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광야 교회의 완악한 회중 (사도행전 7:39~40)

Johnangel 2022. 7. 21. 10:38

광야 교회의 완악한 회중 (사도행전 7:39~40)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였지만, 광야교회의 회중은 “완악하고 강퍅한 자들”이었습니다.

여기 완악하고 강퍅하다라는 뜻은, “성질이 억세고 사납고 고집스럽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광야교회의 회중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일부러 마음 문을 닫았습니다.

 

신명기 15장에는 완악하다.”는 뜻을 풀어 설명한 예가 나옵니다.

15:7-9절을 읽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삼가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여기 면제년이란, 7년마다 한 번씩 빚을 탕감해 주는 안식년을 말합니다.

따라서 면제년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음 면제년까지 긴 시간이 남았을 때는, 돈을 꾸어주어도 돌려받을 가능성이 좀 있습니다.

 

그런데 면제년이 가까운 시점이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까?

돈을 꾸어 간 사람이 배짱을 부리며, 잘 갚지 않다가 면제년을 악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꾸어주는 사람은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곧 면제년인데, 내가 돈을 꾸어주면 심중팔구 떼이겠구나?”하는, 마음이 들어 당연히 도와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자꾸 마음을 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완악이요, 강팍입니다.

여기에 보면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꾸 좋지 않은 마음을 품어서, 자기 마음을 악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손에다 비유하면, 손을 자꾸 펴야 하는데, 움켜쥐는 이것을 일컬어 “완악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광야교회의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완악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불신앙에 악심을 품어 완악했고, 죄의 유혹으로 인해 마음이 완고해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이끈 지도자 모세에게 복종하는 것이 정상입니까?

불복하는 것이 정상입니까?

그런데 광야교회 교인들은, 복종하는 것이 마땅한 줄 알면서도, 복종하지 아니하고 거절했습니다.

 

39절을 읽겠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하지 아니하고자 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향하여”

 

그렇습니다.

이것은 고의적입니다.

그들이 몰라서 복종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일부러 잘 알면서도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일부러, 고의적으로, 마음을 자꾸 닫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광야교회 성도들은, 결국 성령을 거역하는 완악한 교인들이 되어버렸습니다.

51절을 읽겠습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리는도다.”

 

우리의 경우에도 구제문제에 완악해질 수 있습니다.

처음 생각에는 “구제 좀 해야겠다. 이웃집이 저렇게 고생하는데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줘야겠다.” 하다가도, 하룻밤 자고나면 “어거 주고 나면 내가 꼭 써야 할 때 못 쓰는데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에 마음을 접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꾸 거절하다보면, 마음이 닫혀버립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가난한 사람들 도와줘도 끝이 없어. 밑도 끝도 없이 항상 도와줘야하고 귀찮아 죽겠어. 한번 도와주면 자꾸 또 와. 아예 모르는 체 하자.”며, 마음이 완악해져 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죄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엔 누가 옆에서 “당신 그러면 안 돼요. 회개하셔야죠.”할 때는 “아~ 그래야죠. 회개해야죠.”하고 수긍합니다.

그런데 결단하지 못하고 자꾸 넘어가다가, 또 누군가가 “예수 믿는다면서 그런 것 하나 해결 안하고 그냥 넘어가면 안 됩니다.”하고, 재차 충고가 반복되면, 마음이 불쾌해지고, 안 좋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는 뭐 해결 다 했나?”하면서, 자기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립니다.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닫습니다.

그러다가 때가 지나고 나면, 진짜 회개하지 못하고, 또한 회개하지 않은 것을 합리화하고, 변명하는 완악한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결국 완악한 마음은, 불순종이라는 자식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그랬습니다.

광야교회 회중들은, 바른 교훈을 배워도, 고의적으로 마음을 닫고, 불손종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광야교회 회중들은, 왜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불순종하는 완악함을 갖게 되었을까요?

영적교육의 부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광야에서 쓰러져간 60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 만 20세 이상인 성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로 사는 동안, 제대로 된 신앙교육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광야에 나와 교회를 이루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에 잘 순종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지만 출애굽 할 당시 20세 이하였던, 사람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는, 40년 광야생활 동안 신앙교육을 철저히 받았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요단 강가에서 여호수아를 따라나섰을 때, 그들은 얼마나 멋진 군대가 되었습니까?

그들은 철저히 순종했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요단강으로 들어가라면 두말없이 들어가고, 여리고성을 일곱 번 돌라면 두말없이 돌았습니다.

얼마나 철저히 순종하는 사람들이었는지 모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광야에서 제대로 신앙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출애굽 2세대는, 광야에서 자신의 부모들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다가 불 뱀에게 물려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전염병으로 한순간 몇 천 명이 쓰러지는 비극도 보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죽은 그들을 장례지내는 모세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면서, 산교육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출애굽했던 1세대와는 달리, 2세대들의 마음은 완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마음의 완악함을 피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속 반복하여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완악해지기 쉬운 우리의 마음의 쓴 뿌리를 말씀으로, 자꾸 뽑아 내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이 얼마나 더럽고 추합니까?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교회가 왜 이렇게 썩은 고목처럼, 형식만 갖추고, 그야말로 생동감 있는 역사들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그 이유는 “모세와 같은 온유한 지도자들이 없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교인들에게 신앙교육과 영적교육”이, 부재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스스로 완악해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합시다.

 

그래서 깨질 것은 깨지고, 다듬어질 것은 다듬어지고, 채워져야 할 것은 채워져서, 오늘날 한국교회와 우리 교회가 광야교회가 되지 않도록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