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부활절(부활주일) 설교원고 - 부활의 첫 열매 (고린도전서 15:20-26)

Johnangel 2018. 3. 26. 19:56

부활절(부활주일) 설교원고 - 부활의 첫 열매 (고린도전서 15:20-26)

                                          

현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의식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식의 강 가운데에는 “양지와 음지”가 있는데, “의식의 음지”는, 모든 사람들이 죽음의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나타나는 그림자입니다.

따라서 “의식의 음지”가 크면 클수록, 불안의 요소와 공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셨다.”는 메시지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어두운 의식의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는 놀라운 혁명이 되었고, 더욱이 죽음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죽음은 우리의 종말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이 부활을, 깊이 깨닫고, 믿고, 체험한 사람은, 죽음과 삶에 대한 자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20-21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여기 “그리스도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말은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절대적인 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무덤을 깨뜨리고 일어나셨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날 것을 전제하는 하나의 서곡입니다.


그러므로 이 첫 열매를 우리가 더욱 확신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 내용에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1. “예수그리스도가 육체로 부활하셨다”는 사건에 대해서 분명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현대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과학적으로 입증이나 설명을 할 수가 없다.”고 말하며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믿지 말고 다만 부활의 신앙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신앙과 부활의 사건”은 구별되는 별개의 것입니다.

현대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뿌리를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그들은 “부활의 신앙을 갖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소위 “실존주의적 신앙”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들의 주장은 “예수그리스도라는 존재”를 무시한 허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경대로 살아나신 확실하고도 분명한 역사적인 부활사건”을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고전15:3-4절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성경대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무덤을 깨뜨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분명하고 확실한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2. 부활하여 살아계신 “주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내재 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당시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의 모습은, 육체와 더불어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넋이 빠져있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영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살과 뼈가 있으니 만져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20:27절을 보면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요21:15절에서는 “예수님은 제자들과 더불어 음식을 잡수심으로 육체로 부활”하셨음을 확증해주셨습니다.

또한 고전15:3-8절에 보면 “성경대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과 오백여 형제들과 바울에게도 보여 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 보면, 육체와 더불어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지금 하나님 보좌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 또한 “그 예수님께서는 예수 믿는 우리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육체를 가지고 하늘에 계신 예수님이, 어떻게 내 안에, 교회에, 나의 삶의 현장에 거하실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전능자이시며, 온 우주에 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주님은 오늘 예배하는 이 시간에도 우리 모임 가운데 임재하여 영광을 받으시며, 우리를 만져주시고, 치료해주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특별히 “성령을 마음에 모신 사람은 예수그리스도가 그 마음속에 거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 우리 모두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부활의 순서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23-24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첫째는,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이것은 이미 일어난 사건입니다.

벌써 무덤 문이 열렸습니다.

둘째는, 예수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그에게 속한 자들의 부활입니다.

예수를 믿고 살다가 이 세상을 먼저 떠나서, 지금 하나님 나라에 있는 모든 영혼들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육체의 부활과 함께 우리를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셋째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라고 했는데, 여기 “마지막”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성도들의 부활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모두 다 예수님처럼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참 소망입니다.

사실 현실적으로, 우리 인간은 누구나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과 공포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음을 절망으로 보지 않고, 고통과 눈물 속에서도 새 힘과 용기를 가지고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부활사건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지금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예수님처럼, 영광스런 새 몸을 입는 “영화”라는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긴 러시아의 “톨스토이”는 자신이 어떻게 새사람이 됐는지를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뒤에 제 삶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전에 제가 바라던 것을 바라지 않게 되었으며 제가 결코 바라지 않았던 것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저의 눈에 악으로 보였던 것이 선으로 보였으며 선으로 보였던 것이 악으로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면, 우리가 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 변화해서 더 주님을 닮아가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부활절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너무도 소중한 사건입니다

따라서 구원받은 우리에게 부활절은, 오늘의 부활절이어야 합니다.

인류를 다시 살리는 이 놀라운 부활의 메시지는, 우리의 이웃과 민족 그리고 세계 열방에게 증거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님께서 주신 지상최대의 명령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살아나셨고, 그 분은 지금 우리 마음속에 거하십니다.

장차 우리도 그 분과 함께 영광스런 모습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이 놀라운 메시지 때문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겨쌈을 당하여도 절대로 낙망하지 않고, 죽는 자 같지만 사는 자가 되고, 없는 자 같지만 모든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생명입니다.


 이 부활의 축복을 다시 한 번 마음속에 간직하고 온 몸으로 감사하며, 전지전능하신 우리 주 하나님 앞에 온 맘과 온 정성을 다하여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