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마태복음 6:9~13)

Johnangel 2022. 8. 20. 10:17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마태복음 6:9~13)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주의 나라가 임하시며, 주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를 먼저 하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우리에게 급한 기도가 있어도, 하나님을 위한 기도, 하나님께 집중하는 기도부터, 앞세우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는 기도를 보면, 별로 호감이 안 가는 기도들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여러분, 일용할 양식이 무엇입니까?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아침에 나가 만나를 거두어, 하루 종일 그것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자기가 하고 싶은 요리를 해서 먹고, 저녁이 되면 없어집니다.

만약에 아까워서 남겨두면, 벌레가 먹어 못쓰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다음날 아침에, 또 들판에 나가서 만나를 거두어야 됩니다.

이것이 일용할 양식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내가 먼저 용서하오니 나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그렇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나의 육신적인 건강, 세상의 평안을 위해서, 안전을 위해서, 항상 기도를 앞세우지만, 주님은 영혼의 건강, 영혼의 안전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기도문의 전체 흐름입니다.

따라서 주님이 요구하시는 귀한 진리들을 마음에 담고 적용하면, 우리의 기도는 훨씬 더 풍성해지고, 놀라운 하늘의 축복을 끌어내리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1.예수님은 기도란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학자의 견해를 보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실 때까지 유대나라에서는 아무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사람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적으로 구약시대에 하나님을 아버지하고 부른다면, 그것은 신성 모독죄로 다루어지기 때문에, 엄두도 못 내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에 오시자마자, 처음부터 항상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1:12절을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고, 4:6절에 보면,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죽은 자도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하늘의 스랍들과 하늘의 천사들도 그 앞에서는,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면, 감히 그 앞에 설 수가 없는 영광의 빛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우리에게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누구 때문입니까?

예수님 때문에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권세이며,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7:9절에 보면, 기가 막힌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겠느냐. 너희 중에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우리가 상식적으로 따지면, 아무리 악한 아버지라도, 자식이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리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말씀입니다.

11절을 보면 “너희가 악한 인간이 아니냐? 악한 아버지가 아니냐? 급하면 자식도 버리는 악한자가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왜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시는지 아십니까?

아버지는 항상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1년을 기도하고, 3년을 기도하고, 5년을 기도해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저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좋은 것만 주시기 때문에, 응답을 안 하시는 것도, 좋은 대답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반드시 좋은 것을 반드시 주신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시는 것은, 기도하는 자는 어린아이의 심정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린아이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가식이 없습니다.

사람을 떠보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는 아빠한테 뭐 달라고 하면, 단순합니다.

순수합니다.

신뢰합니다.

그래서 아빠가 그저 빙긋이 웃기만 해도, 이미 아빠는 주실 줄 알고 좋아서 펄펄 뜁니다.

이것이 어린애의 심정입니다.

 

2.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을, 항상 먼저 앞세우는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의, 대우를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절대로 모욕당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존귀와 찬양과 경배가, 그 거룩하신 이름에 올려져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세상을 보십시오.

여기저기에서 얼마나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멸시하며, 짓밟는 악한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우리가 무슨 기도를 해야 할까요?

우리는 “하나님, 부디 나 하나만을 통해서라도, 주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고,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이런 기도가 우리 마음에서 나와야합니다.

 

여러분, 이것만큼 소중한 기도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기도가 우리 가슴에서 폭포처럼, 쏟아져 나와야 합니다.

 

주기도문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첫마디가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일생동안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그 마음을 다스리는 거룩한 백성들이, 이 땅을 가득히 메우기를 소망하면서,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40일 동안 만나 예수님의 비전을 나눌 때도, 그 비전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이만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는, 이것은 예수님께서 마음에 평생 간직하던 비전이요, 오늘도 하나님 나라에서 그가 기도하고 있는 제목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을 위해서, 먼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물론 이 세상나라가 잘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몇 십 년은 이 세상에서 살아야 되고, 우리의 후손들이 계속 살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계평화를 위하여. 우리는 밤낮 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후손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여. 주의 뜻이 이루어져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이 기도를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세상을 위해 아무리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은 어두움의 권세 아래 있고, 실패의 공포, 질병의 공포, 죽음의 공포, 걱정근심은,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문명은, 계속하여 발전할 것입니다.

IT 산업도, 유전공학도, 생명공학도, 계속하여 발전할 것입니다.

아마 나중에는, 달나라 여행을 우습게 생각 할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120살까지 사는 것을, 상식으로 생각하는 날이 올지 모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어두움의 권세가 먹구름처럼, 사람들의 심령을 덮어 더 이상 생명의 빛을, 발견하기가 어려운 죽음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역사의 종말을 예언하시며, 우리에게 “너희들이 기도할 때 아무 대안도 되지 않는 세상 나라를 앞세워 가지고, 먼저 기도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나라는 대안이 아닙니다.

따라서 주님이 통치하시는 그 나라가 임하여, 이 땅에 있는 모든 심령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며, 이 세상에서 당한 모든 상처와 고통을 완전히 씻음 받고, 고침 받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을 찬양하는 영광을 누리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왕상 17장에 보면,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왕상17:12절을 읽겠습니다.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웅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어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그렇습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엘리야를 그냥 그릿 시냇가에 숨어 지내도록 놔두어도 될 터인데, 하나님께서는 100km나 떨어져 있는 사르밧으로 가게하고, 그것도 가난한 과부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무엇을 요구하시는가를 알아야합니다.

 

왕상17:13-14절을 읽겠습니다.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과부에게 이 말하는 하는 엘리야도 어렵겠지만, 아마 과부 역시 보통사람 같으면, 조금이라도 이 땅에서 생명을 더 연장하기 위해서 “별 미친 사람을 다 사람을 보겠네.”하고, 돌아 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에게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전적으로 신뢰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인 것입니다.

 

왕상17:15-16절을 읽겠습니다.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과 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두 사람에게 놀라운 축복을 주셨습니다.

엘리야는 그곳에서 가뭄이 그칠 때까지 기거할 수 있었고, 사르밧 과부는 가뭄이 끝날 때까지,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하였고, 죽었던 아들이 살아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두 사람과 같이, 우리들도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의지하고 기도할 때, 그 기적은 오늘도 일어날 것이며, 지금도 이런 기적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은, 이 사실을 세계 모든 열방에게 전하도록 하시려는 의도인 것입니다.

 

6:3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의 뜻은 “너는 내 걱정을 해라. 나는 너의 걱정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여,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가 되심을 믿고, 이 땅에 주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며, 변함없이 오늘도 역사하시는 주님의 응답을 체험하고, 전도하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