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내 영혼에 부흥을 주소서 (느헤미야 8:1~6)

Johnangel 2022. 8. 22. 10:50

내 영혼에 부흥을 주소서 (느헤미야 8:1~6)

 

오늘 본문에는 느헤미야를 통해, 예루살렘 성이 재건된 후,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에스라(학사 : 서기관)라는, 영적 지도자를 쓰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재건하는 일을 하시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행정관이었던 느헤미야는 백성들과 더불어 조직적으로 최선을 다하여 예루살렘 성곽을 쌓았고, 예루살렘 성을 완벽하게 재건하였습니다.

물론 예루살렘 성을 재건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지만, 마음을 기쁨으로 채울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 즉 영적인 부흥 없이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내일은 기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이런 마음의 재건을 가르쳐 부흥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 수문 앞 광장에서 일어났던 부흥은, 바로 말씀으로 말미암은 부흥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대, 이 땅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의 부흥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꼭 있어야 할 부흥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1.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건강을 위해, 우리의 소망과 승리의 삶을 위해, 이 성경을 주셨다면, 우리는 마땅히 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또한 이 성경이, 우리가 고백하는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이 책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스라엘 국가는 170여 년 전에 멸망하고, 페르시아에서 귀국한 느헤미야를 비롯한 백성들은, 한동안 예루살렘 성벽 건축에 바빴습니다.

공사를 마친 그들은, 예루살렘성의 건축만으로, 그들의 마음의 공허가 없어지지 아니하고, 내일이 달라지지 않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학사 에스라에게 율법책(토라, 모세 5경)을 가지고 오라고 부탁합니다.

 

1절을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하매”

 

당시에는 성경사본이 희귀했기 때문에, 개인이 소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공적으로 모여, 말씀을 읽고, 들었던 것입니다.

3절을 읽겠습니다.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남자나 여자나 성경을 알아들을만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벽부터 정오까지, 즉 적어도 6시간 이상을 예배한 것입니다.

 

지금 주일 아침에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요? 다 도망가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이 하루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5절에 보면, 이 성경이 읽혀지기 시작할 때, 온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 말씀의 권위 앞에 존경을 표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이 말씀의 한절 한 절이 읽혀 질 때마다,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며, 이 말씀을 듣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장면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말씀을 사모했는지를, 그들이 성경을 읽고, 듣는 일에, 어떻게 몰두했는가를, 주목해 보십시오.

 

8:18절을 읽겠습니다.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이레 동안 절기를 지키고 여덟째 날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 절기가 계속되는 한 주간 이상, 날마다 그렇게 말씀을 읽고, 듣는 일에, 몰두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말씀읽기는, 모든 축복의 시작입니다.

또한 모든 바람직한 변화의 시작입니다.

이 사실을 계1:3절에서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을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깨닫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본문에는, 깨달음의 중요성이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8장에는, 무려 6번이나 이 깨달음이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인 “understanding”이라는, 단어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우선 2-3절에 보면, 우리말 성경에는 “알아들을만한 이들에게 읽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7-8절에 보면, 제사장들과 레위지파 여러 영적지도자들이 백성들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는 일에 헌신”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12-13절에 보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말씀을 해석해 주자, 백성들이 “밝히 알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이런 목적으로, 수문 앞 광장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사 에스라가 읽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의미를 이해할 목적으로, 집중하여 듣고자 했던 것입니다.

 

당시의 영적 지도자들의 가장 중요한 소명은, 이 말씀을 깨닫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변함없이 설교자의 소명은, 바로 이 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깨우치는 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설교의 여러 가지 스타일 중에, 강해설교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강해설교는, 제목설교와 달리, 본문을 성실하게 해석하여, 그 뜻을 깨우치는 것을, 생명으로 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당시의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들이, 바로 그런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8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여러분, 왜 깨달음이 중요합니까?

우리는 깨달은 만큼만,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QT의 생명도, 본문의 깨달음에 있는데,그 이유는, 깨달은 그 만큼만, 그 말씀을 붙잡고,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우리가 말씀을 많이 읽어도, 깨달음이 없이는,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의 장에, 성육신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아무리 음식을 많이 먹어도, 우리가 그 음식을 소화하지 못한다면, 그 음식은 우리의 피가 되고, 살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많이 먹고, 소화하지 못하고, 다 토해낸다면, 무슨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많이 읽는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깨닫는 것이고, 그리고 그 깨달음을 내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적절한 분량을 읽고, 성령님의 깨우치심을 기도하며, 묵상하시기를 축복합니다.

 

3. 말씀에 반응해야 합니다.

 

우리가 읽고 깨달은 말씀이 육화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그 말씀에 합당한 반응을 해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보여준 반응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우리는 그들의 반응을,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정서적 반응이고, 다른 하나는 의지적 반응이었습니다.

 

먼저 어떤 정서적 반응이 있었습니까?

 

그들은 영적 지도자들이 가르켜 준 말씀을 깨닫고, 무엇보다 눈물과 기쁨으로 반응했습니다.

9절은 보면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울었을까요?

말씀에 감동되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물론 그것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 전체의 문맥을 읽어보면, 이 눈물은, 그들의 죄에 대한 말씀의 지적 앞에, 흘린 회개의 눈물이었습니다.

 

⓶다른 하나는, 그들은 깨달은 말씀을 인하여, 기뻐했습니다.

 

12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준 말을 밝히 앎이라.”

 

그렇습니다.

말씀을 통한 하나님과의 새로운 만남에 대해,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때에 느헤미야는 10절에서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선포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최근에 눈물과 기쁨으로, 말씀을 읽고, 은혜를 받으신 때가 언제였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런 진지한 정서적 반응과,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보다 더 중요한 의지적 반응을 준비해 주었던 것입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준, 의지적 반응은, 다시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들이 말씀을 통해, 받은 축복을, 이웃들과 나누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12절을 읽겠습니다.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씀을 밝히 앎이라.”

 

이것이 바로 성령을 경험한초대교회 성도들이 보여준, 동일한 모습이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느헤미야 9장이하를 읽어보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듣고, 깨달은 말씀을, 하나씩 하나씩 실천에 옮기기 시작합니다.

즉, 이스라엘이 보여준 궁극적인 반응은, 순종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포로생활에서, 이스라엘 땅에 돌아온, 영적 지도자인 학사 에스라의 오랫 동안 꿈꿔왔던 비전이었습니다.

7:10절을 읽겠습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말씀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더라.”

 

그렇습니다. 느헤미야의 비전이 성벽재건(하드웨어)이었다면, 에스라의 비전은 마음의 재건(소프트웨어)이었던 것입니다.

 

에스라는, 먼저 이 말씀을 자기의 삶에 적용하고, 순종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순종이, 역사를 바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와 여러분 안에서, 일어나는 말씀의 부흥은, 우리고현교회의 새 시대를 가져오는 부흥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제 우리가 고백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오늘 내가 어떤 믿음의 자세와 태도를 가졌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내일이 결정됩니다.

 

느헤미야의 마음 한가운데서 이루어진, 신앙인격과 비전은, 온 이스라엘의 영적인 부흥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언약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의 후손들에게 하신 약속을 꼭 이루시고, 형통하게 인도하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의 힘을 가집시다.

 

바라기는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고, 가정과 직장 그리고 교회에서, 도덕적인 탁월성과 삶의 능력을 보여줌으로, 우리 교회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 우리 교회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영적부흥의 기회로 만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