시간부터, 하나님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며,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를 진다면,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열매가 우리의 삶 속에서, 아름답게 맺힐 것입니다.

그때에만 비로소 우리 삶에 진정한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고,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일깨우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15:16절을 읽겠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