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교회를 위해 교회를 흩으시다 (사도행전 8:1~3)

Johnangel 2022. 8. 18. 09:32

교회를 위해 교회를 흩으시다 (사도행전 8:1~3)

 

사도행전 8장은 교회사의 신기원이 담긴 역사적인 페이지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1:8절에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고, 복음이 전파되는 순서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첫 단계인 “예루살렘”의 복음화는, 사도행전 7장에서 마무리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8장부터는, 제2단계인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증거 되는 새로운 기원을 맞게 됩니다.

이것은 복음전도의 무대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와 사마리아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천사들에게 맡기지 않으셨고, 어떤 위대한 영물이나 그룹에게도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먼저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의 입을 통해서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그 외에 다른 길은 전혀 없습니다.

 

결국 복음은 먼저 받은 사람이, 그 복음을 전할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복음을 가장 먼저 들은 사람들은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입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 안에서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육신의 정욕으로 살던 사람들이 성령의 소욕으로 사는 거룩한 사람들로 바뀌었습니다.

성품이 바뀌었습니다.

성격도 바뀌었습니다.

생활도 바뀌었습니다.

인생의 목적과 의미도 이전과는 달라졌습니다.

예수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먼저 받은 예루살렘교회에는, 그만큼 무거운 책임이 지워졌습니다.

그것은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을 향해 복음을 들고 가야할 책임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가족 중에 가장 먼저 복음을 받았습니까?

“그만큼 무거운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입을 통해 예수가 증거 되지 아니하면, 우리 부모와 형제, 그리고 배우자와 자녀는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교회 성도들이 먼저 복음을 받고 하나님 말씀을 배웠다면, 그만큼 책임이 무겁습니다.

왜냐하면 소돔 같은 지역을 구원해야 할 책임이 바로 그 교회 성도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고현교회 성도들 역시 복음을 받았기 때문에, 익산지역의 사람들을 구원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도 먼저 받았기 때문에, 그만큼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런 예루살렘교회에 스데반의 순교와 함께 무서운 핍박이 가해졌습니다.

이 핍박은, 비록 짧은 기간에 자행되었지만, 얼마나 핍박이 거세었는지, 갑자기 휘몰아치는 폭풍우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조그마한 핍박이 아니라 “큰 핍박”이었습니다.

 

3절에서 잔멸할 새라는 표현을 보면,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사울이라는 젊은 사람이 앞장서서, 교회를 뿌리째 뽑아버리려고 달려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울과 그를 따르는 자들은, 가가호호 수색하며, 맹렬한 핍박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교회의 핍박은 길게 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핍박에 담긴 하나님의 뜻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교회에 임한 핍박 이면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과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교회를 흩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3-4절을 읽겠습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핍박 때문에 일부는 옥에 끌려들어가 고생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흩어져서 사방에 두루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에게 핍박을 받도록 하여 복음을 들고 흩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가 흩어진 이 일을 두고, 어떤 성경학자들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은혜 받고 예수를 먼저 믿었으면 그만큼 전해야 할 책임이 있는데도, 날마다 성도들끼리 모여 떡을 떼고 기도하며 흩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핍박이라는 간단한 도구를 통해 흩으신 것이다”

 

그러나 이 해석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 과연 예루살렘교회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서까지 그렇게 흩어지지 않으려고 했을까요?

 

또한 예루살렘교회 교인들이 사도들 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성령이 특별한 기름부음을 받아 예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이 복음을 땅 끝까지 증거 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혹은 복음 증거 하기 싫어서, 그렇게 끝까지 버티고 있었을까요?

 

저는 “예루살렘교회 교인들이 핍박이라는 무서운 매를 맞을 때까지 그들이 그렇게 불순종했다.”는 해석은,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루살렘교회 신자들은 복음을 증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 말씀을 담대하게 증거 하기를 원했습니까?

단지 그들은 아직도 예루살렘에 복음이 더 증거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들은 아직도 사마리아나 유대 전체로 나아갈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들도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때를 맞추기가 어떤 때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불같은 마음은 있지만, 그 적당한 때는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계시를 통해 움직이게 하실지, 어떤 방법으로 가게 될지는 잘 모릅니다.

 

예루살렘교인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흩어지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억지로 흩으셨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충성스러운 그들을 흩어 놓는 방법으로 핍박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신 것뿐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다 내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흩어지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서로 “너는 사마리아로 가라.” “너는 유대로 가라.” 이렇게 의논했다면, 시간이 얼마나 많이 걸렸겠습니까?

그래서 핍박은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핍박은 폭탄처럼 한번 터뜨리면, 싹 흩어져 버릴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발을 뗀 예루살렘교인들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유대, 그리고 땅 끝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11:19절을 읽겠습니다.

“그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스데반의 사건 뒤에 일어난 환난으로 사람들이 흩어져 어디까지 갔습니까?

사마리아에만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니게, 그브로, 안디옥까지 갔습니다.

구브로라고 하는 곳은 지금의 터키 아래에 있는 큰 섬입니다.

이방 지역에까지 간 것입니다.

안디옥은 이방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던 곳으로 이곳 역시 이방 땅입니다.

사마리아도 아니고, 유대나라도 아닌 저 바깥 지역까지, 사람들이 내려가서 복음을 증거 한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흩어졌기에 이렇게 멀리까지 복음이 전파되었을까요?

가만히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예루살렘에 있는 감옥이 얼마나 컸는지는 모르지만 몇 백 명 들어가면 모든 감옥이 다 차고 말았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예수 믿는 사람이 몇 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행2:40절에서 3,000명, 행4:4절에서는 5,000명이 믿게 되었으니 최소한 8,000명입니다.

 

이 숫자는 남자들만 헤아린 것이기 때문에 그 부인들까지 헤아린다면 1만 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싹 흩어졌으니, 복음이 얼마나 세차게 퍼져 나갔을까요?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가 막히게 역사하셨습니다.

 

핍박은 우리에게 대단히 두려운 것이지만, 하나님께는 더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한 통로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들 수 있습니다.

몽골족 징기스칸이 로마제국을 침범했을 때, 포로로 잡혀간 많은 여자들이 그들의 노예와 첩이 되었지만, 몽골족과 살면서, 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래서 그들 때문에 심지어 몽골까지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또 한가지 예를 들면, 로마교회 즉 캐톨릭교회의 핍박을 견디다 못한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서 오늘날 세계선교의 주역인 미국을 세웠습니다.

이것은 다 핍박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때, 정치적인 핍박, 종교적인 핍박 때문에, 쫓기고 쫓겨서 만주로 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만주에 교회가 얼마나 많습니까?

모두 핍박 때문에, 흘러들어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은 너무 잔인하시다. 어떻게 이런 방법을 통해 복음을 증거 하려고 하실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우리와 차원이 다른 지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민들레 씨앗이 온 사방에 흩어져 싹을 틔우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런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물론 핍박은 어디까지나 사탄의 역사입니다.

핍박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는 하지만, 핍박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세력은 사탄입니다.

그래서 핍박이 시작될 때는, 사탄이 교회를 이기는 것 같습니다.

스데반을 죽이고, 교회를 자멸하기 위해 집집마다 뒤져서 예수 믿는 자를 다 끌어내고 교회를 흩어버릴 때에는, 사탄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사울이 승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지혜를 사탄이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상황이 완전히 역전됩니다.

사탄은 교회를 없애려고 작정하고 핍박했지만, 엉뚱하게도 교회는 온 사방으로 흩어져 새로운 교회를 낳았습니다.

예루살렘에만 있던 교회가 온 사방으로 퍼졌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큰 뜻을 성취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귀는 그 뜻을 망치려고 달려들었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었습니다.

 

또 앞장서서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이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복음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사탄은 예수를 죽이면 그야말로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 한 분을 죽임으로 온 인류가 구원받은 길이 열렸으니, 사탄의 일이 제대로 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많은 순교자의 피가 뿌려지면 교회가 뿌리째 뽑힐 줄 알았습니다만, 엉뚱하게 복음의 역사는 더욱 불과 같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복음 증거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아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들을 보십시오.

집도, 생업도, 포기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나그네가 된 사람들 말입니다.

그들은 세상적으로 보면, 완전히 패배자가 된 것 같지만, 가는 곳마다 복음 전하는 일에 열중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복음 증거 하는 일을 최우선에 두어야합니다.

세상적으로는 성공했지만 행복하지 못하고, 몸은 건강하지만 마음이 병들어 있고, 돈은 벌었지만 삶이 공허한 사람들, 공부는 많이 했는데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들, 겉으로는 허세를 부리지만 속으로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사람들, 죽음 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하는 사람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기 원하십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복음이 증인이 되어야합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예수그리스도를 몰라서 영원한 멸망의 자리로 떨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건져 올리기 위함입니다.

초대교회성도들은 핍박으로 흩어져 나그네가 되었어도, 복음 전하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12:24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수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유다 각지는 물론이고, 구브로와 안디옥에서도 풍성한 열매를 맺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