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하나님 가족으로서의 교회 (에베소서 3:1~13)

Johnangel 2022. 6. 6. 07:47

하나님 가족으로서의 교회 (에베소서 3:1~13)

 

영국교회에서 사람들을 대상으로, 종교의식에 관한 설문 조사를 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설문조사 항목 가운데, 한 질문이 “당신은 어떤 교회를 원하십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숫자의 사람들이, 조사자들이 전혀 기대하지 않는 대답을 해서, 아주 당황했던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교회를 원하십니까?

마음속으로 대답해 보세요.

당신은 어떤 교회를 원하십니까?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빨간 벽돌교회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교인이나 비교인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교회에 대한 이해가, 성경의 이해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결코 빌딩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건물은 필요하지만, 교회의 본질은 건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에 다니고 있고, 또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리교회에 나와야 한다고, 전도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란 무엇입니까?

 

오늘은 우리교회설립주일을 맞이한, 아주 뜻깊은 주일입니다.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이 편지를, 로마감옥에서 썼기 때문에, 에베소서를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이 에베소서를 쓰고 있던 당시의 세상은, 로마제국의 영광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던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에베소교회가 로마제국의 핍박에, 무릎 꿇는 교회가 아니라, 복음의 영광을 드러내는, 영광스러운 에베소교회가 되기를, 소원하면서,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바울이 기대한 교회란 어떤 교회였을까요?

 

1. 깨달음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입니다.

 

3-4절을 읽겠습니다.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바울이 여기에서 “깨달았다.”고, 고백하는 이 비밀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일차적으로 교회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교회를 가리켜서 깨달음의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가리켜 “쌍둥이 서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를 읽다가 이해가 안 될 때, 골로새서를 읽으면 “아! 이런 뜻이었구나!”하며, 깨닫게 되고, 또한 골로새서를 읽다가 잘 깨달아지지 않을 때는, 에베소서를 읽으면 서로 보완이 되어, 그 뜻이 스스로 자명하게 드러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도 비밀얘기를 많이 하지만, 골로새서에서도 비밀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1:26-27절을 읽겠습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다시 말해서 “주님이 내 안에 살게 된 것, 그래서 내가 구원을 체험한 사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사실이 바로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밀이라는, 단어가 헬라어로는 “무스테리온”인데, “계속 숨겨져야 할 비밀이 아니라, 자랑하고 싶은 비밀”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람들에게 이건 비밀인데” 그러면서 얘기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이 “무스테리온”입니다.

그렇습니다.

나타난 비밀, 공공연한 비밀, 이제는 당연히 나타나야 되고, 자랑하고 싶은 그런 비밀이 뭐냐 하면, 예수님이 내 구주가 되신 것, 내가 구원을 받은 것,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것을, 바울은 지금 여기에서 “놀라운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복음을 듣고 복음을 깨달았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1:6절에 보면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복음을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자기가 복음을 듣고 보니까 “아!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셨구나! 나 같은 죄인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고, 용서하시고, 용납하시고, 내 인생을 변화시켜 주셨구나! 하나님의 은혜는 참 놀랍구나! 하고, 고백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이것은 복음을 들었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우리교회에 나오신다고 해서, 모두 다 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교회에는 새가족반과 같은 기초적인 성경공부반 과정들이 준비되어있는데, 적어도 이 새가족반을 통과한 사람들만을, 우리교회에서 정교인으로 인정합니다.

 

물론 “그 과정을 통과한다.”고 해서,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진짜 교인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란,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의 공동체가 교회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2. 함께 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입니다.

 

6절을 읽겠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여기에서 “함께”라는, 단어가 반복하여 강조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깨닫게 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상속한 바를 함께 누릴 수 있는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공동체의 지체가 되고, 함께 하나님의 그 놀랍고 위대한 약속들에 대해서 참여하고 누릴 수 있는 축복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방인들이 “자기들과 함께 복음을 듣고,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잘못된 선민의식에 세뇌를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좋은 선민의식은, 반드시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선민의식이란, “나만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이고 너희들은 아니다.”라고, 생각하면서, 선을 긋고 담을 쌓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와 같이 취급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잘못된 선민의식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런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주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과 이방인 사이의 견고한 벽이 무너지고, 그들이 한 교회 안에서 같은 지체가 되는, 놀라운 사실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의 하반부 전체에서, 바울은 바로 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2:14-15절을 읽겠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여러분,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유대인과 이방인이 마치 한사람이 되듯이 우리가 예수 안에서 “한 공동체가 되어 화평하게 하셨다”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가족, 하나님의 식구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께 묻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나와서, 우리고현교회 교우들이 나의 가족이 된 것을 느끼십니까?

 

우리가 교회공동체에서 하나님의 가족, 식구된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죄성으로 말미암아, 잘못된 편견과 교우관계의 상처들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함께 하는 공동체, 가족 됨을 체험할 수가 있을까요?

어떤 분들은 우리교회와 같이 좀 큰 교회가 되면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학자에 따라서는, 초대예루살렘교회가 약 3만 명 정도는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공동체의식, 즉 가족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교회가 적지 않은 숫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공동체의식, 가족의식을 갖고, 서로 사랑하면서, 전도하여 그 시대를 뒤집어엎을 수 있었던, 그런 놀라운 역동성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성전에서만 모이지 않고, 성전에서 흩어지면, 소그룹으로, 적은 단위로 집에서 모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2:46절을 읽겠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적은 숫자가 소그룹으로, 집에서 모여 서로 자기들의 마음을 열고, 자신의 고통, 자신의 아픔, 자신의 답답함, 자신의 눈물들을 서로 이야기하고, 나누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다 보면,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셀 교회 전략가들은, 초대예루살렘교회가 그토록 정말 놀라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비밀을, 한마디로 이렇게 말합니다.

 

“초대예루살렘교회는 두 날개로 날고 있었던 교회였다.”

 

여기에서 두 날개란, 하나는, 성전에서 모이는 큰 모임의 축제요, 다른 하나는, 집에서 모이는 소그룹을 통한 모임을 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정말 그런 일들을 시작할 수가 있을까요?

제가 두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새가족반 교육”을 받으시고, 공적예배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으시고, 고현교회에 대한 소속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목장모임에서, 서로의 슬픔을 나누고, 기쁨을 나누고, 성공을 나누고, 실패를 나누고, 내 좌절을 나누고, 고통을 나누며,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진정한 공동체를 거기서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오래 전 이 땅에 세워진 분명한 목적은, 우리 먼저 믿은 성도들이 사랑과 섬김을 통해, 영생의 삶을 보여주고, 사람들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고, 그것을 더 풍성히 누리는 복음을 전해 주는데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생명이요, 소망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 복음을 사모하며, 듣고, 깨닫고, 믿고, 함께하는 하나님의 가족이요, 식구요, 교회공동체로서, 주안에서 더욱 강력한 성령 충만한 자들이 되어, 지역민을 살리고, 우리민족을 살리고, 세계열방을 살리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목사와 더불어 목회비전에 공유하며, 동역하는 모든 우리 교회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