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 채종석선교사
사람은 소망이라는 단어가 있을 때,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사람은 깊은 절망이라는 단어가 있을 때,
살아갈 힘을 잃게 된다.
그래서 소망은 인간의 살아갈 힘이며
소망은 인간의 행복과 연관된다.
사람은 소망이라는 단어가 있을 때,
자기를 의지한다.
사람은 깊은 절망이라는 단어가 있을 때,
자기 외부를 의지한다.
그래서 소망은 인간의 관계이며
소망은 인간의 의지대상과 연관된다.
그러나,
깊은 절망 속으로 빨려 들어갈 때,
자기와 타인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특히, 죽음 앞에서는
이 땅의 소망과
이 땅의 의지대상과는 연관이 없어진다.
신이라는 자기와 타인 외부에
소망과 의지대상이 있음을 발견한다.
깊은 절망 속에서만 만나는
신이라는 소망과 의지대상을
깊은 절망을 접하지 않더라도
만나면 행복한 삶이 되었을텐데.
“여호와여! 내가 깊은 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시편130:1,)
그래도 늦게라도 그 행복을 찾는 사람이 있다.
깊은 절망을 맞이할 때,
자기와 타인을 찾기보다
자기의 소망이 되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말이다.
왜 인간은 깊은 절망 속에서
하나님이 더 잘 보일까?
왜 인간은 자기와 타인이 힘이 되지 못할 때,
하나님이 더 잘 보일까?
그래도 깊은 절망 속에서
하나님이 보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늦게 행복을 찾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그동안 잃었던
자기의 소망에 대한 간구가 아니라
그동안 잃었던
하나님의 소망에 대한 깊은 회개이다.
깊은 절망 속에서
깊은 회개의 고백이 나온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반응은 행복이다.
인간에게 행복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시작된다.
다윗은 인간의 행복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시편32)
진정한 행복은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지 못했던
우리들의 죄를 고백할 때 입혀진다.
죄라는 담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고 있을 때,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하나님께 잃은 소망과 깊은 절망을
전달할 수가 없다.
회개를 통해 우리들의 죄가 고백될 때,
하나님께서 막힌 담을 허시고
우리의 잃은 소망과 깊은 절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신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할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시편130:2~3)
인간이 행복해질 때가 언제인가?
하나님께서 죄 없다고 인정하시므로
막혔던 담이 허물어질 때
깊은 절망에서 진정한 소망으로의
행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이
인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실 때
인간은 가장 행복한 몸짓을 하게 된다.
이 행복한 몸짓을 경험한 사람들은
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 서게 된다.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회개라는 행복을 위한 몸짓을 한다.
말씀 앞에 보이는 자기의 죄를 발견하고
그 죄를 회개하는 일이
소망이며 행복의 시작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편130:5,6)
오늘 이 아침에도
행복한 몸짓을 시작하라는
성령님의 음성이 행복하게 들린다.
“종석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저가 종석이 너를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리로다.”(시편130:8)
죄는 소망을 갉아먹는
깊은 절망의 몸짓이다.
회개는 소망을 빛나게 하는
행복한 몸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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