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모든 복이 네게 임하리라 (신명기 28:1-10)

Johnangel 2023. 4. 17. 17:42

모든 복이 네게 임하리라 (신명기 28:1-10)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의 인생과 세상에 복을 주시면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치는 대적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속한 자녀들이 복을 받게 될 것이고 우리에게 속한 땅과 재산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이 친히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세상과 우리 인생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15절 이하에 보면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고, “나가도 저주를 받고 들어와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고, “우리 몸의 소생과 토지와 토지의 소산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세상은 그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힘이 든 것이고, 슬픔과 아픔과 고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아무런 힘과 능력과 지혜가 없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축복과 도우심이 없이 산다는 것 자체가 저주인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땅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창3:17-19절을 읽겠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를 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게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을 흘러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게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세상과 우리 인생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아니하고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저주를 받은 세상에서 우리가 그 저주의 사슬을 끊고 축복의 삶을 살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본문에서 하나님이 축복을 약속할 때,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단 하나의 조건과 전제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1절의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듯,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그 명령대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 중에 보면, 자기가 공부를 잘해서 당연히 장학금을 받는 것처럼 생각하여 장학금을 주는 교회나 사람에게 별로 감사할 줄 모르는 학생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공부를 잘 한다”고 하더라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겠다”는 귀한 뜻을 가지고 장학금을 수여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는 절대로 장학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하면 우리는 내가 복을 받는 것이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행위 때문에 구원을 얻고 복을 받는다”라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큰 착각입니다.

구원과 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하여도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으시면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행위 자체가 복과 구원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과 복은 우리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축복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시고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룰입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는 오늘 본문에 약속하신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 오늘 본문에 약속하신 모든 하나님의 축복을 다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불교에 보면, 부처님께 3천 번을 절하는 것이 있습니다.

말이 쉬워서 3천 번이지 무릎을 꿇고 엎드려 손을 벌리는 절을 3천 번이나 한다는 것은 극기 중의 극기입니다.

우리 기독교에는 3천 배 같은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외형적인 행위나 제사보다 순종을 좋아하십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순종이 제사이고, 순종이 기도입니다.

삼상15:22절에 보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게을리 하고, 제사만 열심히 올리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사1:11-13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제사와 기도는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보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보다, 철야하며 기도하는 것보다 능력있는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과의 영적이 대화로서의 기도는 더 깊어 질 것이나 무엇을 바라고 구하고 두드리는 면에서의 기도는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신 모든 복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금식하는 것보다, 철야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3천 번 절을 하는 것 보다 힘들고 어려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초기의 우리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철저히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우리 한국교회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가르치는 것을 등한히 하였습니다.

대신에 그냥 열심히 교회 출석하는 것과 봉사하는 것, 그리고 새벽에 기도하고, 철야하며 기도하고,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과 같은 것들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물론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삶이 빠진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심각하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 한국기독교는 마치 부처 앞에 3천배 절하는 불교와 비슷한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형식은 강하지고 풍성해 졌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의 실력이 너무 약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교회는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세상에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무력한 교회가 되고 말았으며, 세상에 손가락질을 받고 지탄을 받는 미신적이고 미개한 교회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기독교는 누가 뭐래도 말씀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들을 구원하시고 축복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입으로만 주여, 주여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팔이 부러졌다가 다시 붙은 후 그 팔을 전과 같이 정상적으로 사용하려면 뼈가 부러지는 것과 같은 아픔을 격으면서도 재활운동을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 아픔이 두려워 운동을 포기하면 뼈가 다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불구로 살아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고장 나고 왜곡된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뼈가 꺽이고 부러지는 것과 같은 아픔을 동반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힘들고 아프다고 회피하면 우리는 평생 불구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죽을 것 같고 뼈가 부러지는 것과 같은 아픔이 있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재활훈련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러면 조금씩, 조금씩 그 아픔이 없어지게 되고, 나중에는 말씀대로 사는 것이 하나도 아프지 않고 어렵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영적인 불구와 장애로 살아가는 사람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삶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삶입니다.

 

우리 기독교에는 부적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을 듣지도 않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발버둥질도 없는데, 그냥 주일날 슬쩍 교회에 왔다갔다고 그것이 부적의 효과를 나타내지는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2011년을 선물로 주시면서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바라고 소망하는 모든 복을 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저와 제 자손들이 모두 다 오늘 본문의 복을 받기를 소원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도전하겠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복의 유일한 전제조건으로 내거신 삼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명령과 말씀에 순종하는 삶에 도전하겠습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고, 넘어지면 또 다시 일어나 도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그것을 가르치겠습니다.

때려서라도 가르치겠습니다.

그리하여 반드시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축복을 쟁취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오늘 이 말씀에 도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입으로 예수 믿지 마시고, 부적으로 예수 믿지 마시고, 순종 없는 역겨운 제사로 하나님을 괴롭히는 사람이 되지 마시고, 순종의 제사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복이 여러분들에게 임하시는 그런 삶을 사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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