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자 / 채종석선교사
탕자는 승리했다.
모든 것을 다 탕진하고 돌아온
자식을 위해서 잔치를 준비한
아버지 때문에 승리했다.
누가 봐도, 자기가 봐도
이웃들에게 질타를 당하고
아버지에게 버림을 당할 탕자가
아버지의 인정해 주심 때문에
당당하게 이웃을 만날 수 있었다.
당당하게 형을 만날 수 있었다.
당당하게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의 은혜 때문에
아버지의 자녀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이스라엘이 이제 말한다.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도다.”(시편129:1)
개를 따라다니다가 화난 개 때문에
넘어진 어린 아들이 아버지 품에 안겼다.
그러더니 개에게 손을 들어 승리를 선포하며
개에게 소리를 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개들을 따라다니다가
개 때문에 포로생활을 한 후,
다시 하나님 품에 들어오게 되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진 이스라엘이
개와 같은 이방인들의 우상들을 따르다가
그 우상들 때문에 넘어져서
이방 땅의 포로로 잡혀갔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
그들을 다시 이스라엘로 부르셨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개와 같이 우상을 섬기는 백성들에게
큰 소리를 치고 있다.
자기들을 다시 안고 계신
승리하신 하나님 품에서 큰 소리를 치고 있다.
“그들이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니,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시편129:2)
포로생활을 그렇게 오래 해놓고서
자기들을 이기지 못했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상숭배를 하였던 어린 자기들의 신앙보다
자기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자기들을 다시 품에 안아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기셨기에
자기들도 이겼다고 소리치고 있다.
부족한 아들이었지만,
전능하신 아버지께서
용서해 주시고 안아 주실 때,
아들은 아버지로 인해 승리한 것이다.
탕자가 밖에서
얻은 상처들이 많이 있을지라도
아버지께서 이웃들과 가족들 앞에서
안아 주시고 인정해 주셨기에
어느 누구도 그를 무시하지 못한 것처럼.
“밭 가는 자들이 내 등을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도다. 무른 시온을 미워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여 물러갈지어다.”(시편129:3~5)
탕자처럼
이스라엘의 몸에 남아있는 상처들은
아버지 밖에 있을 때,
세상으로부터 받은 멸시와 고난들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아픈 상처의 흔적들이
패배를 의미하는 것 같지만
이스라엘은 승리했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에게 수치를 주시며
아버지께서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누가보면 아들이 패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버지가 아들의 원수를 물리치시고
아들을 안아 주셨기 때문에
아들은 승리한 것이다.
“그들은 지붕의 풀과 같을지어다. 그것은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 이런 것은 베는 자의 손과 묶는 자의 품에 차지 아니하나니”(시편129:6,7)
아버지께서는 세상의 화려함은
지붕의 풀과 같고
자라기 전에 마르고,
베는 자의 손과 묶는 자의 품에
차지 아니할 것이라고
아들에게 늘 가르치셨다.
그런데 왜 아들은….
그때 아버지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을까?
이게 우리들의 삶이다.
세상의 화려함을 가지면
마르지 않을 것 같고,
손에 잡힐 것 같고,
풍성한 느낌을 받을 것 같아서
떠나는 불순종의 삶이
죄인된 우리들의 모습이다.
“지나가는 자들도 여호와의 복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거나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축복한다 하지 아니하느니라.”(시편129:8)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들이 보기에도
가면 안되는 세상의 길에
하나님의 자녀됨에도 불구하고
그 세상의 길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들도
가면 안되는 세상의 길로
걸어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 화려한 세상의 길로 걸어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다.
탕자가 걸어간 길처럼.
이스라엘이 걸어간 길처럼.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회개라는 축복이 있다.
세상의 길에서 얻은 아픔과 상처로
패배자가 된 것 같았지만,
회개할 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은혜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다.
패배자 같으나
다시 세상을 향해서
큰 소리칠 수 있는 이유는
우리를 다시 안아주신
승리자, 아버지 하나님께서 세상보다
크시기 때문이다.
밖에서 망나니였던 내가
하나님 품에 들어와서
세상을 향해 뻔뻔하게
소리칠 수 있는 이유는
패배자였던 나의 모습 때문이 아니라,
늘 승리자이신 아버지가
나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고
그분이 나를 다시 안아 주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승리자이시기에
아들도 승리자가 되는 곳,
이곳에 우리가 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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