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부활절(부활주일) 설교원고 - 부활신앙인의 삶 (데살로니가전서 5:1-11)

Johnangel 2017. 4. 12. 22:50

부활절(부활주일) 설교원고 - 부활신앙인의 삶 (데살로니가전서 5:1-11)

                                         

 나폴레옹이 프랑스를 통치할 때, 샤르니라는 신하가 라폴레옹 황제에게 밉게 보여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그는 친구들에게서 잊혀 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자주 면회를 오던 가족들도 점점 멀어졌습니다.

그는 너무나 쓸쓸했습니다.

그는 돌 조각으로 벽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

소망을 잃어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 바닥에 깔려 있던 돌 틈에서 푸른 싹 하나가 고개를 들고 나왔습니다.

샤르니는 간수가 매일 주는 물을 조금씩 남겨서 푸른 잎사귀에 부어주곤 했습니다.

그 싹은 마침내 꽃봉오리가 생기더니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꽃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썼던 글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썼습니다.

“하나님이 돌보신다.”

소망이 생기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감옥 옆방에 면회를 왔던 죄수의 딸이 이 감옥 안을 들여다보다가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감옥에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는 소문은, 귀에서 귀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왕비 조세핀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라폴레옹 황제에게 “꽃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돌보는 이는 결코 나쁜 사람이 될 수가 없다”고 말하며, 그의 석방을 건의했습니다.

그래서 샤르니는 석방되었습니다.

그는 석방될 때, 감옥에서 핀 꽃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정성을 다하여 그 꽃을 가꾸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소망은 생명입니다.

소망은 좋은 동역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소망을 잃지 말고 전진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우리들을 가리켜 “낮에 속한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낮에 속한 자들”이란, 어두운 면을 바라보는 자들이 아니라 항상 밝은 곳만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 시간에는 “낮에 속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통해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낮에 속한 자들은 주님이 재림하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기독교의 중요한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메시지입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재림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살전4:16절에 보면 “주님의 재림을 영광스럽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이 땅의 통치자로, 이 땅의 심판주로, 분명히 재림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의 재림에 대한 의식을 갖고 살아가야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이 언제와? 이렇게 태평스러운데, 여기가 천국인데, 안 오실꺼야?”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혹시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가운데에도 재림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주님은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믿지 않는 자들과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주님의 재림이 전혀 다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에게는 “주님의 오심을 도적 같이 오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해산의 고통이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오는 것 같이 오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 주님의 재림은 멸망의 순간이요, 예측하고 준비하지 못하는 그 사이에 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도적같이 오지 않고, 그날은 “즐거움의 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빛의 아들이요, 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둠에 속하지 아니한 빛의 아들들이요 딸들이기 때문에, 주님의 다시 오심이 밤에 홀연히 찾아오는 도적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빛에 속한 사람들이라면, 도둑이 와도 쉽게 알아낼 수 있고, 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오심에 대해 대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주님께서 몇 년, 몇 월, 며칟날 오신다” 이렇게는 알 수는 없지만, 주님이 오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으며, 그 나라에 대해 대비할 수 있으며, 또한 대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2. 그렇다면 그 나라를 어떻게 대비하며 살아갈 것입니까?


오늘 말씀에는 두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 “잠자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육적인 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잠을 가리킵니다.

잠에 빠져 있는 사람은, 누가 건들어도 쉽게 눈을 뜨지 못합니다.

어떠한 상황이 와도 전혀 감각이 없는 사람이 바로 잠을 자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잠을 자지 말라”는 것은, 영적으로 무감각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적감각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감각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죄에 대한 문제도 감각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도 감각이 있는 자가 되어야 하고, 성령님께도 민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와 동행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해 질 때, 우리는 영적인 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 우리는 근신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7-8절을 읽겠습니다.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술취한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제대로 걷지 못해 바르게 가지 못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며 자제하지 못하는 것이 술취한 자들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낮에 속한 우리들에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재림신앙으로 굳게 하여, 어떠한 유혹과 시험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왜 그렇게 우리를 흔들리게 하는 것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떤 유혹이나, 힘든 것만이 시험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편하게 하고, 오히려 우리에게 좋은 것은 가져다주는 것이 시험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편리함이나 좋은 여유로움을 하나님께 감사하면 되는데, 그것이 나를 안주하게 만들고, 그러한 여유로움과 풍요로움이 나를 세상적인 일에 바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로 하여금 신앙생활에 분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분주하게 만들어 오히려 그 풍요와 여유로움이 교회를 등한시하게 하고 신앙의 삶을 등한시하게 만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야고보 사도는 약1:10절에서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나에게 풍요를 허락하신 이는 내가 아니라 주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의 제목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에게 풍요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위에는 자기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게 하고, 자기를 향한 집착을 자제하지 못하게 하여, 비틀거리게 하는 많은 유혹과 시험들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러한 것들이 나에게 시험거리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근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욕심에 따라 자신을 방종 가운데로 몰아간다면, 우리의 신앙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처럼 금방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주님의 오심을 기대하며 전진해 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 가운데 비틀거리며 넘어져서 잠이 들어버리는 술취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지 말고 근신합시다.

항상 내 삶을 점검합시다.

모든 유혹과 시험에서 우리는 나의 삶을 자제하고, 재림신앙의 목표를 향해 전진해 나가는 우리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이제 다 내려놓읍시다.

이제 우리의 삶에 채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8절을 읽겠습니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여기 “구원의 소망”은 우리에게 주어진 “주님의 재림”입니다.

이제 낮에 속한 자들이 취해할 할 것은 믿음, 사랑 소망입니다.

믿음, 사랑, 소망은 빛의 자녀들의 삶의 원리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원리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을 보면,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에 있었던 모습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너희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기억함이니”

그렇습니다.


믿음, 사랑, 소망은 삶의 원동력입니다.

①역사가 있는 믿음, 행함이 있는 믿음, 삶의 현장 가운데서 드러나는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②수고하는 사랑, 행동으로 옮기는 사랑, 내 시간과 환경에 손해가 나는 사랑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③그의 가슴속에는 주를 향한 소망을 품으며 인내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내 삶에 충만할 때에 우리는 자제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더 나은 미래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 말씀에 보면 “호심경과 투구로 군인들이 무장하는 무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군인들은 싸움도 잘 해야 하지만, 잘 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당시의 로마 군인들은 적의 활이나 창으로부터 가슴을 보호하기 위해서 호심경을 붙였습니다.

주로 심장에 있는 가슴을 보호하기 위해서, 누빈 가죽이나, 주조한 놋쇠로 가슴에 호심경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투구는 머리를 보호해 주는 중요한 군장입니다.

전쟁터에서 싸움하는 군인이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머리에 상처를 입게 되면 치명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군병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제하는 것으로 멈추지 않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철저히 신앙의 무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근신할 수 있으며, 어떠한 적이 달려들어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안일한 신앙은 무너집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미혹하는 무리들은 더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9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승리하기 위해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노하심이 아닙니다.

우리가 끝까지 승리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참고 인내하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근신하지 못하고 넘어지는 자들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1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하라”

오늘 말씀에 보면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데살로니가교회 교인들은 이미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너희도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어떻게 교회를 이루어가고 있었습니까?

여기 “권면하고”는 “충고하다, 용기를 북돋우다”의 의미도 있으나 “위로하다”의 뜻이 강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신앙의 경륜을 떠나서 우리는 서로 위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주위를 한번 둘러보십시오.

무너져 내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위로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슬픔가운데 젖어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누가 그 사람에게 가기를 기대하지 말고, 우리들이 그들의 기대자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가서 위로하십시오.

그들은 저와 여러분의 위로가 필요한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의 지체들로서,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손이요, 발이며,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덕목은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덕을 세운다”라는 말은 원래 “집을 세운다”의 뜻으로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도우라”는 의미로 사용된 단어입니다.

우리는 모두 힘을 합하여 지어져 가야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어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안일주의에 빠져 살지 말고 서로의 성장을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모든 사람의 이익을 더불어 도모하는 사람들이며, 넘어진 성도의 신앙성장을 돕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이만큼 성장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사람도 신앙이 성장하기를 위해서 노력하고 기도하며 애쓰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로 서로 덕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연약한 성도의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 쉬지 않고 노력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며, 그의 나라가 임하기까지 함께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그 나라에 소망이 있다고 해서, 지금 이 자리에서 안일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 사랑, 소망을 품고 부단히 서로를 위로하며 덕을 세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나라에 함께 가야할 사람들입니다.

서로 서로 신앙의 성장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위로하고, 덕을 세우십시오.

이러한 모습이 빛의 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데살사로니가 교회처럼 우리도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참된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