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잔치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14:3-9)

Johnangel 2023. 6. 7. 00:15

잔치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14:3-9)

                                                

교회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물론 남녀노소 차이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 안에서 잔치하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부르실 때 세상의 패배자들을 모아놓고 계속하여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축복가운데 믿음의 잔치는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마지막 남은 한주를 보내시면서 몇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만나주신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무엇이 믿음의 잔치를 계속되게 하는 모습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나의 모습은 어제의 나의 생각과 태도의 결과물입니다.

따라서 주님께 대한 나의 생각이 주님께 대한 나의 태도를 결정합니다.

주님께 대한 나의 궁극적인 태도가 교회에 대한 나의 태도를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를 파들어 가면, 그 성도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밝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리고 주님을 어떤 태도로 대하십니까?

 

또한 피로 값 주고 사신 믿음의 공동체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십니까?

 

1. 과거를 딛고 일어선 사람 시몬입니다.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될 사람은 과거를 확실하게 딛고 일어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시몬입니다.

3절에 보면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라고 말씀합니다.

시몬은 누구입니까?

그는 베다니 사람이요, 과거에 문둥병을 앓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가 병에서 회복되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에 따르면 문둥병이 발병하면, 사람들로부터 떠나야 하고, 격리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건강한 사람이 자기에게로 다가올 때 그 사람이 자기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경고해야 합니다.

따라서 지금도 시몬이 이러한 상황이라면, 그 마음이 얼마나 무너지겠으며, 얼마나 자신의 삶을 탄식하며 원망하며 살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어느 날 예수님을 극적으로 만나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늘 마음에 사모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는 예수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비록 과거에는 아팠고 절망상태였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함을 받고 새롭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시몬은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사람입니다.

상처를 뛰어 넘은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기쁨이 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조건 없는 사랑 때문에 죄 문제를 해결 받고 용납되었습니다.

주님의 보혈의 은총 때문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원받은 자로서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생각이 변하고, 우리의 태도가 변하고, 우리의 삶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나타난 시몬은 2천 년 전에 살았지만, 우리는 지금 우리의 가정에서 가족들과 더불어 살고 있고, 생업과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시몬입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아픔이 있었고, 나의 죄 때문에 형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주의 놀라운 사랑, 상상을 초월한 은혜를 체험한 주님의 제자며, 아들과 딸들입니다.

그러므로 보통사람들처럼 살아서는 안 될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과거의 아픔이나 쓰라린 추억들이 우리의 믿음의 진보를 막고 있다면, 믿음으로 그것을 뛰어 넘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들은 모두 창조적인 파괴가 일어나야 합니다.

거듭난 자로서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묵상하시고 과거에 얽매여 있는 여러분의 마음의 벽을 무너뜨리시기를 바랍니다.

 

2. 주님의 사랑에 이끌린 사람 마리아입니다.

 

또 한 사람 우리가 주목할 사람은 익명의 여성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마리아라고 기록되어 되어 있습니다.

이 마리아 역시 시몬처럼 극복해야 할 장애물들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었던 여인입니다.

 

먼저 내부의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우선 여성됨의 장애물입니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여자들의 인격과 인권은 존중되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는 내부의 장애물은 경제입니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순전한 나드 한 옥합입니다.

이것은 삼백 데나리온 이상의 값을 가진 것으로써, 건장한 남자 노동자의 일 년 품삯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여성이 이 정도의 소유를 드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소유에 대한 집착이 장애물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외부의 장애물입니다.

그것은 이 여인에 대한 주님가까이 있는 제자들과 동네 사람들의 평판이었습니다.

주님을 섬기려 하면 오해가 있을 수 있고, 비난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내부와 외부의 장애물을 뛰어 넘었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을 주님은 인정해 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께서는 이 여인의 마음과 태도와 자세를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여인이 신학적인 지식이 얼마나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무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대해서 주목하지 못할 때에, 성령의 이끌림을 받은 이 여인은 주님의 장례를 예비하는 영광스런 일에 쓰임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9절에 보면 주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에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기념해 주시고, 기억해 주시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인정을 받는 것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영광이 우리 마음에 늘 갈등을 가져다줍니다.

세상의 영광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주님의 영광을 따를 것인가?

그런데 갈6:8절에 보면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를 위하여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해서 “뿌린 대로 열매를 맺는다”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 마리아가 가졌던 또 하나의 축복은 그녀의 시의적절한 섬김의 기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동일한 육체를 가지고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의 마지막 주간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허비되거나 낭비되면 소용이 없습니다.

타이밍이 맞아야 합니다.

마리아는 우리에게 지금 무엇을 보여줍니까?

젊을 때 부를 노래가 있고, 찬양이 있고, 기도가 있습니다.

중년에 부를 노래가 있고 찬양이 있고 기도가 있습니다.

노년에 부를 노래가 있고 찬양이 있고 기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루고 미루어 놓으면, 결정적인 순간을 다 놓쳐 버리고 후회와 탄식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타이밍에 맞추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나는 사람은 분위기에 자신을 방치한 제자들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가룟 유다가 이 비난을 선동했음을 보여줍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은 하지 않으면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린 이 여인의 모든 희생과 헌신을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어리석었던 제자들이 이에 동조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소리에 다 동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정적인 사람들의 소리에도 다 동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지 않아도 동조할 사람들은 항상 우리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마음에 소리가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주님을 향한 소리와 다른 한편으로는 이기적인 소리가 있습니다.

이기적인 소리에 동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선동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이 어디로부터 오는 소리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소리라면, 박수치며 환호하며 같이 협력해야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소리가 아니라면, 우리는 그 소리에 귀를 막아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우리 이름을 드러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인정한 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오늘 세 종류의 사람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과거를 딛고 일어선 사람 시몬과 주님의 사랑에 이끌린 사람 마리아와 분위기에 자신을 방치했던 제자들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면 좋겠습니까?

교회 공동체에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우리를 다듬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성이 무너지면 나 혼자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 공동체에 헌신하십시오.

여러분의 작은 섬김과 결단이 고현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초석이 되는 것입니다.

 

무명의 어떤 시인은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습니다.

“함께 피어야 봄이랍니다.

꽃 한 송이 피어난다고 봄은 아닙니다.

파랗게 대지 전체가 일어나야 봄입니다.

함께 봄이면 좋겠습니다.

함께 평화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