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어떤 교회를 원하십니까? (에베소서 3:1-13)

Johnangel 2023. 5. 2. 22:22

어떤 교회를 원하십니까? (에베소서 3:1-13)

 

오늘은 우리 교회가 교회창립을 맞이한 주일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물론 지상의 모든 교회는 빌딩이나 건물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아름다운 빌딩이나 건물 그 자체가 주님이 기대하시는 교회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이 편지를 로마의 감옥에서 썼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를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당시는 로마제국의 영광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에베소교회가 로마제국의 지배아래 무릎 꿇는 교회가 아니라 복음의 절대능력을 드러내는 영광스러운 주님의 교회가 되기를 기대하며 로마제국의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도바울이 말하는 주님이 기대하는 교회란 어떤 교회일까요?

 

1. 깨달음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입니다.

 

3-4절을 읽겠습니다.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여기서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았다”는 말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일차적으로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를 가리켜서 “깨달음의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주경 학자들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쌍둥이 서신”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를 읽다가 이해가 안될 때, 골로새서를 읽으면 “아! 이런 뜻이었구나”하고 알게 되고, 또한 골로새서를 읽다가 잘 깨달아지지 않을 때는 에베소서를 읽으면 서로 보완이 되어 그 뜻이 스스로 자명하게 드러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에서도 교회에 대한 비밀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골로새서에서도 교회의 비밀이야기를 아주 많이 합니다.

 

골1:26-27절을 읽겠습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충만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다시 말해서 “주님이 내 안에 살게 된 것, 내가 구원 받았다는 것,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사실이 바로 교회의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비밀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무스테리온”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그 뜻은 “계속 숨겨져야 할 비밀이 아니라, 자랑하고 싶은 비밀”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람들에게 이건 비밀인데 너한테만 말하는거야!” 그러면서 얘기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무스테리온”이란 말이 바로 그런 단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타난 비밀, 공공연한 비밀, 이제는 당연히 나타나야 되고 자랑하고 싶은 그런 교회의 비밀이 뭐냐하면, 예수님이 내 구주가 되신 것, 내가 구원을 받은 것,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것을 바울은 지금 여기에서 교회의 놀라운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복음을 듣고 복음을 깨달았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골1:6절을 읽겠습니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복음을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자기가 복음을 듣고 보니까 “아!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셨구나, 나 같은 죄인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고 용서하시고 용납하시고 내 인생을 변화시켜 주셨구나! 하나님의 은혜는 참 놀랍구나!”하고 고백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다는 것은 “복음을 소식을 듣고 자기가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교회에 출석하여 복음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변화가 없고, 신앙이 자라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에게 “내가 정말 복음을 깨달았는가?”라고 진지하게 한번 물어야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깨달아 알았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나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는가?”하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 나오신다고 해서 다 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새가족반”과 같은 기초적인 성경 공부반 과정들이 준비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이 새가족 반을 통과한 사람들만을 저는 우리교회에서 정교인으로 인정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절차를 밟을 필요가 뭐가 있느냐? 다른 데서 다 공부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혹 계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확인해도 모자라지 않는 것이 바로 구원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는 “새가족반”에서 이 복음의 비밀을 통해 깨달아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돕고 있습니다.

물론 “새가족반의 과정을 통과한다”고 해서 복음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그 사람들의 공동체가 바로 주님이 기대하시는 교회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2. 함께 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입니다.

 

6절을 읽겠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여기에서 어떤 단어가 반복하여 강조되고 있습니까?

“함께”라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깨닫게 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상속한 바를 함께 누릴 수 있는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공동체의 지체가 되고, 함께 하나님의 그 놀랍고 위대한 약속들에 대해서 참여하고 누릴 수 있는 축복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방인들이 “자기들과 함께 복음을 듣고,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동안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잘못된 선민의식에 세뇌를 당해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좋은 선민의식은 반드시 우리에게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선민의식이란 “나만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이고 너희들은 아니야”라고 생각하면서 선을 긋고 담을 쌓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같이 취급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잘못된 선민의식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듣고 주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견고한 벽이 무너지고, 그들이 한 교회 안에서 같은 지체가 되고, 한 가족이 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의 하반부 전체에서 바울은 바로 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엡2:14-15절을 읽겠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여러분,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듯이 우리가 예수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가 되어 화평하게 하셨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가족(Family), 식구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 된 공동체가 될 수 있을까요?

정말 어떻게 우리가 가족 됨을 체험할 수가 있을까요?

어떤 분들은 우리 교회같이 좀 큰 교회가 되면 “가족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주목하십시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숫자가 적지 않았습니다.

주경학자들에 따라서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약 3만 명 이상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공동체 의식, 즉 가족의식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적지 않은 숫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성전에서만 모이지 않고, 성전에서 흩어지면 소그룹으로 집에서 모여 가족의식을 갖고, 서로 사랑하면서 전도하였다는 것입니다.

 

행2:46절을 읽겠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적은 숫자가 소그룹으로 집에서 모여 서로 자기들의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신의 고통, 자신의 아픔, 자신의 답답함, 자신의 눈물들을 서로 이야기하고 나누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 건강한 교회를 향한 의지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운동이 소위 셀 교회(Cell Church)운동입니다.

셀 교회 전략가들은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그토록 정말 놀라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비밀을 한마디로 이렇게 말합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두 날개로 날고 있었던 교회였다”

여기 두 날개란, 하나는 성전에서 모이는 큰 모임의 예배요, 다른 하나는 집에서 모이는 목장모임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배당에 모여서 같이 찬양하고 예배하며 큰 은혜를 받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반드시 집에서 모이는 소그룹을 통한 목장모임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짜 주님이 기대하는 교회를 만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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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정말 그런 일들을 잘할 수 있을까요?

제가 두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새가족반 교육”을 받으시고, 공적인 예배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으시고, 내가 고현교회의 교인이라는 소속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목장모임에서, 서로의 슬픔을 나누고 기쁨을 나누고, 성공을 나누고 실패를 나누고, 자신의 좌절을 나누고 고통을 나누고,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진정한 가족공동체를 거기서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오래 전에 이 땅에 세워진 분명한 목적은, 우리 먼저 믿은 성도들이 사랑과 섬김을 통해 주님의 삶을 보여주고, 이 지역 시민들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고 그것을 더 풍성히 누리는 법을 전해 주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자기에게 이 풍성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않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교회가 영생에 대한 메시지를 제대로 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도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생명이요, 소망입니다.

따라서 그분을 믿는 우리는 모두 다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께 하는 공동체로서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 사랑과 섬김을 통해 익산시민들에게 복음을 전해주어 그들로 하여금 영생을 얻게 하고 그것을 더 풍성하게 누리는 법을 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주안에서 같은 말, 같은 마음, 같은 뜻, 같은 열매를 맺어 이 지역 시민을 살리고 내 민족을 살리고 세계 열방을 살리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담임목사와 동역을 함께 하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