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하나님의 나라는 파티입니다 (마가복음 7:31-35)

Johnangel 2023. 4. 18. 18:57

하나님의 나라는 파티입니다 (마가복음 7:31-35) 

 

미국 동부의 한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며 설교 사역도 하는 토니 캄폴로(Tony Campolo)라는 교수님이 계십니다.

이분이 한번은 하와이로 휴가 여행을 떠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와이에 도착했을 때는 한 밤중이었는데 시간차로 잠도 오지 않고 배가 고파 밤 2시경에 해변가를 배회하다가 유일하게 그 시각에 문이 열려 있는 한 엉성한 식당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예상처럼 지저분하고 분위기도 없는 그렇고 그런 식당이었습니다.

간단한 음식과 커피를 주문하고 식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식당 문이 열리더니 한 눈에 보아도 거리의 여인들처럼 보이는 7-8명이 들어와 자리를 잡더니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그중에 한 여인이 갑자기 “야, 내일이 내 생일이다. 벌써 서른아홉 살이나 먹었다”고 하자, 당장 다른 여인들이 구박을 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네 생일 축하라도 해주고 생일 노래라도 부르고 케이크라도 사달란 말이냐. 네 신세에 무슨 생일 타령이냐” 그러자 이 여인은 갑자기 안색이 변하더니 “내가 언제 너희들 보고 생일 파티 해달라고 그랬냐. 내일이 내 생일이란 소리도 못한단 말이냐. 너희들 왜 나를 이렇게 무시하는거냐”고 울부짖기 시작하자 이들 사이엔 욕설이 오가고 싸움판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이 광경을 한 동안 지켜보던 캄폴로 교수는 한 여인의 단순한 독백이었던 “내일이 내 생일인데....”라는 말에 그냥 “축하 한다”고 한마디 받아 넘기면 될 상황이 무엇 때문에 싸움판으로 번져갔는가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론은 명백해졌습니다.

이 여인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상처들이 이들로 하여금 단순한 “생일 축하” 한마디도 불가능하게 그들의 마음을 닫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닫힌 마음은 그렇게 비극적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본문에도 귀가 먹고 말이 어눌하고 마음이 닫힌 인생을 살고 있던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웠던 것은 그가 예수라는 분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가 베푸는 사랑의 기적을 체험하고 마침내 그의 인생은 닫힌 인생에서 열린 인생으로 변화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오늘 날 여러 면에서 열린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 열린사회의 한 구석에서는 마음을 열지 못하고 이웃과 소통하지 못하고 외롭고 답답한 인생을 사는 닫힌 마음, 닫힌 인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 닫힌 마음의 인생들에게 있어서 예수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를 통해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닫힌 인생을 보고 탄식 하는 분이십니다.

 

34절을 읽겠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여기서 사용된 “탄식”이란 단어는 본래 그냥 단순한 동정의 탄식 정도가 아니라 “깊은 탄식”으로서 고통 받는 존재와 몸으로 연대화하는 대속의 탄식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온 몸으로 함께 느끼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이천년 전 그가 이 땅에 계실 때 그는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실 때마다 “불쌍히 여기셨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여기서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은 “연민으로 그의 마음이 들끓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우리의 외로움을 자신의 외로움처럼, 우리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우리의 답답함을 자신의 답답함처럼 느끼셨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사람을 보십시오.

그는 귀먹고 말더듬는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답답한 세월을 살아왔던 사람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 것은 그가 신체적 청각뿐 아니라 영적인 청각이 고장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그의 혀가 무엇인가에 묶인바 되어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의 시각은 하늘을 향해 하늘에 계신 창조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향해 닫힌바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그를 바라보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증상을 가르쳐 영적 자폐증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폐증의 현저한 증상들이 무엇입니까?

거의 이웃들과 눈 맞춤을 하지 못합니다.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습니다.

얼굴에 감정의 표현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관심을 갖는 일 외에는 다른 세계에 전혀 반응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자기의 세계에 갇혀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의 세상에는 신체적인 자폐증은 아니더라도 영적인 자폐증의 포로가 되어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에게 한번도 마음을 열어 보지 못한 사람들, 이웃들에게 마음을 소통하지 못하고 외로움과 답답함으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더 답답한 것은 이런 사람의 외로움과 답답함을 아무도 알아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런 사람을 주목하며 탄식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 예수는 누구이십니까?

 

오늘 우리가 예배의 첫 순서로 부른 찬송가 96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1)예수님은 누구신가/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천한 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 되고/우리 기쁨 되시네-

(2)예수님은 누구신가/약한 자의 강함과 눈먼 자의 빛이시며/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우리 생명 되시네”

이런 예수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마디로 “그는 우리의 구주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닫힌 인생의 유일한 구주이십니다.

 

2. 닫힌 인생을 친히 만져 주는 분이십니다.

 

33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예수께서는 이 사람을 따로 데리고 가서 무리들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개인적인 공간에서 그의 마음을 쉬게 하시며 그의 양귀에 당신의 손가락을 넣고 그리고 이어서 그의 혀에 손을 대시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친히 만져 주신 것입니다.

이때 이 사람이 경험한 예수의 손길은 얼마나 따뜻하고 친밀한 치유의 손길이었을까요?

심리학자들의 증언을 빌리지 않더라도 포스트 모던 시대를 살아가는 닫힌 마음의 현대인들은 스킨쉽에 목말라 하는 고독한 영혼들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런 영혼들을 만져 줄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은 아무도 만지기를 기피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먼저 손을 내미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가 만져 주는 사람마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마음이 병든 자가 용기와 희망을 경험하고, 마음이 닫힌 자가 마음을 엽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해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합니다.

 

1960년대 미국의 청년들은 당시의 세계의 허무주의의 물결 속에 생의 의욕을 잃고 머리를 기르고 히피가 되어 마약의 환각 속에 거리와 비치를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미국의 지도자들이 미국은 이제 미래가 없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 가운데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소위 “Jesus movement”라는 예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갑자기 예수를 영접하고 성령을 체험하며 찬송을 부르면서 교회와 하나님의 품으로 무리를 지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 났는냐?”고 묻자 그들은 그들에게 일어난 변화를 한 노래로 대답했습니다.

이런 노래입니다.

“/그가 나를 만지셨네/오 내 영혼에 넘쳐나는 이 기쁨/무엇인가가 일어났다네/난 그걸 아네/그가 나를 만지셨고 나를 온전케 하시었다네”

바로 그 예수님이 오늘 아직도 닫힌 인생을 사는 분들을 만져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3. 닫힌 인생을 향해 말씀 하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닫힌 인생들을 향하여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34절을 보면 그는 이 귀먹고 말 못하는 닫힌 사람의 귀에 손을 넣고 이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한마디를 외치십니다.

에바다!

무슨 뜻입니까? ‘열리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습니까?

35절을 읽겠습니다.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그렇습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일을 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는 “열리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아멘하고 받은 것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천년 전 이 땅에 계시며 이 닫힌 인생을 향해 말씀하시던 그는 지금도 동일하게 저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을 아십니까?

계3:20절은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에게 주셨던 말씀이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에바다!” 마음의 문을 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마음 문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드리시면 나머지는 그가 일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열린 축제 인생을 사모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오늘의 설교를 토니 캄폴로 교수가 지켜본 하와이 식당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식당 주인의 만류로 한 바탕의 거리의 여인들의 소란이 끝나고 이들이 자리를 뜬 후, 캄폴로 교수는 식당 주인에게 “이 여인들이 자주 식당에 오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주인은 “매일 이 시각에 옵니다. 그러나 단골이긴 하지만 골치 아픈 손님들이지요” 그러자 캄폴로 교수는 식당주인에게 “제가 실은 아이디어 하나가 생각났는데 내일 밤 생일을 맞은 그 여인의 생일잔치를 여기서 준비하면 안될까요?”라고 제안을 하자, 식당 주인 부인이 아까 그 여자이름은 아그네스이고 마음은 아주 착한데 불쌍한 여자라고 말을 하며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고 동의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다음 날 새벽 3시 반에 이 엉성한 식당에서 아그네스의 생일잔치가 열렸습니다.

식당 주인 부인은 미리 거리의 여인 몇에게 소식을 알렸고 그래서 문자 그대로 인근 모든 거리 여인들이 식당을 빼곡하게 채운 가운데 아그네스가 입장하자 “Happy Birthday!"라고 노래를 부르며 환영하자 이 아그네스라는 여인은 식당 입구에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서버렸다고 합니다.

 

캄폴로 교수는 지금까지 한 사람이 그런 표정으로 놀란 모습을 처음 보았다고 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아그네스 생일 축하합니다”

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그 식당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은 흥건하게 젖어들고 있었고 아그네스는 엉엉 울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케이크를 짜르라고 재촉하자 아그네스는 “부탁이 있는데 이 케이크를 내가 집에 가지고 가서 얼마동안 간직하면 안될까요?”라고 말을 하더랍니다.

사람들이 동의하자 그녀는 케이크를 집에 갖다 놓고 곧 돌아오겠다고 하더니 무슨 거룩한 성물인양 케이크를 가지고 식당을 나섰다고 합니다.

그녀가 식당을 나서는 모습을 사람들은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식당은 갑자기 깊은 침묵 속에 빠져 들어 갔습니다.

사람들이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던 순간 캄폴로 교수는 다시 일어서서 “제가 아그네스의 행복과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고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그날 밤 가장 교회 같지 않은 곳에서 가장 경건한 감동의 기도가 나누어 졌고 사람들은 눈은 퉁퉁 부어올랐다고 합니다.

캄폴로 교수는 그날 거기서 상하고 닫힌 마음들이 활짝 열리는 치유의 기적을 보았고, 이 엉성한 식당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보았다고 고백합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나중에 캄폴로 교수는 한권의 책을 쓰게 됩니다.

그 책의 제목은 “하나님의 나라는 파티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와 함께 하는 축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 이 축제는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축제에 참여하지 않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