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구원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0:7-10)

Johnangel 2023. 6. 8. 23:31

구원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0:7-10)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유한한 것이고, 그것들이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학문을 쌓고, 지위를 얻고, 물질을 소유하고, 편리함을 누릴지라도, 거기에 우리 인생을 맡겨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것을 모두 가졌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은 인생은 결코 성공적인 인생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1. 예수 그리스도는 양의 문이십니다.

 

7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당시 배경을 보면,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 된 시각 장애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길을 걸어가시다가 그를 발견하고 긍휼히 여겨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고침 받은 이 시각 장애인이 예수님을 다시 만났을 때, 주님께서 그에게 “네가 인자를 믿느냐”고 묻자 그는 즉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주를 믿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때 그 당시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지도자였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자신들의 인기를 예수님에게 빼앗기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상해서 요9:40절을 보면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라고 예수님을 비난합니다.

그러자 41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을 유일한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은 유목민이었기에 들에서 해가 지면,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양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를 공동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때 목자들은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문에서 양들을 보며 관찰하고, 아침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불러 초원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따라서 양들은 이 문을 통과해야만 우리 안으로 들어 갈 수가 있고, 나갈 수가 있습니다.

양이 이 문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사나운 짐승에게 찢겨 죽고 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유일한 양의 문이라는 말은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을 통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9절에 보면, “양의 문”이라는 의미는 두 가지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은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는 양의 문이십니다.

여기 “누구든지”라는 말은,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도우심이 필요한 자는 제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 “누구든지”의 은혜를 깨달은 자는, 반드시 감격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올바로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학식, 건강, 지위, 소유의 정도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초청하십니다.

누구든지 양의 문 되신 주님께 들어가기만 하면, 만족과 기쁨과 평안을 경험 할 수 있고, 목자 되시는 주님의 인도와 보호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고후5:17절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라고 했고, 요3;16절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라는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입니다.

따라서 이 “누구든지”의 도리를 깨달았다면, 이미 구원받은 우리는 또 다른 사람들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고 전심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와야 하지만, 그러나 반드시 주님을 통해 들어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구원의 문을 찾아 두드립니다.

어떤 사람은 도를 닦음으로, 어떤 사람은 참선을 통해, 어떤 사람은 명상을 통해, 어떤 사람은 고행을 통해, 어떤 사람은 자연을 섬김으로 두드리지만 거기서는 결코 구원의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문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과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올 수는 있지만,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행4:12절을 읽겠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이것이 바로 구원의 배타성입니다.

 

지난 2천년 동안에 예수님에 대해 연구를 해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수 없이 많습니다.

그들의 연구에 의하면 “예수님은 인류 최고의 스승이셨다” “예수님은 사회의 변혁가였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였다”등 다양한 말들을 했습니다.

물론 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죄인의 구세주이시다”라는 것을 빼면, 모든 연구는 휴지조각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스승이실 뿐 아니라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므로 한 인생이 구원의 문이신 예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느냐? 아니면 구원의 문 밖에 있느냐?”에 따라 인생의 색깔이 달라집니다.

따라서 구원의 문을 출입한 경험이 있는 자와 교회당 문만 출입하는 자의 삶은 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을 모시는 심령은 지옥이 천국으로 변하지만, 주님이 없는 마음은 아무리 천국 같은 곳에 살지라도 실제는 지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내 자신이 구원의 문에 들어가 있는가?” “예수가 내 개인의 구주와 주님이신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여러 목자들 중에 한 명의 목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유리방황하는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내려주신 유일한 목자라는 것입니다.

 

첫째로, 선한 목자는 자신의 양들을 압니다.

14절에 보면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에 대해, 우리의 미래에 대해 나 자신보다 선한 목자 되시는 주님이 더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아셔서 우리를 바르게 인도하시고 부족함을 채우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러므로 목자가 양을 아는 것처럼, 우리 양들도 또한 반드시 자기 목자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나를 정확히 아시는 선한 목자이신 주님 앞에서 숨김없이 투명한 관계를 회복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십니다.

15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나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으로 임재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육체 입고 이 땅에 오셔야했던 이유는, 구원의 제물이 되어 죽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바리새인들처럼 입으로만 말하는 분이 아니고, 몸으로 삶으로 희생하시고 헌신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분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그분은 그분의 방법대로 우리의 삶을 최선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을 마음에 모셔 들이지 않고 문밖에 세워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마음을 다하여 여러분의 삶과 가정과 자녀들의 미래를 언제 기도로 주님께 맡겨 보셨습니까?

결론적으로, 양의 문이시며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 우리가 나아가기만 하면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됩니다.

 

10절을 읽겠습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생명을 보존 받는 차원만이 아니라 영육의 양식을 공급받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차원의 기쁨과 만족을 얻는 상태와 자유와 인도와 보호함을 받는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삶이 생명을 얻는 단계에 머무르지 말고, 영육의 축복을 더 풍성히 얻는 단계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여기 10절에서 “얻는다”는 말을 두 번 반복합니다.

우리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만, 교회 밖의 사람들은 종종 교회에 가면 시간이나 돈이나 에너지나 명성 등. 뭔가를 빼앗긴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은 후에는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얼마나 놀라운 것을 받게 되었는지 깨달아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고자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우리의 영육을 풍성하게 채우시는 주님이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는 만큼 자존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대우를 받는 만큼 건강한 자아상을 가집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상상을 초월한 사랑과 대접을 받았습니다.

죄의 용서, 하나님의 자랑스런 자녀됨, 천국을 상속받았고, 주님의 살아 있는 몸된 교회의 일원이 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주님을 선물해야 하고, 우리 이웃들에게 주님을 적극적으로 소개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선한 목자 되시는 주님께 내 인생의 주도권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혹시 오늘 예배드리는 분들 중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예수님은 구원의 문이시며 선한 목자”라는 이 사실을 내 인생의 두 기둥으로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고후6:2절에서 말씀하신대로 “지금이 은혜 받을만한 때요 구원의 날”인 이 시간을 미루지 말고 주님 앞에 나와 풍성한 영육의 구원을 체험하시고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으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